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새 천년을 시작하면서 한국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중요한 현안으로 등장했다. 21세기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흔히 컴퓨터와 영어 두 가지를 꼽는다. 한국의 경우 컴퓨터가 보급되고 사용하는 수준을 보면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영어에 관한 한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영어교육의 방향을 올바로 잡고, 한국인의 체질에 맞는 영어 학습방법론이 제시된다면 영어 정복의 길이 그다지 멀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 민족이 웅비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인 영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서 필자가 나름대로 검증하고 체계화한 영어의 듣기와 발음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필자는 이 방법론이 이제까지 우리의 영어 학습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즉 영어와 한국어 소리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필자는 이것을 학술적으로도 정리하기 위해 응용언어학 과정을 공부했다. 그러나 이미 결론은 주어져 있고, 연습을 통해 터득하는 것이 급한 상황에 3년여의 시간을 검증을 위해 투자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다수의 사람들이 읽고 익혀서 나름대로 유익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미리 방법론을 공개하는 것이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방향을 잘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를 터득하는 것이 우리의 시급한 과제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온 국민이 영어 때문에 주눅이 들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영어에 끌려다닐 필요는 더욱 없다.
영어교육의 방향
얼마 전 한국에서 중학교 1학년 영어문제집을 보내 왔다. 문제집을 훑어 보던 필자의 딸이 “아빠, 한국 중학생들은 이렇게 stupid해요?” 하고 물었다. 문제 가운데 “Is that building tall?”(저 건물은 높습니까?) 하는 질문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딸 아이의 말인즉, 건물을 보면서 건물이 높은지 낮은지 몰라서 그런 질문을 하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물론 한국의 중학생이 그런 수준은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 영어 교재를 만드는 사람들이 영어에 대해 갖고 있는 관점이 수준 낮은 것일 뿐이다.
이런 유사한 예는 성인을 위한 영어 교육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다. 얼마 전 필자가 한국을 잠시 방문해 있는 동안 교육방송의 영어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다. 그 날의 주제는 ‘전화받기(Taking a message)’였다. 필자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얼굴이 뜨거워졌는데, 그것은 그 프로그램에 나온 젊은 미국인 친구의 설명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전화를 받을 때에는 할 말을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좋겠고, 메모지도 준비하면 도움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아무리 영어를 가르치는 방송이라지만 한국의 성인들에게 전화 받는 방법까지 가르칠 필요가 있나. 한심하구먼”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런 다음에 또 다른 외국인 친구가 한국 대학생 영어 동아리를 만나면서, “Let’s meet these bright students.”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전화 받는 연습을 했다. 전화로 “누구 있어요, 없어요” 하는 간단한 대화를 영어로 할 줄 안다고 해서 한국 대학생이 똑똑하다는 평가를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인가? 한국 대학생들이나 프로그램 진행자들은 자존심도 없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화가 났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고 가르치는 방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학습하는 데에는 시간과 정력을 쏟아야 하겠지만 자존심까지 버려가면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영어를 터득하려는 것은 영어 자체가 목적이어서가 아니다. 영어는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 현실이 그런 지경이 되기까지에는 영어 교육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제부터라도 영어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주체적으로 가지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인을 위한 영어학습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들이 나와야 한다.
영어학습, 무엇이 문제인가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 전에 먼저 우리의 영어학습에 무엇이 문제인지 또는 어떤 부분에서 실패했는지를 간략하게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 문제 해결 방향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는 데에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그것은 듣기와 말하기일 것이다. 외국인이 하는 영어를 알아 듣고, 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소리에 담아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잘 안된다. 한국인들이 영어 듣기와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렇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은 왜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가?
한국인이 영어를 듣고 말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한국어의 소리와 영어의 소리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귀에 들리는 영어 소리들이 낯선 소리들이고, 내가 발음하려는 영어 소리들이 한국어 소리들과 다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영어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이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듣기 및 발음 교육은 이런 상식적인 사실을 지적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영어와 한국어 소리에 차이가 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한국인이 영어 소리를 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구명하지 못했다. 여기에 바로 한국 영어교육의 실패요인이 있는 것이다.
영어 소리를 듣고서 따라 하라고만 가르쳤지, 어떻게 따라 하면 되는지 방법을 설명해 주지 못했다. 무조건 따라서 하기만 하면 언젠가는 본토 발음을 익힐 수 있을 것이라는 주먹구구식 교육을 했다. 그러니 귀가 트일 까닭이 없고 발음이 좋아질 리가 없다. 그렇게 시키는대로 열심히 해도 되지 않으니까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는 반발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 영어교육의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실마리는 다음 두 가지를 구명하는 데에 달려있다. 첫째, 영어와 한국어 소리에 차이가 나는 이유, 둘째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영어와 한국어의 소리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혀를 굴리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입 안에서 혀가 움직이는 길이 다르다. 따라서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한국어의 혀가 움직이는 길과 영어의 혀가 움직이는 길이 어떻게 다른지를 가르치면 된다.
혀의 길을 알아야 한다
영어의 소리 세계로 들어가고 본토 발음을 익히는 지름길은 혀의 길, 즉 혀가 움직이는 길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야 혀를 굴릴 수 있다. 기존 영어 음성학 교재나 기타 영어 발음교재의 문제점은 우리에게 바로 이 혀의 길을 알려주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소리를 만드는 기관을 발성기관(spee ch organ)이라고 한다. 입술, 이, 혀, 성대, 폐 및 턱 등이 발성기관이다. 영미인들의 발성기관이나 한국인들의 발성기관이나 차이가 없다. 다만 소리를 만드느라 발성기관을 움직이고 사용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한국인이나 영미인이나 발성기관은 같지만, 조음구조(articulatory setting)가 다르다. 조음, 즉 소리를 만들기 위하여 발성기관을 움직이고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한국 아이는 본토 영어를 발음한다. 선천적으로 조음구조가 달라서 영어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영어를 조음하기 편한 구조로 발성기관이 연습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한국인들도 이것을 연습하기만 하면 본토 발음을 할 수 있다. 영어의 조음구조를 알아내고 혀를 굴리는 연습을 하면 본토 발음을 낼 수 있다.
기존 영어 음성학에 따른 설명은 한국인에게 별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어 음성학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 영어를 발음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영어 음성학 교재들을 보면 개별 모음과 자음들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모음을 분류하는 기준은 혀의 높이다. 즉 발음할 때 혀의 가장 높은 부위가 어디인가를 기준으로 모음을 분류하고 설명한다. 자음은 ① 성대 진동의 여부에 따라 ② 조음 지점에 따라 ③ 조음방식에 따라서 분류하고 설명한다. 유성음이냐 무성음이냐, 파열음이냐 마찰음이냐, 양순음이냐 순치음이냐 하는 설명이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영어 자체를 설명하는 방법으로는 정확한 것이지만, 한국인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필자는 영어 음성학 책을 읽고 발음이 좋아졌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영어의 소리와 발음을 연구하는 영어 음성학이 한국인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어 음성학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혀가 움직이는 길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혀의 높이를 기준으로 모음을 설명하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별의미가 없다. 자음도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혀 끝이 입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설명해주는 것이다.
발음할 때의 입 모양, 호흡 또는 발성기법 등도 영어 발음을 익힐 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입 모양이나 입술 움직임 등은 잘 알아두어야 한다. 발성기법도 도움이 된다.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이 호흡법이나 발성법을 배워서 실제 발성에 도움을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한국인이 영어 소리를 익히는데 있어 발성법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아랫배로부터 소리를 끌어 올려 발음한다는 식의 설명으로는 곤란하다.
혀가 평상시 쉬는 위치가 다르다
한국어와 영어는 평상시에 혀가 쉬는 위치가 다르다. 평상시 혀가 쉬는 위치를 우리는 혀의 기본 위치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기본 위치에서 발음이 시작된다. 혀가 입 안을 돌면서 발음을 한 다음에는 다시 쉬기 위해서 기본 위치로 되돌아온다. 한국어에서 혀가 쉴 때 혀 끝은 윗니-위잇몸에 붙어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혀 끝이 어디에 붙어 있나 확인해 보라. 영어에서 혀가 쉴 때 혀 끝의 위치는 아랫니-아래 잇몸이다. 이것을 그림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좁은 입 안이지만 혀 끝이 쉬는 위치를 한국어의 위치에서 영어의 위치로 옮기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평상시 혀 끝을 아래에 붙이고 있어야지”라고 생각을 하고 혀 끝을 옮겨도, 어느샌가 혀 끝은 위로 올라가 붙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필자가 10년 세월이 걸려 미국에서 제작된 발음연습 테이프를 가지고 연습하고, AFKN이나 다른 영어 방송들을 듣고 연습한 다음에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음성학 책을 보고 터득한 것이 아니고, 누구 이론을 배워 터득한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근거없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렇게 혀 끝의 기본 위치의 차이가 발음의 차이를 가져오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이것을 연습하면 (모방이 아닌) 조음구조의 변경을 통한 본토 발음을 익힐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2년여에 걸쳐 올라가는 혀 끝을 아래에 붙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이것은 태어나서 이제까지 익숙해 있던 습관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무척 어려운 작업이었다. 이제까지 사용하지 않던 혀의 근육, 입의 근육을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이 뻐근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연습한 결과, 지금은 혀 끝을 위에 붙이고 있어도 편하고, 아래에 붙이고 있어도 편하다. 혀 끝이 저절로 위로 올라가 붙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이 누구나 이런 연습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혀 끝을 아래에 붙이는 연습이 새로운 학습의 시작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연습이 진행되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조음구조를 바꾸지 않아도 훌륭한 영어 발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필자는 ‘신동아’ 3월호에서 본토 리듬을 익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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