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말 그대로 조선일보에 반대한다는 뜻이다. 이 운동의 불길이 예사롭지 않게 번지고 있다.
이동복 전의원에게 물어봤다.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극좌는 극좌대로 가는 것 아니냐. 기본적으로 언론 탄압이자 언론 자유에 대한 부정이다. 사시에 맞게 신문을 만드는 건 그 신문의 권리이자 의무다. 안티조선운동은 권위주의를 비판하면서 또다른 권위주의를 들이대는 모순을 안고 있다.”
-‘조선일보 제 몫 찾아주기’라는 주장에 대해선.
“특정 언론에 대한 선호나 배척은 개인의 선택 문제지 집단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은 보수정론지라는 본성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다.”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참여연대 손혁재 협동사무처장에게 물었다.
-언론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안티조선 운동은 일종의 소비자운동이다. 언론 소비자 입장에서 불량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이니 언론자유 침해와는 상관없다.”
-왜 하필 조선일보인가.
“‘최장집 사건’과 총선시민연대 활동과정에 드러났듯 조선일보는 가장 극우·보수적 행태를 보이는 신문이다. 그 영향력을 줄여 우리 사회가 올바른 길로 가도록 해야 한다.”
대전 유성고 3학년 한윤형군. 조선일보 주최 논술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한군은 지난 8월21일 조선일보 인터뷰를 거부해 화제가 됐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인터넷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해왔으며 평소 지식인의 조선일보 기고를 반대해왔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정 언론사가 주최한 대회에서 수상자가 그 언론사의 인터뷰를 거부한 것도 드문 일인데다, 그 주인공이 고등학생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언론계 안팎의 시선을 모았다.
언론계 소식 전문지인 주간 미디어오늘 8월29일자에 실린 한군의 인터뷰 내용은 믿고 싶든 믿고 싶지 않든,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안티조선 운동이 하나의 사회적 쟁점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 준다.
“조선일보는 전시대 한국 언론의 문제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신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상의 다양성이나 인권 같은 기본적인 가치조차 잊게 만드는 냉전시대의 반공주의, 지역차별을 조장하는 반호남주의,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행태 등은 사실 과거에는 조선일보가 주도했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거의 모든 언론이 갖고 있던 문제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고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다른 언론은 어느 정도 변화했는데 유독 조선일보는 과거 행태를 버전만 바꿔 반복하고 있다.”
9월15일 오후 5시 서울 동교동에 있는 민언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실. 안티조선 운동에 동참한 사회단체 관계자 2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이 날 안티조선 운동을 시민운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공대위(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공대위는 9월20일 출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기구 이름도 정했다. ‘조선일보 반대 시민연대’, 약칭 ‘안티조선연대’다. 이들은 행사 당일 기자회견이 끝난 후 조선일보사 앞까지 피켓을 들고 거리행진을 할 예정이다.
인선도 끝났다.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 문규현 신부, 김동민 교수가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8월7일에 있었던 ‘조선일보 거부 지식인 1차 선언’의 주역인 김교수는 집행위원장을 겸직하기로 했다. 대변인은 최민희 민언련 사무총장이 맡았다.
안티조선은 특별한 행동(?)
9월15일 현재 ‘안티조선 연대’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사회단체는 민언련을 비롯, 41개에 이른다. 그밖에 참여연대 환경연합 등 주요 시민단체를 비롯한 20여 단체가 참가 여부를 논의중이다. 참가 단체들은 조선일보의 취재를 거부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와 함께 지식인들의 ‘2차 선언’이 이어질 예정이다. ‘1차 선언’에 참가한 지식인은 154명. ‘2차 선언’ 참가자는 9월15일 현재 100명을 넘어섰다. ‘2차 선언’의 주축도 대학교수들이다. 지방대 교수들이 대다수였던 1차 때와 달리 이장희(한국외국어대) 안병욱(가톨릭대) 이철기(동국대) 홍윤기(동국대) 안철택(고려대) 교수 등 ‘중앙 쪽’ 교수들이 많이 참여한다.
‘2차 선언’에서 눈에 띄는 인사들로는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 문학평론가 임헌영씨, 김교빈 학술단체협의회 대표 등이 있다. 박원순 사무처장은 ‘1차 선언’ 직후 곧바로 합류했다. 그밖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임수경씨, 언론인 임재경씨가 뒤늦게 참여 의사를 밝혔다.
시민연대가 계획하고 있는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시민들을 상대로 조선일보 구독거부 서명 및 모금 운동을 펼쳐 나간다 ▲지속적인 모니터 활동으로 조선일보 기사를 감시한다 ▲월 1회 ‘조선일보 거부의 날’을 정해 그 날은 조선일보 사옥 앞에서 시위를 한다 ▲홈페이지를 제작해 인터넷 홍보활동을 펼친다 ▲안티조선 시민강좌를 연다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조선일보 왜곡보도 사례를 모아 전시회를 갖는다 ▲조선일보의 친일행위 자료집을 만든다. 그밖에 시민걷기 대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
조선일보 인터뷰 및 기고를 거부한다는 지식인 선언은 안티조선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지식인 선언은 그동안 네티즌을 중심으로 전개돼온 안티조선 운동을 현실공간으로 끌어낸 것으로 향후 이 운동이 사회운동 또는 시민운동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들은 왜 이런 운동을 펴는가. 지식인 154명이 발표한 조선일보 거부 선언문을 살펴보자.
“특히 우리는 반개혁적일 뿐 아니라 무력통일을 공공연히 주장하면서 기득권 수호에 연연하는 수구신문 조선일보의 행태에 주목하게 된다. 그 행태가 하도 도발적이고 기괴하여 이를 더 이상 방치해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데 우리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안티조선 운동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를 ‘특정한 소수’의 ‘특별한 행동’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렇게 무시해버리기엔 이 운동의 뿌리와 배경이 만만찮다. 이번 선언은 올초부터 두드러진 활동을 시작한 네티즌들의 반조선일보운동을 등에 업고 있다. 이들 네티즌들은 인터넷 사이트 ‘우리모두(www.urimodu.com)’와 인터넷 언론 ‘오 마이 뉴스’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조선일보 반대 및 거부운동을 펼쳐왔다. 한윤형군도 ‘우리모두’의 영향을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지난 7월에 있었던 작가 황석영씨의 동인문학상 심사대상 거부 파문도 지식인 선언에 자극제로 작용했다. 황씨는 7월20일 한겨레신문 특별기고를 통해 자신의 소설 ‘오래된 정원’이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심사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는 곧 조선일보에 대한 거부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사건 후 문단은 안티조선 논쟁에 휩싸였다.
안티조선 운동은 총선시민연대 활동의 맥을 잇는 것이기도 하다. 당시 총선시민연대는, 비록 형식적 움직임에 그치긴 했지만, 조선일보의 ‘부당한 보도’에 대응하기 위해 ‘언론개혁특위’까지 만들었다. 지난번 1차 선언 때 상당수 시민운동권 인사들이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데 이어 이번 2차 선언에 각종 사회단체가 단체 명의로 참여한 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반조선 인터넷사이트 ‘우리모두’
조선일보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처음으로 연대한 것은 1998년 11월. 이른바 ‘최장집 사건’ 직후 44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만든 ‘조선일보 허위왜곡보도 공동대책위원회’다. ‘안티조선 연대’의 원조 격인 이 기구는 조선일보 취재거부, 구독거부, 보도자료 안 보내기 등의 목표를 내걸었으나 변죽만 울리다 문을 닫았다.
안티조선 운동이 시민연대로 결집하게 된 데는 ‘우리모두’의 공이 크다. 반조선일보 인터넷 사이트인 ‘우리모두’가 문을 연 것은 지난 1월. ‘우리모두’는 개설 당시 ‘나를 고소하라’는 공격적 구호를 내걸고 안티조선 서명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를 고소하라’는 구호는 조선일보를 향한 것으로,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홍세화씨가 지난해 11월29일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쓰며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당시 홍씨는 그 글에서 ‘최장집 사건’과 관련, 조선일보와 해당 기자를 맹렬히 비난하며 “나를 고소하라”고 외쳤다.
홍씨의 이런 ‘도발적 행위’는 ‘최장집 사건’으로 조선일보 기자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전북대 강준만 교수와 월간지 ‘말’과의 연대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홍씨의 칼럼이 나간 직후 네티즌들은 강교수와 ‘말’지를 위한 모금운동을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모두’의 탄생배경이다.
‘우리모두’는 개설 직후 하루 평균 1000명 이상의 네티즌이 접속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가상공간에 머물던 이들이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은 지난 3월5일. 회원 500여명은 이날 조선일보 창간 80주년을 ‘기념해’ 대학로에서 시민들을 상대로 안티조선 서명운동을 전개한 뒤 피켓을 흔들며 조선일보 사옥이 있는 코리아나호텔까지 행진했다.
‘우리모두’는 모금한 돈으로 지난 7월7일자 한겨레신문에 전면광고를 실었다. ‘조선일보여, 나를 고소하라’라는 제목의 이 광고에서 ‘우리모두’는 안티조선 서명운동에 참가한 시민 1748명의 이름을 공개했다. ‘우리모두’의 서명운동과 모금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모두’ 회원들 중 안티조선 운동의 이론적·사상적 뿌리가 강준만 교수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김대중 죽이기’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강교수는 일찍이 ‘하이에나는 때를 기다린다-김대중 정권, 지역감정, 그리고 조선일보’ 등 일련의 언론비판 저서를 통해 언론, 특히 조선일보를 집중적으로 비난하는 한편 이 문제에 ‘둔감한’ 지식인들을 비판해왔다. ‘강준만 현상’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독특한 그의 실명비판방식은 지식인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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