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사회학과 송복(63) 교수는 보수 또는 우파 진영의 대표적 논객으로 통한다. 8월28일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안티조선운동과 관련한 기고를 부탁했다. 송교수는 글을 쓸 여유가 없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글 쓰기에 비해 시간을 덜 뺏기는 인터뷰에는 응할 수 있다며 이 논쟁에 참여할 뜻을 비췄다. 그는 통화에서 안티조선운동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을 ‘좌파 성향’으로 규정했다.
인터뷰는 다음날 오전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차를 끓여 내오는 모습과 세월의 풍파가 녹아 있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서 경륜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는 대체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의 논리를 폈는데 몇 가지 질문에 대해선 목에 굵은 힘줄이 설 정도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8월7일 학계·문화계·종교계·시민운동권 인사 154명이 ‘조선일보 기고와 인터뷰를 거부하는 지식인 1차 선언’을 함으로써 이른바 안티조선 논쟁이 지식인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먼저 조선일보의 정체성 문제부터 따져보지요. 안티조선 진영에선 조선일보를 극우로 규정합니다. 수구·보수 이상의 반통일·냉전세력으로 보는 거죠.
“그들은 우리 사회 지식인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5∼6% 될까요. 그런데 다수의 지식인은 이런 첨예한 이슈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조선일보 정체성에 시비를 거는 지식인들은 목소리가 높으니 두드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일부 지식인의 행위를 두고 전 지식인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보면 잘못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일부 지식인은 기존 세력에 대해 시비를 걸고 나오게 돼 있습니다. 조선일보에 대해 시비를 건다면 똑같이 동아일보나 중앙일보 또는 한국일보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어야 합니다. 더 확대하면 경향 문화에 대해서도요. 그런데 왜 유독 조선에 대해서만 그러느냐. 내가 신문들을 다 읽는데 논조가 똑같아요. 조선이 반통일이면 동아는 반통일 아닙니까. 조선이 극우면 동아는 극우 아닙니까. 중앙은 아니고 한국은 아닙니까.”
―차이가 없단 말이죠?
“하나도 없지요. 내가 읽어보니 그래요. 내가 신문기자 출신이고, 그 신문들을 수십 년 읽어왔고 그 신문들에 수십 년 글을 써왔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조선에 쓸 때와 다른 신문들에 쓸 때 논조가 다르냐. 똑같습니다. 다른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기자들은 다릅니까. 조선 기자와 다른 신문 기자들, 성향이 다릅니까. 같잖아요? 그런데 왜 안티조선을 하느냐. 공격 포커스를 맞추기 위해 으레 하는 짓이란 말이죠. 전술이든 전략이든 공격할 때는 에너지를 한 곳에 집중시켜야 하니까. 그 대상이 조선이 됐을 뿐입니다.”
송교수는 안티조선 진영의 운동방식을 ‘공산주의자들이 쓰는 수법’이라고 했다. 이어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에 대한 자신의 지론을 전개한 뒤 이를 안티조선 논쟁에 적용했다.
“조선 동아 중앙은 무엇을 지지하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지하지 않습니까,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지 않습니까. 뭔 차이가 있습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한 신문에만 초점을 맞춰 너만 극우다, 보수반동이다, 이렇게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전략이고 전술입니다. 서구사회의 역사에 비춰볼 때 이런 방식은 공산주의 세력이 쓰던 것입니다. 강한 쪽에 포커스를 두고 그걸 공격해 무너뜨리고 나선 그 다음으로 나아가는 방식, 100년 전 공산주의자들이 쓰던 방식을 우리 지식인들이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구태의연한 짓입니까. 얼마나 비 지적이고 비 진보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짓입니까. 왜 신문들을 똑같이 공격하지 않느냐. 그 이유가 뭐겠습니까. 똑같이 공격하면 다 들고 일어나기 때문에 이쪽이 당하거든요. 그런데 조선 하나만 공격하면 동아나 중앙 한국쪽에서 강한 라이벌 하나 넘어뜨렸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은근히 공격하는 사람들을 지지도 하면서.”
―전혀 차별성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안티조선 쪽에선 이른바 매카시즘 관점에서 조선일보만이 해왔던 작업이 분명히 있다고 보거든요. 몇몇 정부 인사들에 대한 일련의 사상검증 작업만 해도 지식인사회나 학계 시민운동권으로부터 비난을 받았고, 언론계 내부에서도 논란이 됐던 게 사실입니다. 예컨대 문민정부 시절 한완상 통일부총리나 현 정부의 최장집 교수가 물러난 데는 조선일보의 공격이 주효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점에서 조선이 뭔가 다르다고 보지 않습니까.
“동아 중앙은 한완상 최장집을 지지했지요.”
―지지라기보다는, 글쎄요. 일정 거리를 둔 것 아닐까요.
“나는 지지라고 봤어요. 내가 볼 때 조선은 용기가 있었고 동아나 중앙은 시세 영합적인 면이 보였습니다. 최장집 교수 사건을 예로 듭시다. 최교수가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장이 됐습니다. 그거 아주 중요한 자리입니다. 대통령의 주요 정책을 자문하는 자리니까요. 최장집교수 개인으로 보면 아주 훌륭한 학자입니다. 그가 어떤 연구를 하든 국가가 간섭하면 안 됩니다. 신문도 공격하면 안 됩니다. 왜? 우리 헌법이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니까요.
그럼 왜 조선이 그렇게 나왔냐. 그때 나도 조선일보 지면에 같은 논조의 글을 썼습니다. 제목은 ‘공인은 검증돼야 한다’였습니다. 최장집 개인적으로 어떤 연구를 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북한을 지지하든 공산주의를 지지하든, 현정부를 비판하든 안 하든 그건 자유입니다. 그 자유는 보장돼야 합니다. 단 공인이 됐을 땐 문제가 다르다는 겁니다. 공인이라면 그 사회의 체제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체제인데 거기에 반대하는 사람이 정부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특히 대통령의 주요 정책을 자문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왜 조선만 공격하나
―최교수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닌 걸로 아는데요.
“최장집 교수 글을 보면 6·25에 대해 수정주의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 관점, 좋은 겁니다. 학자는 여러 관점을 가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6·25는 민족해방전쟁이다, 6·25를 일으킨 북쪽은 민족통일을 위한 세력이므로 나름대로 정당성을 갖고 있다, 이런 점을 글에 은연중 비추고 있어요. 꼭 끄집어낼 순 없지만 그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그런 사람이 대통령에게 어떤 자문을 할지,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바라는 일반 국민은 불안하기 한량없고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 의혹을 누가 풀어주느냐. 신문이 나서서 풀어줘야 하는 것 아니요. 언론이 왜 있는 겁니까. 나도 그런 얘기를 썼는데, 마녀사냥식으로 정치학회부터 나서서 몰아붙이고 다른 신문들은 은근히 그걸 지지하고. 그건 시세 영합적인 행동 아닙니까. 그런 면에서 난 조선이 굉장히 용기 있는 신문이라고 생각해요. 투명성 선명성을 갖춘 신문으로 봅니다.”
송교수는 조선일보 외 나머지 신문들의 ‘비겁함’을 서슴없이 ‘단죄’했다. “분명히 이렇게 써주세요”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교수 비판에 적용한 자유민주주의자와 공산주의자라는 이분법적 잣대를 한완상 전부총리에게는 약간 누그러진 형태로 들이댔다.
“한완상씨는 개인적으로도 잘 아는데, 글도 그렇고, 이 분은 자유민주주의자입니다. 이 분이 당시 지식인들과 다른 점은 냉전체제에 대해 상당한 거부감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북한 공산주의를 수용하는 측면도 있었다고 볼 수 있어요.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지식인이라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 이런 사람을 통일부장관에 기용하면 사람들이 의심을 가질 만도 하지요.
지금까지 우리는 냉전체제에서 살아왔고, 북한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테러리즘이 강한 공산주의국가입니다. 그런데 저런 유화정책을 쓰는 사람, 저런 자유주의자를―공산주의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폭넓은 자유주의자지요―장관에 앉히니까 국민이 불안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 가질 수 있잖아요. 그런 건 신문이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이 아니라 당시를 생각하면 백번 표현하고도 남을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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