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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종학 전 독도박물관장

”지키지도 못할 독도 박물관은 뭣합니까?”

  • 최영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지키지도 못할 독도 박물관은 뭣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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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사를 연구하면서 그는 일본 고문서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물증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조선총독 한국병합시말’은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총독이 내각에 보고한 극비 문서로 한국 병합은 일본 왕이 내각을 지휘하여 치밀한 계획에 따라 추진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추밀원회의 필기’는 병합이 절차상 문제로 일왕 재가를 거치지 않아 일본의 국내법조차 어긴 불법 조약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고, ‘한국 병합에 관한 서류’에는 당시 일본 정부와 통감부 간에 오간 수백통의 전문이 실려 있다. 이 자료들은 모두 일본 국립공문서관을 뒤져 수집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측이 뭐라고 변명할 근거가 없다. 그는 이 한일 합병사에 관한 자료를 한데 묶어 7월 말에 우리말로 번역해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를 영역해 국제사법재판소와 전세계 주요 도서관과 학술기관에 무료로 배포해 일제의 만행을 알릴 계획이다.

그는 최근 고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 화성 태생인 그는 수원의 자택 근처에 자신의 호를 딴 사운(史芸)연구소를 열고 모으기만 하던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수원성’으로 잘못 알려졌던 화성(華城)의 제이름도 그의 노력으로 되찾았다. 조선왕조시대 문명의 꽃이 가장 화려하게 핀 시기를 꼽으라면 15세기 세종 시대와 18세기 정조 시대를 들 수 있다. 세종시대의 상징이 한글이라면 정조 시대의 상징은 화성이다. 화성은 정조의 꿈이 녹아 있는 실학의 도시다.

화성이란 이름은 정조대왕이 덕이 넘치는 도시가 되라는 뜻으로 지은 것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정조 이래로 철종까지 무려 171회나 나오는 이름이다. 수원성은 일제가 멋대로 왜곡한 명칭으로 역사적인 뜻이 사라져버린 의미없는 이름이다.

그런데도 1996년 정부와 수원시는 ‘수원성 축성 200주년의 해’라는 명칭으로 각종 행사를 열려 했다. 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 해 1월 문화재관리국에 청원서를 제출하여 그 이름을 화성으로 바로잡았고, 12월에는 그 내용이 관보에 공시되었다.



이에 따라 1998년에 발행된 초·중·고 국정교과서에는 한결같이 ‘화성’으로 표기되었으나 검인정 교과서에는 여전히 ‘수원성’또는 ‘수원성곽’이라는 명칭이 여전히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는 1998년 4월 교육부와 해당 출판사, 언론사 등 모두 70여 곳에 청원서를 보내 이를 바로잡았다. 정보통신부가 발행한 ‘수원성 축성 200주년 기념 우표’가 계속 판매되고 있음을 지적하여 판매 중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그는 화성에 정열 뿐만 아니라 돈까지 쏟아부었다. 화성은 러시아의 페테르스부르크와 미국의 워싱턴 DC와 비슷한 시기인 1796년에 건설되었다. 하지만 건설 공사에 투입된 노동자와 기자재, 건설 비용 등을 이잡듯이 적어 놓은 공사보고서를 남긴 곳은 화성 뿐이다. 그는 사재 1억6000만원을 털어 정조 시대의 화성건설공사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200년 전 원본 그대로의 재질과 크기로 영역해서 이 중 100질을 전세계의 주요 도서관과 학술기관에 보냈다.

북한으로 넘어가는 이종학의 자료

1997년 12월에 화성이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당시 이 화성성역의궤가 중요한 구실을 했음은 물론이다. 화성은 정조 시대 이후 여러 차례 전란을 겪으면서 원형이 상당히 훼손되었고, 지금의 성곽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복원된 것이다. 유네스코의 선정위원들은 복원된 성곽이 200년 전의 화성과 같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했으나, 화성성역의궤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성 어느 부분의 공사는 언제 시작되어 언제 끝났는지, 누가 공사 감독을 맡았으며 소용된 물품과 인원은 어느 정도인지, 석재와 목재, 벽돌같은 기본 건축 재료의 출처며 수량과 가격은 물론이고 느릅나무 껍질, 집돼지 털, 개가죽 같은 소모품의 수량과 가격까지 적혀 있을 정도다. 또 행궁과 그를 둘러싼 5520m에 이르는 산성의 모든 건축물을 그림과 설명으로 기록하였다. 마치 설계 도면 같은 공사보고서로 언제든지 어느 부분이든지 복원과 보수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소장 자료를 북한에도 넘겨준다지요?

“자료 수집차 일본에 갔다가 조총련계 대학인 조선대와 여러 차례 접촉했어요. 그래서 지난 2월 일본 조선대 금병동 교수에게 일본 왕실 내각 문고에 90년 동안 보관되어 있다가 제가 찾아낸 일제의 한국 강점 비밀문서를 넘겨주었지요. 한국은 1965년 굴욕적인 한일조약으로 이미 청구권을 주장하기 힘들게 되었지만, 같은 민족인 북한이나마 제대로 일본과 수교 협상을 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이 밖에도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맺어진 국경선 협약 문서와 간도 협약 문서를 북한에 넘겨줄 작정입니다. 이는 북한이 중국과 국경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나는데 이종학 소장은 족히 10kg은 될 듯한 책꾸러미를 건네줬다. 모두가 지금까지 수십만건의 고서적과 자료를 뒤져 정리한 보물 같은 연구 성과물이었다. 이것들이 모두 너덜너덜한 한문투성이 고문서와 먼지가 잔뜩 낀 일본 문서 창고에서 알짜만 모아서 정리한 자료라니. 그동안 그가 본 1차 자료을 양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 중 몇 번이나 독도문제에 관한 일본인의 치밀함과 집요함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인보다 더 치밀하고 집요했다. 이종학 같은 사람 때문에 독도가 유지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동아 200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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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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