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긴급대특집|역사의 대전환, 남북화해시대

한반도 민족주의와 양김의 모험

  • 김민웅 미국 뉴욕 길벗교회목사·정치학 박사

한반도 민족주의와 양김의 모험

3/4
이렇게 주변 열강의 대(對)한반도 정책과 관련한 전략적 고려를 일별해 보면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첫째, 한반도 통일이 우리 민족의 주도하에 이뤄지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이라는 점. 둘째, 미국의 패권전략에 우리가 순응할 경우 장차 중국과 갈등을 예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 셋째, 일본이 주도하는 신대동아 공영권의 출현에 대한 민족적 대비가 요구된다는 점. 넷째, 중국 러시아 등 대륙국가와 경제적 협력관계를 장기적으로 구상하고 이를 우리의 국제적 위상강화와 연결하는 민족전략이 필요하다는 점. 다섯째, 동북아시아 주변 열강의 군사적 패권주의가 이 지역의 평화를 깨뜨리지 않도록 집단안전보장체제를 만드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그런데 이런 점들과 함께 우리는 주변 열강의 패권적 관심과 우리의 민족적 관심이 충돌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우려할 만한 일은 하나둘이 아니다. 이는 향후 남북관계 개선과정에 어떤 돌발변수로 작용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로써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작업이 심각한 장애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돌발변수가 내부적으로 조성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는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반면에 국제적으로 압박해 들어올 경우 그 강도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적 개입의 정도로 볼 때 이 돌발변수의 진원지는 아무래도 미국이 될 개연성이 가장 높다. 미국은 한반도 관계개선과 통일논의가 자신의 통제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이 급격하게 완화해 자신이 장치해놓은 냉전체제의 기반이 빠른 속도로 허물어져 이 지역에서 갖고 있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동북아시아에서 미군의 위상이 심각한 저항에 직면하고 있는 현실도 미국의 초조감을 더해주고 있는 요소다. 한국의 경우 매향리 문제 등을 비롯해서 미군의 지위와 위상에 대한 대중적 여론이 전격적으로 변하고 있는 점도 미국으로서는 위협적인 사태전개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미국의 동북아시아 패권은 엄청난 도전에 시달리게 된다. 미국의 전략적 실체라 할 미군의 퇴각이 강력하게 요구되는 상황은 미국에 있어서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또 미국의 국제 무기시장이 위축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긴장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에 민족주의 정서가 강화되고, 남북간 당사자 대화와 해결의 원칙이 관철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공포에 가까운 현실이다. 민족주의적 정서에 대한 심정적 이해를 납득하기 어려운 다인종 사회인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로 한반도 전역에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준 민족주의에 내심 놀라고 있다.

남북 정상에 경악한 미국

이것은 미국으로서는 예상하기 어려웠던 점이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인간과 국가의 행동규범에 결정적인 기준이라고 여겨온 미국적 사고가 이로써 일대 타격을 받은 셈이다. 하여, 미국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대하여 너무 기대를 갖지 말라는 식으로 민족주의적 기류의 팽창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한반도 정세를 관리하는 작업에 있어서 자신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출현해 대(對)한반도 전략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는 다시 말해서 군사적 압박정책을 최후의 카드로 쥐고 있던 미국이 이를 잘못 사용할 경우 남북 모두의 민족주의적 저항에 직면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보게 됐음을 의미한다.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내에 남과 북이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을 인상적으로 각인시켰으며, 남북 모두 주변 열강의 패권적 의도에 대하여 절대 무지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따라서 미국은 기존 정책과 전략으로는 이런 민족주의적 지향성을 압박해 들어갈 수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미국의 반응이 대체로 의례적이고 사무적이었다는 점은 미국이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차가운가를 입증해주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미국 언론의 보도 또한, 한반도의 민족적 화해와 유대감 형성이라는 점에는 주목하지 않고, 이른바 ‘국제사회의 기준(사실은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는 변화를 북한이 보일 것을 강조하는 쪽으로 논조를 전개한 것도 미국의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단적인 예다.

바로 그래서 이제 향후 미국의 움직임을 예민하게 주목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미국 내 보수세력은 아직도 대북(對北)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남북관계 개선 과정을 남한이 북한의 술수에 휘말려 들어가고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하여, 북한이 무장을 해제하지 않는 한 동북아시아 정세의 불안 요인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지속적인 핵과 미사일 문제의 제기는 미국의 이런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대(對) 쿠바 정책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의식구조다. 더군다나 그동안 북·미 회담 등을 통해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한다고 생각하던 미국의 위상이 당사자 대화의 획기적인 진전을 통해 타격을 받았다고 여길 경우, 반격이 예상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특히 정상회담 이후 대중들의 대북(對北)정서가 변하고 국가보안법의 존재 의의가 사라지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남한 내 일부 보수 강경세력과 미국의 연계가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써 남북 정상회담의 긍정적 결실을 뒤집는 돌발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남북 정상들

가령, 이번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 때 신변안전에 각별한 주의가 기울여졌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답방할 경우 그의 신변 안전보장이 의외로 훨씬 더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사태의 미묘하고 복잡한 측면이 드러난다. 우선 남한은 북한에 비해 거의 완전하게 외부로 노출된 사회이다. 내외의 공작적 움직임이 가능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체제다. 따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선(動線)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작업은 엄청난 긴장과 사전준비, 그리고 치밀한 현장 작업이 요구된다.

남북 정상회담의 진전과 그 민족주의적 의의가 실체화되는 것을 반기지 않는 내외의 세력이 돌발적인 상황을 만드는 사태가 일어나게 되면 한반도 전체를 어려운 지경에 몰아넣고, 정상회담의 성과를 졸지에 뒤집을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어떤 빌미로 한반도의 평화기조를 허무는 사태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만큼 남북 정상회담은 ‘매우 위험한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남북 양측 지도자가 사실상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이 회담에 나서고 있음을 일깨우는 대목이다.

미국은 이미 여러 차례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에서 미군이 주둔한다고 선언했으며, 정상회담 때 미국의 군사적 관심을 반영하기를 강력하게 요청한 바 있다. 이는 정상회담과 남북관계의 개선 과정이 이런 미국의 의도와 전략을 담아내지 못할 경우 그 결과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한·미간에 외교적 갈등과 마찰로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이에 대하여 어떤 정책과 기조를 가지고 있어야 할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즉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우리의 민족적 입지에 문제가 생기고 우리의 민족적 이해를 우선적인 선결과제로 내세우면 한·미 관계에 균열이 생기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이에 중간지대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선택은 실로 민족적 용기와 의지, 그리고 결단이 요구되는 일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미국의 패권전략적 의도에 또 다시 끌려가며 남과 북이 공동으로 합의하고 실천에 옮기기로 한 내용도 스스로 뒤집거나 좌절할 수 있다. 앞으로 남북대화가 진전되면서 군축이 논의될 경우에도 미국은 이 문제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군축 대상인 무기 대부분이 미국제라는 점에서도 미국은 한반도 군축논의가 국가적 이해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향후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얼마나 단단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 정세에 대처하면서, 민족 내부의 응집력이 깨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어렵게 조성됐던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일거에 공격적인 대북공세로 전환됐던 과거를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지금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잔을 다루는 듯한 조심스러움과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남북 화해와 연대의 기조는 이제 근본적인 반전은 어렵겠지만 위기를 겪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실로 민족 내부의 단결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돼야 한다. 어떤 돌발사태에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이 요구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를 봐도 무수한 상호 무력대결과 돌발적인 유혈사태가 벌어져도 흔들림 없이 대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중동평화에 진력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모델이 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은 서로 무수한 희생을 겪었어도 이를 보복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고 평화를 ‘양보할 수 없는 원칙’으로 삼아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만일 이 원칙이 무너졌다면 중동평화는 깨지고 무수한 전쟁과 살육의 역사가 되풀이됐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로 직면하게 되는 과제다. 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경우 남북관계는 언제 어떤 회오리바람에 휘말리게 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작업은 실로 깊은 인내와 민족 공동의 신뢰와 지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7·4 남북 공동성명에서 천명한 ‘자주’의 원칙과 함께, ‘평화’와 ‘민족대단결’이 얼마나 귀중한 출발점인지, 또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할 남북관계의 기초인지 알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외세는 바로 이 3원칙 위에서 전개되는 남북관계, 민족주의의 성장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를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역사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3/4
김민웅 미국 뉴욕 길벗교회목사·정치학 박사
목록 닫기

한반도 민족주의와 양김의 모험

댓글 창 닫기

2021/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