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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신화는 남방해상로를 거쳐 전해졌다

울산 암각화에 드러난 수메르 신화

  • 조철수·서강대 신학대학원 초빙교수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남방해상로를 거쳐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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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전리 암각화의 중심부에 그려진 사람 가면과 그 옆의 큰 뱀, 그리고 뱀 옆의 여러 마름모 모양(연못)이 한 집합을 이룬다고 상정하면 뱀과 남자가 등장하는 구렁이 설화와도 연관시켜 이야기할 수 있다.

구렁이가 허물을 벗고 미남자가 되었다는 변신 이야기가 구렁이 설화다. 여기서 변신한 미남자는 암각화의 가면으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연못가에서 허물을 벗고 재생하는 뱀에 관한 이야기로 동서양에 잘 알려진 신화는 길가메시 서사시다. 길가메시는 기원전 26세기경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우루크의 왕인데 그의 영웅담이 후대에 전해지며 긴 장편 서사시로 편집되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뱀과 연못이 나온다.

길가메시는 자기와 쌍둥이 같은 친구 엔키두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길을 택한다. 동쪽 머나먼 곳에 생명초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는 여행길을 재촉한다. 뱃사공의 도움으로 침묵의 바다를 건너 죽음을 무릅쓰고 고생한 끝에 불로초를 구한다. 불로초를 손에 쥔 길가메시는 말한다.

“이것을 연장자들에게 먹으라고 주겠고 그들은 이 풀을 서로 나눌 것이다.”



그는 기쁨에 차 꽃을 손에 쥐고 자기 도시로 달려간다. 마침 연못을 지나가게 되었다. 얼마나 더웠던지 그만 그 꽃을 연못가에 두고 물 속에 들어간다. 그 때 연못 저편에서 뱀이 꽃향기를 맡고 다가와 먹어버린다. 뱀은 허물을 벗고 재기(再起)한다. 길가메시는 “누구를 위하여 내 심장의 피를 흘렸느냐?”고 한탄하며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온다.

길가메시라는 이름은 늙은이(길가)와 젊은이(메시)의 두 단어를 붙여 만든 고유명사다. 즉 ‘늙은이가 젊은이’라는 뜻이다. 길가메시는 죽어서 선신이 되어 저승의 감독관 노릇을 한다.

따라서 천전리 암각화의 중앙 부분에 물결무늬로 그려진 연못 모양과 뱀 문자, 얼굴 가면 등을 길가메시의 이야기로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또 천전리 암각화에 물결무늬와 마름모 모양이 많이 나오며 동심원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못과 관련된 여행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다. 암각화 가운데에 작은 동물들과 꽃 모양이 나오며 그 앞에 남자가 서 있다.

여기서 꽃이 꽃밭을 상징한다면, 이 집합 그림에서 한국의 원형신화인 ‘원앙부인 본풀이’의 꽃밭을 연상할 수 있다. 일명 ‘안락국전’으로 알려진 원앙부인 본풀이는 여러 판이 있으며 제주도 무속신화에 ‘이공본풀이’로 전해진다.

원앙부인 신화의 주제는 꽃밭이다(조흥윤, 한국의 원형신화 원앙부인 본풀이). 임신중인 부인을 두고 남편이 서천 꽃밭으로 떠난다. 꽃감관(花監官)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아내는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따라가지만 얼마 가지 못하여 발병이 나서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자 그 동네 부자에게 자신을 팔고, 남편은 서천 꽃밭으로 간다. 그녀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게 된다. 여러 본에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공본풀이를 따라 읽어보면 다음과 같다.

세 명의 신선이 바둑을 두다가 나무하러 가는 할락궁이를 불러서 말하기를 “오늘 흰 사슴을 보게 될 것이니 집으로 끌고가서 매두었다가 도망가거든 사슴을 찾는다는 핑계로 아버지를 찾으러 가라” 하였다.

이렇게 하여 집주인은 아들에게 하루 쉬라고 한다. 아들이 어머니한테 가서 아버지 간 곳을 물으니 “네 아버지는 서천 꽃감관 김생원이다”고 답했다. “징표가 무엇입니까?”하니 참실 한 꾸러미와 빗을 내어 주었다. (나무빗은 빗금무늬와 연관되며 고대 근동의 장례의례에 머리카락을 풀어헤치는 관습과도 연결되는 점에서도 원앙부인 신화의 빗은 저승의 의미를 지닌다).

아들은 봇짐을 챙겨 아버지를 찾아 떠난다. 집주인이 이를 알아차리고 개를 풀어 도망간 아들을 잡아오게 하지만 실패한다. 끝내 아들은 아버지를 만나지만 그 동안 어머니는 돌아가신다. 아들이 사람 살리는 꽃을 들고 와 어머니를 살리는 이야기다.

천전리 암각화의 중앙 부근에 사슴, 작은 동물들, 꽃, 남자 등은 ‘원앙부인 본풀이’ 신화를 연결하여 생각해볼 수 있다.

춘분과 추분에 행하는 의례

천전리 암각화 오른쪽 부분을 보면 사슴의 큰 뿔 위에 동심원 무늬가 있다. 동심원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연못을 상징하며 때로는 태양을 뜻한다. 신석기 시대 이전에 고대인들은 춘분과 추분 때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점을 종교생활에 이용하였다.

종교의례는 정해진 시간에 행해지는 제의다. 고대 근동의 청동기시대 문헌에 의하면 대대적인 종교의례는 주로 춘분과 추분에 거행된 신년행사였다. 지역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대 근동 문화에서 춘분과 추분이 한 해의 분기점이었기 때문이다.

신석기 시대의 거주지에 20여 개의 돌기둥을 둥그렇게 세워놓은 곳이 많은데, 이는 춘분과 추분을 정하는 생활 관습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태양이 하늘에 머물고 있는 길이를 그림자로 계산하여 낮과 밤의 차이를 산출하는 문화에서 태양은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신석기 시대 구 유럽과 근동 지역에서 태양의 상징 무늬는 대개 동그라미였으며 때로는 동그라미 안에 점 혹은 십자를 그렸다. 혹은 동그라미 안에 꽃무늬가 그려진 것도 있으며 바퀴 모양도 나온다.

꽃무늬의 태양은 밤에 땅 밑으로 내려갔다가 새벽에 떠오르는 밤 태양을 가리키며, 동그라미 안에 점이 있는 태양은 낮 태양을 뜻한다. 또 십자 그림은 날아가는 새(태양신을 의미)를 상징하는데, 이것이 후대에 십자 상징그림으로 정형화된 것이다. 이처럼 동그라미와 합성된 태양무늬에도 여러 정보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다른 시각의 태양을 알려주는 그림문자다.

신석기 말기에 자주 나오는 그림 가운데 십자 모양 혹은 동그라미 안에 꽃무늬로 표현한 태양을 사슴이 그의 등이나 두 뿔 위에 얹고 달아나며 그 뒤에서 사냥꾼이 활을 들고 쏘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사슴이 저승에서 태양신의 딸을 취하여 저승 밖으로 도망나올 때 저승 주인이 사슴을 쫓아와 활을 날려 죽이거나 다치게 한다는 이야기다. 후대에 전해진 ‘사슴과 사냥꾼’의 신화다.

여기에서 동그라미 안에 그려진 꽃무늬는 연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연꽃은 저승/지하에서 땅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며, ‘사슴과 사냥꾼’ 신화에서는 태양신의 딸(혹은 태양신의 아내)이라는 상징으로 객관화된다.

천전리 암각화의 오른쪽에 그려진 연못과 사슴, 사슴 위에 활과 화살이 나온다. 이것은 신석기 시대의 암각화 그림 ⑩에서 발견되는 ‘사슴과 사냥꾼’ 이야기로 추정하기에 충분하며 우리에게 전해진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상상할 수도 있다.

또한 그 옆 그림이 사슴 뿔 위에 동심원 태양을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면 사슴이 그의 뿔 위에 태양신의 딸을 태우고 도망가는 광경이라고 볼 수 있으며, 활시위에 위협받는 사슴이 연못가에 서 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연꽃무늬는 고대인들이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저승과 관련하여 사용한 상징그림이다. 밤이면 물에 잠겼다가 아침마다 물 위로 떠오르는 연꽃은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아주 적절한 재생의 상징이었다.

연꽃무늬와 저승

고대 이집트 문화에서 연꽃은 혼돈의 물을 극복하고 질서가 잡힌 우주를 가져다주는 힘의 모형으로 생각되었다. 고대 이집트 그림에 연꽃 냄새를 맡는 사람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질서의 근원적인 힘과 생명력과 존재의 기쁨을 연꽃과 함께 하려는 몸짓이다.

고대 이집트어로 연꽃 신은 네페르템, 즉 ‘(밤의 태양신) 아템은 아름답다’는 뜻이다. 네페르템은 향기로운 운향과 관련되어 ‘운향의 주(主)’라고도 불린다.

장례의식 가운데 일차 장례를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뼈를 모아 석함(石函)에 넣는 장례 방법이 있다. 이러한 납골석함 의례는 고대 근동 지역에서 금석병용기에 일반적으로 거행하던 관습인데, 납골석함 표면에 연꽃 무늬 장식이 되어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밤 태양을 상징하는 연꽃무늬는 자연히 저승과도 관련된다. 우리나라에서 상여 몸체를 연꽃무늬로 장식하는 것을 불교의 영향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이러한 관습에서도 발견된다.

연꽃 무늬는 생명의 나무를 상징하기도 한다. 즉 생명의 나무를 가꾸는 정원(꽃밭)의 상징인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신화의 에덴동산이 이와 같은 정원이라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고대인들은 생활에서 발생하는 여러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상징 그림을 사용하였다. 암각화에 그려진 신석기 시대의 상징그림은 고대 근동의 그림문자처럼 일정한 형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찾아내야 한다. 또 상징그림이나 그림문자로 정보를 전달하는 상징체계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고대인의 상징그림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문헌에 반영된 여러 자료를 통하여 분석해야 한다.

정리해보면 울산 암각화는 신석기 시대를 거친 청동기 문화의 산물이다. 전체적으로 울산 암각화는 고대 근동의 상징 체계와 다를 수 있지만 청동기 농경문화라는 관점과 사슴 등이 나오는 장면, 집합 그림이 크게 구분되어 나오는 점, 고대 문양에서 가장 보편적인 동심원·마름모 모양·물결무늬 등이 보이는 점은 고대 상징문자의 보편성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울산 암각화에 표현된 동물들이 움직이는 방향과 사람의 생김새 등은 전체적으로 종교제의를 거행하는 장소에 그려진 파노라마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아마도 정해진 계절에 따라 종교제의를 행하는 집행자의 사설(辭說)을 들으며 동참하던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암각화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는 길은 작은 단위의 집합 그림에서 상징무늬의 연결점을 구하고 우리의 고대 문헌(혹은 전승)에서 그 단서를 잡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우리의 사상과 전통과 관습 등의 원형을 찾으려는 시도이며, 한국의 암각화를 창출해낸 우리 선사인들이 전달하려는 문화 내용(세계관)이 우리의 문화 유산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신동아 200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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