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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남성탐구

이건희의 집착, 조영남의 오버

  • 정혜신 정신과 여의사

이건희의 집착, 조영남의 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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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제 회장’ 이건희와 가수 조영남은 정신의학적으로 ‘열등 콤플렉스’라는 키워드로 대비된다. 이회장은 항문기적 성향의 열등감을 갖고 있고, 조영남은 그것을 뛰어넘어 남근기적 성향의 콤플렉스를 보여준다. 》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가수 조영남보다 세 살쯤 많다. 모두 50대 후반이고 사는 방법이나 하는 일이 다르다. 취향이나 사고방식도 워낙 달라 우연히 부딪쳐도 서로 멀뚱멀뚱할 것 같은 사람들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사람은 구강기·항문기·남근기의 순서로 심리적인 발달을 하면서 성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구강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소아적 의존성을 가진 미숙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 항문기적 성향의 사람은 목표를 정하고 완벽을 추구하며 강박적인 삶을 사는데, 그들은 세상을 경쟁의 원리에 따라 바라본다. 그에 반해 남근기적 성향인 사람은 즐거움 자체를 추구한다. 그들에게 경쟁과 완벽은 의미 없는 논리가 된다.

이렇게 분류할 때 두 남자, 이건희 회장과 조영남은 어디에 속할까. 필자는 이건희 회장은 전형적인 항문기적 성향의 소유자고, 가수 조영남은 그것을 뛰어넘은 남근기적 성향의 사람으로 본다. 이건희 회장은 왜 항문기적 성향에 머물고 있으며, 조영남은 또 어떤 이유로 그것을 뛰어넘은 자유로운 남근기적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두 사람의 내면세계 분석을 통해 정신의학의 중요한 코드 중 하나인 ‘열등 콤플렉스’의 실체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주관적인 경험을 근거로 많든 적든 개인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폐소 공포증으로 동굴에 들어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집무실도 엄청나게 크게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대부호 하워드 휴즈(공교롭게도 이건희 회장의 별명 역시 하워드 휴즈다)는 극단적인 결벽증과 세균 공포증으로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대부’로 유명한 배우 알 파치노는 자신의 작은 키에 심한 콤플렉스가 있어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된 지금까지 젊은 아가씨들도 꺼릴 정도로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닌다고 한다.



‘황제 회장’의 내면의식

이건희 회장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 ‘황태자’를 거쳐 ‘황제’가 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가 한 다이어트를 ‘황제 다이어트’라 칭하고, 그가 사람들에게 베푼 정을 두고서도 ‘황제의 정’이라는 희한한 단어로 표현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회장을 볼 때마다 정상에 선 사람의 쓸쓸함이 아닌 ‘황제의 열등감’을 느끼곤 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회장에게 열등감이란 단어는 가당치도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정신과 의사의 눈으로 인간 이건희의 일생을 관찰하다 보면 열등감이란 키워드만큼 그를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그의 인생을 그림에 비유할 때, 바탕색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열등감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열등감이 인간 이건희에게서는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가 오너로 있는 삼성그룹에는 어떤 형태로 스며들어 있을까. 필자는 자료에 나타난 그의 어린 시절 기록이나 대화록을 통해서 그 사실을 나름대로 입증해 보려고 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라는 카피가 있었다. 오만할 만큼 당당한 자신감의 발로였고, ‘역시 삼성’이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그게 삼성의 자존심이고 일등 문화다. 그러나 일등에 대한 집착은 끊임없는 내적 열등감의 발로인 측면이 있다.

이 회장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런 사실이 더 명백해진다. 삼성은 ‘강박적인’ 기업 문화를 가진 조직이라는 게 필자의 진단인데, 이회장의 성격 역시 정신의학적으로 규정해보면 ‘강박적 성향’에 해당한다. 이 성향의 심리적 축은 열등감이다.

강박적인 성격의 특징을 한번 살펴보자. 첫째, 그들은 감정 기능이 빈약하다. 감정 표현이 아주 드물며 감정 대신 그들이 사용하는 것은 사고 (思考)이고 원칙이다.

이 회장은 취미가 ‘연구와 생각’이라고 할 정도로 감정보다는 사고(思考)가 비대한 사람이다. 그의 방은 한 벽에는 침대, 한 벽에는 책, 또 한 벽에는 대형 TV·VTR·오디오가 있다고 한다.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가엔 책상과 의자가 있는데 재택 근무를 자주 하는 이회장은 회사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몇 시간이고 꼼짝 앉고 그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퇴근 후에도 잠옷으로 갈아입고 자기 방에 들어가 한번 앉아버리면 거의 바깥 출입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강박적 성향의 소유자는 타인과의 감정적·정서적 접촉을 꺼린다. 왜냐하면 그들의 무의식 속에 있는 강한 분노와 적개심이 혹시라도 튀어나오면 어쩌나 하는 강한 불안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10월에 발간된 독일의 경영전문 월간지 ‘매니저’에는 삼성그룹을 분석한 특집기사가 실려 있다. 그 기사를 보면 한국에서 이 회장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한 독일 최고경영자가 서울에서 겪은 일을 소개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독일의 최고경영자는 이웃집의 개 짖는 소리가 너무 커 두 번이나 항의해도 통하지 않자 세 번째는 항의차 옆집으로 갔다. 관리인은 그 집이 이 회장 일가가 살고 있는 저택이라고 말하면서 그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도 이미 이 회장 소유로 넘어갔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이 항의 소식을 듣고 옆집을 매입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상상이나 공상으로 세상 즐긴다

그는 감정이 개입되기 마련인 문제를 만나면 아예 그 해결 과정을 피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비용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가부장적이던 선친의 원칙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삼성의 무노조 정책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삼성은 노조를 봉쇄하는 대신 타사와는 전혀 다른 사원복지 정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재택근무를 즐기는 이 회장은 거의 24시간을 개와 함께 지낸다고 한다.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을 정도로 개를 좋아하는 그는, 그 이유를 “개는 거짓말 안 하고 배신할 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평생을 ‘황태자’와 ‘황제’의 위치에서 직원들의 충성을 받아온 그다. 배신을 많이 당해서가 아니라 인간관계란 것이 그에겐 그토록 어려운 일이고 사람과의 교감이 그에겐 그토록 위험한 일인 것이다.

강박적 성향을 가진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원리원칙을 따지기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할 때 ‘일하는 것 자체’가 방해받을 정도로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방식을 정확히 복종하지 않으면 비난하고 같이 일하길 꺼린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직원들에게 신경영을 전수하는 과정에 “내 말을 적어도 50번 이상 반복해서 테이프를 통해 들어라. 자꾸 들어 외울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몸에 배게 되고 실천이 가능해진다”며, 자신의 방식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직원들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삶의 철학이란 것이 반복해서 듣고 보는 것만으로 체득되는 것인가.

강박적 성향의 사람은 매우 사변(思辨)적이어서 이론이나 개념에 대한 논쟁을 시작하면 끝도 없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개인적인 감정이 거의 배제돼 있기 때문에 논쟁을 하다 보면 지루하고 공허하다. 말은 맞는데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관념적이기 때문이다.

1993년 중앙일보 간부들과의 회의에서 이 회장은 “나보다 일본에 대해서 더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봐라. 나는 일본의 역사를 알기 위해 45분짜리 비디오테이프 45개를 수십번씩 봤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직원들에게 훌륭한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면서 육아전서를 최소한 30번 이상은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훌륭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도 그는 (아이와의 정서적 교류보다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본적으로 매우 관념적인 사람이라 현실적이지 못한 것이다.

이 회장은 1993년 신경영을 주창하며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시발로 런던·동경·오사카 등에서 해외 현지회의를 주재했는데, 밤낮 없이 8시간에서 최장 16시간까지 이어지는 마라톤 회의로 화제가 되었다. 이때 이 회장은 “더러 24시간 잠을 안 자며 구상할 때도 있었지만 48시간 꼬박 안 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은 이회장의 집착을 ‘상상을 초월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문제가 있을 때 그 메커니즘이 머릿속에서 풀리는 순간 문제는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하는 게 그의 방식이다. 그가 기계에 열광하고 자동차를 수도 없이 분해조립했다는 것도 이런 성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도 그런 원칙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굳게 믿는 눈치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삼성 안에서 국회의원에 나와도 떨어질’ 정도로 사람 이름을 못 외는 데 천재적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그의 정신적인 에너지가 자기의 안으로만 집중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사변적이고 강박적이며 상상이나 공상의 세상을 즐기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탁월한 경영인의 면모를 적지 않게 보여주던 이회장이 삼성자동차 같은 무리수를 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프랑스의 한 신문은 기계에 열광하고 페라리 자동차 수집가인 이건희 회장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삼성마크의 자동차를 갖는 데 집착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삼성차는 모두 4조원 이상이 투입되었지만 프랑스 르노사에 3000억원에 매각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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