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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현지취재|규슈(九州)의 생태 산촌마을

숲과 사람이 어우러진 그린토피아

  • 하태원·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숲과 사람이 어우러진 그린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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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의 농촌과 산촌마을에 아직까지는 호사카 같은 귀농자들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우메정까지 제발로 찾아 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계속적인 이농현상에 따른 인구감소와 영농후계자 부족으로 고민하던 우메는 매년 도쿄, 오사카(大阪), 후쿠오카(福岡) 등 3개 도시에서 귀농을 위한 설명회를 가진다.

현재 우메정 화훼단지에는 도쿄에서 온 마쓰모토(松本) 가족 등 대도시 출신 8가족이 농사를 짓고 있다. 이들 중에는 규슈(九州) 제국대 농과대를 졸업한 사람도 있다. 농사경험이 없는 귀농자들을 위해서 우메정 측에서는 1년간 농사기술 등을 전수해주는 연수기회도 준다.

현재는 농가 1가구당 20a인 화훼면적을 1가구당 30a로 늘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농가경영분석 결과 연간 2000만엔(2억1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내기 위한 적정 화훼면적이라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

오이타현의 두 개 산촌을 견학한 일행은 미야자키현(宮崎縣)으로 발길을 옮겼다. 미야자키현의 산림면적은 현 전체 면적의 76%에 해당하는 59만㏊. 현 북부에 위치한 미미카와(耳川) 임업지역은 새롭게 조림이 실시된 신흥 임업지역이다. 확대조림의 결과 일본의 대표나무인 삼나무를 중심으로 한 25만여㏊의 인공림이 조성됐고,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구석구석 도로를 내 생산기반과 유통가공체제에 대한 정비를 마쳤다.

미야자키의 원목 생산량은 연간 130여만㎥로 전국 3위이지만 침엽수 생산량은 99만㎥로 홋카이도(北海島) 다음이고 삼나무만을 놓고 보면 83만㎥로 일본 최고를 자랑한다. 이와 같이 풍부한 산림자원을 토대로 미야자키현은 북부의 5개 정촌(町村)을 모델권역으로 지정, ‘포레스토피아(숲을 의미하는 포레스트와 이상향을 의미하는 유토피아의 합성어) 미야자키’ 구상을 추진중이다.



미야자키현에 있는 난고촌(南鄕村)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곳이다. 마을 어귀에 이르자 이미 ‘백제의 마을 남향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안내문이 한글로 쓰여 있을 정도. 이 밖에 모든 안내간판에 한국어와 일본어가 병기(倂記)돼 있어 마치 한국에 온 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난고촌의 지역진흥의 방향이 백제문화의 뿌리를 이용한 관광상품 개발에 있기 때문. 이미 부여시와 교류를 실시해 양 지역간의 교류가 11회를 넘겼다.

난고촌에는 백제왕족의 유품과 역사적 전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니시노쇼소인(西正倉院), 부여에 있었던 박물관을 실제 크기로 복원한 ‘백제관’, 부여 낙화암의 백화정(百花亭)을 재현한 ‘연인의 언덕’ 등이 백제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이 밖에 매년 음력 12월이면 일본 전역에 흩어진 백제왕족들이 1년에 한 번 재회한다는 전설을 재현한 ‘시와스 축제’가 열린다.

난고촌 기획관광과 하라다(原田) 과장은 “이농현상이 심화돼 임업이나 농업에 의한 수입이 시원치 않아지기 시작하던 15년 전 백제왕족의 전설을 토대로 백제마을을 기획했다”며 “이전에는 외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없었던 마을에 한국인을 중심으로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어 촌 운영에도 재정적으로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임업의 최후 보루 모로츠카

한 가지 흠이라면 백제관에 비치된 백제관음상의 모습인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백제 관음상의 미소를 제대로 재현하지 못한 채 어설픈 형태로 복원해놓아 오히려 없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 난고촌 관계자는 “아마추어 작가가 자발적으로 제작한 뒤 백제관에 전시해줄 것을 통사정해 하는 수 없이 전시해 두었다”며 “조만간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과 마을을 이동하는 동안 끝없이 펼쳐진 산림을 보아온 생태산촌마을 탐방단이었지만 일본 임업의 ‘마지막 보루’라 일컬어지는 모로츠카(諸塚)의 삼나무 인공조림대가 눈앞에 펼쳐지자 저절로 탄성을 내질렀다. 울창하게 들어선 산림의 위용도 위용이지만 밭을 갈 듯이 산림을 경작하는 일본인의 인공조림에 감탄하는 목소리였다.

모로츠카는 면적의 95%가 산림지대이고 마을 생산소득의 14%가 임업소득이다. 모로츠카는 산 중턱은 물론 해발 500m가 넘는 산의 정상에 심어진 나무까지도 모두 인공조림이다. 밭을 갈 듯이 경작한다는 의미는 밭을 경작할 때 구획을 지어 구역마다 다른 농작물을 심듯, 산림을 가꾸는 데 있어서도 구역별로 철저하게 관리하는 계획조림을 실시한다는 것. 일본이 오늘날 삼나무 강국이 된 것도 일본 전역의 산간지역에 대한 토양분석을 실시한 결과 삼나무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린 뒤 일본 전역에 삼나무 인공조림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수시로 산에 들어가 산림이 자라는 상태를 체크하고 조림해야 하기 때문에 임업도로도 크게 발달해 1㏊당 50m에 이른다. 우리 나라의 평균 임업도로가 2m에 불과한 것에 비춰볼 때 가히 어마어마한 길이다. 제3섹터 개발방식으로 95년 3월 설립된 우드피아 모로츠카(재단법인)는 산림을 적정 관리하는 젊은 임업노동력의 확보, 임업농가의 육성, 국토보전 등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산림의 적정한 관리를 위한 농림업 후계자 육성을 위해 92년부터 ‘농림업 경영대학’을 설립, 운영중이다.

아야정(綾町)은 일본 내 그린투어리즘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린투어리즘이란 ‘자연경관이 뛰어난 농촌, 산촌, 어촌 지역에서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자연, 생활, 역사, 문화자원을 재발견하고 도시민과의 교류를 통해 산촌과 농촌을 활성화시키는 것. 즉 그린투어리즘은 자연환경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지역환경을 정비하고 야생동식물 등에 대한 보호를 유도할 수 있는 생태적 개념의 관광이다.

그린투어리즘이 지역자원을 개발하고 활용해 해당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창조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산촌과 농촌 등 지역주민의 소득증대에도 도움을 준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일본은 90년대 초반부터 그린투어리즘을 적극 도입하고 나섰다. 아야정도 그와 같은 그린투어리즘 시책에 발맞춰 마을을 중흥한 경우다.

하지만 아야정의 그린투어리즘 성공은 거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총면적의 80%가 산림으로 덮인 아야정의 60년대 초반 모습은 이농현상과 노령화 현상 등으로 쇠락해 가는 다른 산촌마을과 같았다. 주요한 생계수단이었던 임업은 산업화에 밀려 더 이상 주민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지 못했다. 인구수도 크게 줄었다.

숲을 지켜낸 아야정 사람들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중앙정부는 67년 이 지역 산림을 베어버리겠다고 통보했다. 동백나무처럼 표면이 빛나고 잎이 넓어 경제성이 떨어지는 조엽수림대(照葉樹林帶)를 없애고 삼나무처럼 수익성이 높은 나무로 바꾸겠다는 것. 대다수 주민들은 “당장 일자리가 생겼다”며 정부의 결정을 반겼다. 국유림이기 때문에 지자체는 반대할 권리가 없었다. 마을 의회도 나무를 베는 것에 찬성했다. 하지만 일부 주민들은 생각이 달랐다.

자연림이 파괴되면 생태환경이 변하게 되고 다시는 과거와 같은 산 좋고 물 맑은 아야를 되살릴 수 없다는 것. 당시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일본에서 이와 같은 ‘순진한’ 생각은 비웃음거리가 되기에 족했다. 일부이지만 자발적인 주민들의 조엽수림 벌채반대에 힘을 얻은 아야정 관계자들은 마을사람들을 하나하나 설득해 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마을 사람들은 삶의 터전인 숲을 지켜 나가기로 결의했다. 마을사람들의 단결된 힘은 결국 현과 중앙정부마저 설득하여 결국 정부의 결정을 철회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지켜낸 숲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만든 것이 데루하(照葉)대교 였다. 원시림 보전을 위해서는 다리를 놓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아야정측은 “다리는 인간과 자연을 잇는 가교로서 관광자원이 될 것”이라며 설득했다. 길이 250m에 수면으로부터 142m에 위치, 보도교(步道橋)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이 다리는 83년 완성돼 아야의 명물이 됐다.

데루하대교는 옛 문화재를 복원한 아야죠(綾城), 경주마 사육의 전통을 살린 마사공원(馬事公苑), 꽃시계 등과 함께 아야의 맑은 공기와 물을 알리는 훌륭한 관광자원 구실을 하고 있다. 결국 30여 년 전 숲을 살린 주민들의 용기 있는 결정은 아야정을 매년 120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그린투어리즘의 명소로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숲을 지켜낸 마을 주민들의 저력은 유기농업 분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미야자키시 등 다른 마을에서 사 먹던 채소를 직접 길러 먹기 위해 73년부터 ‘한평 채소밭 운동’을 펼쳤다. 씨앗을 무료로 나눠주고, 모든 채소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으로 기르도록 했다. 유기농업 개발센터가 유기농산물 인증제를 책임지고, 인분과 음식쓰레기를 비료로 만드는 시설도 운영되고 있다.

아야가 유기농업을 시작한 계기는 아야정 주민들의 발병률이 높았기 때문. 의료비용 지출규모가 미야자키현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것은 다른 곳에서 사오는 농작물 때문이라고 생각한 아야정측이 적극적으로 유기농업에 대한 투자를 시작한 것. 3년 정도 지나자 자급자족을 하고도 남는 채소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외지로 유기농산품을 내다 팔기 시작했다. 이렇게 20년이 지난 뒤 아야정은 유기농업의 마을로 일본 전역에 알려졌다.

유기농업센터는 유기농업을 희망하는 농가에 대한 토양분석을 실시해 주고 토양진단서를 발급한다. 또한 유기농법에 의한 채소재배법을 전수해 주는 등 마을 주민들을 유기농으로 끌어들이는 시책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95년 642가구 중 430가구(67%)가 유기농에 종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총생산액도 지난해 43억8000만엔에 이르렀다. 유기농업센터 아리무라(有村)는 “아야정 헌장은 정(町)의 기본이념을 ‘자연생태계를 활용하여 키워나가는 지역으로 만들자’로 명시하고 있다”며 “화학비료 농약 등의 합성화학물질 이용을 배제하고, 흙을 자연생태대로 되돌리며, 농산물의 안전과 유전독성 등을 제거하는 농법을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산촌마을의 힘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일본 산촌마을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란 힘든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본 탐방에서 둘러본 일본 산간 마을은 우리 나라 산촌보다 훨씬 풍요롭고 자족적인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관은 풍부한 예산지원과 밝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지역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었고 주민들은 관의 시책에 협조해 모두 하나가 되어 자기 고장을 제일로 만들어 보자는 의지에 불타고 있었다.

즉 일본 산촌은 ▲국가의 부(富)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의지와 비전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주변의 풍부한 산림자원 ▲역사문화적 자산이라는 다섯가지 요소를 조화시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산촌의 진흥을 위한 에너지로 폭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관 주도의 개발이 결국은 생태를 파괴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산촌마을은 자연환경을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지속 가능한 개발 계획을 적용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관민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것은 우리 지자체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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