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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金鍾仁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충고

“거시지표 믿지 말고 재벌 엄살에 속지 말라”

  • 이형삼·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거시지표 믿지 말고 재벌 엄살에 속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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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김 전수석께 권한이 주어졌다면 당장 어디부터 손을 대겠습니까.

“그런 가정은 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다만 상식선에서 ‘경제는 속이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시장경제에서는 감출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더구나 IMF체제 이후 우리 경제는 대외적으로 완전히 개방됐기 때문에 국제금융시장도 우리 경제를 속속들이 알고 있어요.

이런 현실에서 경제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모든 경제주체의 컨센서스를 이뤄내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컨센서스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경제 실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야 해요. 다 보여준 상태에서 함께 경제를 걱정해야죠. 그런 뒤에 ‘우리 경제 형편이 이러하니 더 확고하고 안정된 경제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앞으로 이런 정책을 쓸 수밖에 없다’고 천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질적인 해결책을 도출해낼 수 있어요.”

─지금까지 정부가 경제 실상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뭘 숨겼다기보다는 회피했다고 할까요. 경제정책을 담당한 사람들에겐 경제에 문제가 있을 때 거기에 달라붙어서 문제를 풀어가는 책무가 있는데, 정작 문제를 향해 달려들진 않고, 멀찌감치 물러나 문제를 푸는 방법에 대해서 논의만 거듭하는 인상을 받았어요. 어떤 상황이 닥쳐왔을 때 그것을 호도하거나 회피하려고 들면 경제는 실패합니다. 극단적인 예지만, 구소련의 와해과정이 그걸 잘 보여주잖아요.



소련은 50년대 중반에 이미 중앙계획경제의 통제방식이 비효율적이란 걸 깨달았어요. 57년 20차 소련공산당대회 연설문에 벌써 ‘자본주의 경제운영 방법의 일부를 도입하지 않으면 소련경제의 장래가 어둡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흐루시초프가 이걸 시도했는데, 기득권을 잃을까봐 우려한 공산당 노멘클라투라의 견제로 실각했죠. 그 뒤를 이은 브레즈네프는 기존 경제체제를 답습했고, 그렇게 20년을 끌다가 저렇게 무너진 것 아닙니까. 변화된 경제상황을 인정하고, 공개하고, 그것에 적응했다면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었을 텐데,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나라가 흔들린 거죠.”

실상을 일부러 숨기지 않았다면 회피했거나 몰랐다는 얘기다. 96년에 국제수지가 처음으로 230억 달러 적자로 돌아섰는데도 경제당국은 별다른 대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외환위기의 신호가 감지됐는데도 무시했다는 것이다. 막상 외환위기가 닥친 후에도 노동법이 통과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거나 금융감독 관련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게 원인이라는, 본질을 벗어난 어설픈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정부와 금융기관은 구조조정에 착수한 시점에도 정확한 부실규모를 공개하지 않거나 축소함으로써 효과적인 구조조정을 더디게 했다. 국민이 받게 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이 또한 실상을 은폐해 컨센서스를 회피한 행위였다.

원기 회복했을 때 수술해야

“옛날 이야기 더 해볼까요? 85년에 외환사정이 좀 불안해지자 당국은 당장에 원화를 평가절하했어요. 그 해 9월에 플라자협정으로 엔화며 유럽화며 대만화까지 다 절상했는데, 우리는 절상은커녕 1달러에 890원선까지 절하했어요. 그 덕분에 86년부터 89년까지 국제수지가 흑자를 기록하자 경제기획원에선 ‘이제 영원한 흑자국으로 전환한다’ ‘흑자국으로 돌입했다’고 떠들었어요. 그래놓고는 89년 11월 들어 분위기가 싹 바뀌자 ‘경제위기가 온다’며 꼬리를 내렸어요.

90년에는 ‘외환이 넘쳐 통화운영에 문제가 있다’며 통화안정채를 발행하고, 해외 부동산 매입 자유화, 해외여행경비 자유화 같은 정책을 내놨다가 1년도 못가 뒤엎었죠.

경제를 이런 식으로 운영해선 안 돼요. 우선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정책담당자들은 무엇보다 말을 아껴야 해요.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공연히 놀라게 하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 당장 핸들링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만 얘기하면 돼요.”

─개혁에는 다소간의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고,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 또한 서로 다를테니 컨센서스를 끌어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사실은 IMF체제로 들어간 직후가 국민적 컨센서스에 도달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시기였다고 봅니다. 약간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우리 경제가 정상화해서 민생을 편안케 할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그냥 주저앉을 것이냐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긴장이 많이 풀렸어요. IMF체제에서 벗어났다는 정부 발표도 있었고,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성장률이 계속 두자리수였다고 하니 ‘이제 뭐 걱정할 게 있겠나’ 하는 분위기로 변했어요. 그러니 지금 강도높은 개혁을 하자고 하면 ‘그 어렵던 시절에도 안 한 것을 왜 지금처럼 좋은 시점에 하자는 말이냐’며 반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볼 수도 있어요. 당시엔 수술을 하고 싶어도 몸이 워낙 허약해서 칼을 댔다간 생명을 잃을 것 같아 수술을 미뤘지만, 이제는 웬만큼 원기가 회복됐으니 지금이야말로 과감하게 수술해서 병의 원인을 도려내야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 후반에 들어서면 정책집행의 강도가 약해지게 마련이에요. 이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입했는데도 구조조정이 왜 지지부진하다고 보십니까.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죠. 한국 금융기관이 국제금융시장에서 독자 생존하려면 금융기관과 기업의 관계가 금융기관의 잣대에 따라 좌우돼야 합니다. 금융기관도 기업입니다. 이윤을 극대화해서 주가를 올려야 해요. 금융기관이 주주가치를 최우선으로 삼는다면 부실기업에 밑빠진 독에 물 붓는 식으로 돈을 대주진 않아요. 상대가 재벌이든 중소기업이든 판단은 금융기관 스스로 내리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정치적, 사회적 문제입니다. 이걸 해결하는 건 정부 몫이지, 은행더러 알아서 하라고 할 일이 아니에요. 지금까지의 기업부실 처리과정을 보면 항상 은행에 모든 걸 떠안겼어요. 그래서 은행들이 이꼴이 된 것 아닙니까.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가면 금융기관 정상화는 요원해요.

작년에 독일에 갔을 때 150년 역사의 독일 최대 건설업체가 부도 위기를 맞았어요. 채권은행인 도이체방크는 그런 기업조차 가차없이 부도를 내겠다고 엄포를 놓더군요. 그게 금융 논리죠. 그런데 한꺼번에 10만 명의 실업자가 생길 판이니 정부가 그냥 두고볼 수 없었는지 결국 총리가 도이체방크 본점이 있는 프랑크푸르트로 날아가 정부가 부실의 일부를 떠맡기로 하고 부도를 면하게 합디다. 정치적 판단은 정치권에서 하되, 그 판단이 금융기관에 손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진 거죠. 그런 판단까지 금융기관에 맡기면 금융기관은 정부 눈치를 봐야 하고, 대규모 부실이 드러나면 금융기관에도 타격이 올 테니 계속 시간을 끌 수밖에요.”

그는 금융기관에도 잘못이 많다고 지적했다. 부실기업에 무리하게 출자전환을 해준 것이 그 예. 워크아웃 기업에 대해선 과감한 감자가 선행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자전환을 하더라도 감자를 하면서 해야 경영권 문제도 잘 풀리고 매각하기도 쉬운데, 눈곱만큼 감자하는 시늉만 하다 보니 손실 정산도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했다. 구조조정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금융권 구조조정은 실물 부문, 즉 부실기업의 구조조정과 병행하지 않으면 비용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봉책은 이제 그만

투신권이 돈 흐름의 허리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돈이란 돈은 다 은행금고에 쌓여 단기자금으로 머물고 있다. 그러자 정부는 투신권으로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 비과세 상품을 허용하는 등의 흡인책을 내놓았다. 김 전수석은 이런 대책이 한치 앞을 못 내다본 미봉책이라고 혹평했다.

“난센스예요. IMF체제 이후 세제가 재분배 기능을 못해 빈부격차가 심해졌다고 하는데, 수십억, 수백억씩 가진 사람들이 그런 비과세 상품에 돈을 몰아넣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다른 금융기관에 가는 돈에 대해선 과세하고, 투신으로 가는 돈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는 것도 형평에 맞지 않아요.

또 자금 회전이 안 된다고 사채인수펀드 같은 걸 만든다는데, 그렇게 되면 금융기관들이 거기에 자금을 출연해야 돼요. 그렇게 사들인 사채가 나중에 현금화 될지 안 될지 누가 압니까. 이런 걸 사들이면 국제금융시장에서 또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일 거예요.

돈을 아무리 집어넣어도 성과가 안 보이는 투신을 무슨 수로 회생시키겠다는 겁니까. 허리에 디스크가 생겼으면 디스크 수술을 해야지, 반창고 한 장 달랑 붙인다고 치료가 됩니까? 과거에는 돈이 국제거래 결제수단이었지만, 이제는 돈 자체가 하나의 상품입니다. 국경을 넘나드는 돈의 규모가 몇 년 전에 비해 수십, 수백 배 늘었어요. 그처럼 국제금융시장 여건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우리 금융권을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질질 끌고 가겠다는 겁니까.”

오늘날 미국에서 IT산업의 번창으로 상징되는 뉴 이코노미 시대가 화려하게 막을 올린 것도 이미 70년대 중반부터 지독한 구조조정을 실시해온 결실이라는 설명이다.

김 전수석은 “새 경제팀이 관록있는 전문 경제관료들인데다,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 테니 일을 잘 처리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했다. 다만 좀더 긴 안목으로 문제에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새 경제팀은 ▲내년 2월까지 기업·금융부문의 잠재부실 처리를 마무리하고 ▲내년 말까지 시장경제원리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관행을 개선하며 ▲2003년까지 금융 기업 노동 공공 등 4대 부문 선진화를 추진한다는 구체적인 개혁 일정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김 전수석은 “이런 일정을 내놓은 것은 어디가 잘못됐는지 새 경제팀이 잘 알고 있다는 뜻이지만, 구조조정은 1∼2년 사이에 되는 게 아닌만큼 우선은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IMF체제를 성공적으로 졸업했다고 평가받는 영국경제도 구조조정을 거쳐 제자리를 찾기까지 10년이 걸렸다는 것. 우리의 경우도 산적해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려면 ‘어느 달까지 뭘 하고 언제까지 뭘 끝낸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어렵다는 것이다. 설령 개혁 완수의 ‘월계관’을 다음 정권에 물려주는 한이 있더라도 정확한 방향 설정과 지속적인 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문이다.

신동아 200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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