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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러시아 채권으로 북한의 러시아빚 갚는다?

DJ·김정일·푸틴의 러시아차관 3각 게임

  • 최영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한국의 러시아 채권으로 북한의 러시아빚 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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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화 원장에 따르면 러시아 차관 상쇄 논의가 나온 것은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서 러시아가 북한에 차관을 환급하라고 압박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한국쪽에서 북한쪽으로 막대한 경협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포착하고 빚독촉을 강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현실적으로 40억 달러를 받기는 힘드니, 5억 달러만 갚으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이 부채를 갚지 않으면 무기 운용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무기는 거의 러시아제로 편성되어 있다. 이런 경고는 북한에는 상당한 위협이다. 미국이 한국군에 대해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전후 사정을 볼 때 푸틴대통령의 압박을 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대중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러시아 차관 문제를 거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병화 원장은 말했다. 즉 한국이 러시아에 제공한 차관 14억7000만 달러와 북한이 러시아에 지고 있는 부채 38억 루블을 서로 상쇄해달라고 부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병화 원장은 남북정상회담 직후 한국 정부의 고위 관계자로부터 “북한의 러시아 부채 40억 달러와 러시아로부터 한국이 받을 14억7000만 달러를 상쇄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타협해준다면 보답하겠다”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가 이원장을 찾은 이유는 그가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러시아 극동지역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특히 연해주 지역에 관한 한 독보적인 정보력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1998년 8월25일 당시 이종찬 국정원장은 국회정보위에서 러시아 지역 우리 기업들의 활동을 소개하기 위해 이병화 원장의 국제농업개발원 사업을 거론하며, 이 단체가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한·러간에 경제 교류를 펴고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원장은 제안을 받은 뒤 친한 사이인 극동러시아 농공위원회 우바로프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보낸 것이 앞에 적시한 편지다. 이 편지는 극동러시아 총독 콘스탄틴 폴리콥스키를 경유하여 러시아 외무장관인 이바노프와 농업성 차관, 그리고 국가두마(하원)의장에게 전달되었다. 러시아측은 서신을 받았다는 연락을 이병화 원장에게 보냈다.

이병화 원장의 서신 심부름을 한 우바로프 박사는 오래 전부터 한국의 러시아 차관건을 극동러시아 개발권으로 갈음하자고 제안해온 인물이다. 2000년 5월13일 서울에서는 한국의 시베리아학회와 국제농업개발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극동러시아의 자원개발과 한국의 협력방안’이라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때 러시아측에서는 연해주 농업아카데미 총장인 A.A 데민 박사와 극동지역 농공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한 우바로프 박사가 주제 발표를 했다. 다음은 우바로프 박사의 발표 내용이다.



“한·러 공동 극동지역의 농업을 포함한 자원개발에서는 별도의 자금이 아닌 당시(1990년도) 한·소 국교수립 때 제공된 차관금액 14억 달러를 이용하면 될 것으로 봅니다. 이것에 대한 논의는 작년(1999년) 5월 김대중 대통령과 옐친 대통령의 회담에서도 제기된 바 있는데, 극동지역 과학자들과 실력자들이 이 프로젝트를 적극 찬성하고 있고, 러시아 농공위원회, 극동 바이칼연안농업조정위원회, 지역하원위원회, 국가도 적극 지원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극동지역과 한국의 협력은 동북아에 큰 농산물 시장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야 합니다.”

러시아 차관 상쇄 문제와 관련해서는 푸틴 대통령의 행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7월19일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 위원장과 북·러 공동선언을 채택한 뒤, 다음날인 7월20일 러시아 극동 아무르 유역의 블라고시첸스크로 날아갔다. 7월21일부터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리는 서방선진8개국(G8) 회담을 앞둔 상황이었다. 푸틴이 블라고시첸스크로 간 것은 러시아 극동지역 회의 때문이었다. 이 회의에서는 러시아 차관 상쇄, 연해주 농업 투자(한국자본과 북한의 인력 동원), 연해주 지하자원 개발 등의 안건이 광범위하게 논의되었다.

극동러시아 개발과 한국진출

이원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채권액(40억 달러)과 한국에 대한 차관액(14억7000만 달러)이 서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내부에 이견이 있지만, 한국이 원한다면 원칙적으로 상쇄한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러시아로서는 금전 손실은 있지만 이번 일을 원만하게 이끌면 그동안 소원했던 북한을 자신들의 영향력 아래 확실하게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러시아는 그런 점에서 7월19일 밤 북·러 정상회담에서 북·러 공동선언 11개항 가운데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계획(NMD)에 북·러가 공동으로 반대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또 러시아는 북한이 만주횡단철도(TMR)나 중국횡단철도(TCR), 몽골통과철도(TMGR)보다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유럽가는 길로 이용해주길 바라고 있다. 나아가 유라시아 철도를 보수하고 새로 건설하는데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

러시아는 또 한민족을 극동러시아에 유치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이 지역에 넘치고 있는 중국인과 일본의 간접 침략을 견제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푸틴 대통령은 “남북한의 정상회담은 매우 바람직한 정치 행동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극동 러시아 개발과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서방 국가 중에는 겉으로는 남북 정상회담을 환영한다고 밝히지만, 속으로는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나라가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러시아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남북 통일에 가장 비중있는 협력자가 될 것이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남북한의 화해 분위기는 어쨌든 한반도에 러시아의 영향력을 늘리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북, “한국기업 돈으로 지불”

하지만 차관 상쇄건은 푸틴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8월19일 국가두마의장 등 의회 관계자를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는 북한에 대한 채권액이 한국에 대한 채무액과 차이가 나니, 북한에 1억 달러만 요구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이 1억 달러는 이병화 원장이 극동지역농업발전기금으로 쓰자며 러시아에 제의한 액수와 같은 금액이다. 애초에 러시아가 북한에 현실적인 금액으로 요구한 5억 달러가 1억 달러로 깎인 셈이다. 러시아는 북한이 1억 달러를 내놓으면 이 돈으로 은행을 설립해서 연해주 지역에 농장을 만들고, 생산되는 쌀은 북한에 보낼 수 있다고 제의했으나 북한은 이 돈도 내놓을 수 없다고 거부했다.

하지만 북한은 여기에 단서를 단 것으로 알려졌다. 내긴 내되 한국기업에서 받아서 내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 기업을 끌어들이는 대가로 북한 철도 운영권, 특히 평라선 운영권을 제공하면 1억 달러를 내놓을 기업이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는 것이다. 북한 철도 가운데 러시아와 관련해서 경제성이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선은 평양에서 라진을 연결하는 평라선이다. 경의선을 타고 한국에서 올라온 화차가 러시아횡단철도와 연결되려면 이 노선을 타야 한다. 북한은 당분간은 경의선을 제외한 다른 철도는 남쪽과 이을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의선만 연결하더라도 얼마든지 여기서 분기하여 국경철도와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모든 노선은 일단 평양을 거친 뒤 분기시키겠다는 뜻이다. 평라선은 현재 제대로 보수하지 않아, 레일이 낡아 기차가 제대로 속력을 낼 수 없는 상태다. 또 복선화도 상당 부분 진행해야 한다.

북한은 이미 몇년 전부터 남북한 철도를 대륙 철도와 연결시켜 통과세로 장사를 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었고 실제로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평라선을 보수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북한은 1998년께 미국의 ‘Karl Associates’와 평라선 보수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라선을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북한 군부를 설득하여 이 노선에 남한 기업을 유치하여 개발하고 극동 러시아에 인민군을 파견하여 남북한 공동영농사업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생기는 수확물을 북한으로 이송해서 북한의 식량난 해결에도 일조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한국 기업은 현대그룹이다. 정몽구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는 현대정공은 이미 철도 화차를 북한에서 조립 생산하는 방식의 경협을 구상해왔다. 또 평라선에는 원산역 바로 위에 문천역이 있다. 이곳은 한국의 경기도 의왕 부곡역에 있는 철도 기지창 같은 곳이다. 현대정공은 오랫동안 평라선의 문천 기지창에 눈독을 들여왔다. 평라선 보수 공사를 현대가 따낼 수만 있다면 현대로서는 막대한 이권이 아닐 수 없다. 평라선을 복선으로 만들고 레일을 새로 깐 뒤, 이곳을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로 넘어가는 화물에 대한 통행세를 챙길 수 있다면 현대는 1억 달러를 내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현대측이 이 금액을 출자하겠다고 최근 나섰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현대가 무슨 여유가 있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현대측은 그 정도 돈은 낼 수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래서 청와대가 이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사실무근”

우리의 대 러시아 채권을 북한의 러시아빚과 상쇄한다는 일련의 논의에 대해 정부는 전혀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외교통상부 신흥시장과 러시아 경제담당 홍석인 사무관은 “러시아 차관 문제는 양국간에 합의된 사실이 없으며, 금년중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 아울러 차관과 부채 상쇄 문제는 민간 차원에서는 협의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연구원의 러시아 전문가 여인곤 박사도 한국이 러시아로부터 받아야 할 14억7000만 달러는 1999년 10월 모스크바 실무회의에서 2016년까지 러시아의 과학기술과 원자재로 대체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하며, 이병화 원장이 추진하고 있는 사항은 정치적으로 협의할 사항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러시아 차관 문제는 김대통령이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러시아 차관으로 북한 빚을 갚는다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사안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현정권이 북한에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있다는 야당의 비판이 고조돼 있어 정치 쟁점화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한나라당에서는 이번 정기 국회 국정감사를 준비하면서 일부 의원 중심으로 러시아 차관 상쇄 논의와 관련한 조사 활동을 은밀히 폈다. 국정 감사가 벌어지면 이 문제로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 여당이 이 문제를 선뜻 거론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신동아 200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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