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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문화 속의 우리말 탐험

이란 인도 태국에서 찾아낸 한국어의 흔적

  • 김병관·문화탐험가·농학박사

이란 인도 태국에서 찾아낸 한국어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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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에서 태국,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이란, 이라크를 거쳐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수만km 현장을 답사하면서 각국의 원시언어를 수집해 우리말과 비교한 김병호박사의 결론은 “우리말은 알타이어가 아니라 오히려 인도-아리안계 언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UN에 근무하면서 짬이 날 때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곳의 언어자료를 비롯해 민속, 음악, 역사 및 고고학 자료, 설화 등을 수집해왔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외부에서 확인해보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다. 한국인으로서의 나를 존재케 한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대개의 학자들은 한반도의 주도 세력이 북방 출신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렇다면 그 북방 어딘가에 지금도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며 말도 비슷하게 구사할 것이었다.

나는 특히 언어학적 측면에서 우리 말과 비슷한 언어를 추적하는 일에 관심을 많이 기울였다. 우리는 한반도에 정착한 우리 조상들, 그러니까 한국인인 나를 존재케 한 이 민족의 원류가 북방에서 남하한 알타이어족이라고 배웠다. 그렇다면 당연히 알타이어족의 주류를 이루는 몽골, 터키 그리고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언어학적으로 우리 민족과 한 뿌리에서 태어난 형제들일 것이다.

우리말과 너무나도 다른 알타이어

그래서 필자는 먼저 그들과 우리의 관계를 확인해보기 위해 한국어와 알타이어의 유사성, 특히 두 언어의 기본 어휘(원시 어휘)를 비교 조사해보았다. 이 조사는 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까마득한 옛날 옛적의 사람들도 사용했음직한 원시 어휘를 주로 비교 대상으로 선택했다.



언어학자들은 지구상에 사는 어느 부족이나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기본적인 낱말(하늘, 해, 달, 나, 너, 꽃 등)이 있으며 이 낱말은 270개 가량 된다고 한다. 인류학에서는 이 기본 낱말들을 일컬어 ‘스와디시 차트(Swardish Chart)’ 라고 부르는데, 이 스와디시 차트에 속하는 낱말들은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좀처럼 변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통계에 의하면 1000년 동안 겨우 14% 정도 변할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알타이어계인 터키나 몽골 사람들과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다면 분명 많은 수의 기본 낱말이 같거나 비슷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상 외로 알타이어와 우리의 원시어휘들 사이에는 유사성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은 알타이어계인 터키어의 원시 어휘(괄호 안)와 우리말의 어휘를 비교한 것이다.

해(기네쉬), 햇빛(귀네쉬으쉬으), 달(아이), 별(열더스), 하늘(그억유수), 바람(뤼스갸르), 구름(부르트), 날(균), 밤(기제), 아침(사바), 비(야므르), 땅(예르), 흙(톱브라크), 돌(타쉬), 눈(雪 카르), 물(수; 중국어 水와 같음), 바다(데니스), 꽃(치채키), 나무(아치), 나(벤), 너(센), 새(구쉬), 곰(아이어)…

다음은 어법(語法). 터키어는 토씨(助詞)가 있는 교착어라는 점에서는 우리말과 유사했지만(세계 언어의 절반 이상은 교착어다), 다른 어법은 우리말과 상당히 달라서 도저히 같은 계통의 언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터키어는 우리말과는 달리 명사의 토씨가 격변화를 하고, 동사도 격에 따라 어미가 달라진다.

다음은 동사의 경우다. 가다(gitmek)의 단수형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참고로 500개가 넘는 터키의 기본 낱말 중에서 어렵게 찾아낸, 우리말과 비슷한 것들을 두 개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그로부터 몇 년 후 필자는 위에 예로 든 ‘이른’이나 ‘새벽’이란 낱말도 오직 터키어와만 유사하다고 말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알타이어가 아닌 아리안어(Arian)에서 찾아낸 말도 우리 낱말과 비슷함을 발견했다. 우리말의 ‘이른’은 아리안계 영어인 ‘얼리(early)’와 발음과 뜻이 비슷하며, 우리말 ‘새벽’은 아리안계 아랍어인 ‘사바하’와 유사하다.

실제로 터키족은 옛날 옛적 이웃나라에 가서 용병(傭兵) 노릇을 많이 했기에 오늘날 그들이 사용하는 어휘의 60% 이상이 아리안어족의 나라에서 차용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말과 유사한 터키어 낱말이 과연 터키족 고유의 말인지는 검증해볼 필요가 있었다.

우리 말과 몽골어의 경우

이렇게 터키에서 우리 조상들의 언어적 흔적을 찾지 못한 필자는 몇 년 후 알타이어의 종주국 격인 몽골을 찾아가서 조사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필자에게 참담한 실망만 안겨주었다.

몽골 말은 우선 터키어처럼 발음부터가 생소했다. 목구멍에서 토해내듯 하는 독특한 발음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말을 배우는 것은 세계 어느나라 말을 배우는 것보다 몇 곱절 더 힘들 것이다. 필자는 수십 번 반복해서 연습했지만 어떤 발음은 끝내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또 기본 낱말을 비교하여 보아도 후세, 특히 고려말 100년 가까이 몽골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차용했으리라고 생각되는 보통 어휘 이외에는 도무지 유사한 기본 어휘가 없었다. 만약 몽골족이 우리 민족과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다면 발음이 달라도 그렇게 다르고 또 어휘와 어법이 달라도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상식 선에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엉덩이에서 보이는 ‘몽골반점’을 들어 우리 민족과 몽골 등 북방계 민족의 인종적 공통성을 말하곤 하는데, 실제로는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등 동부아시아 종족에서도 일반적으로 몽골반점이 있다.

여하간 몽골어 중 어렵게 찾아낸, 우리 말과 비슷한 어휘(기본어휘) 몇 개를 골라 여기에 소개해 본다 (그러나 이 어휘의 유사성도 완전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말과 비슷한 몽골 어법은 겨우 4∼5개다. 이를테면 토씨가 있고, 모음조화 현상이 있으며, 관계대명사가 없다는 것 등인데, 이런 특징은 동양계 언어로는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어서 몽골 말을 우리 말과 같은 계통의 언어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었다.

아직도 우리나라 일부 학계에서는 토씨가 있는 교착어적 어법이 마치 우랄-알타이어의 특징이고 우리말도 교착어기 때문에 알타이어족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지구상의 언어 중 50% 이상이 토씨가 있는 교착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고 알타이어족이 아니라는 미얀마어, 네팔어, 티베트어, 남부 인도어, 스리랑카어, 파키스탄어, 아프가니스탄어 모두 토씨를 가지고 있다. 거기다가 그들의 일부 토씨는 알타이어보다 훨씬 우리의 것과 유사하다.

중요한 어법(語法)만 따져보아도 그렇다. 일본어, 길약어, 라후어 등은 20개 이상이 우리말과 같고 심지어 인도의 드라비다어마저도 10개 정도가 같다. 이런 마당에 유사한 것이 겨우 4∼5개밖에 발견되지 않는 알타이어족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친척들이라니!

그 동안 우리나라의 몇몇 학자들이 “한국어는 알타이어계에 속한다”고 주장한 핀우그루학회(핀란드 헬싱키)의 알타이어학자 람스태트(Ramstat)의 초기 가설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비판 없이 정설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그래도 알타이어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한 필자는 훗날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까지 찾아가 조사했지만 우리 조상들이 남겼을 언어적 흔적은 아무 데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과연 우리 민족의 언어적인 유사성은 어디를 찾아가야 만날 수 있을까?

‘불’이란 낱말을 추적하라

나는 지금까지의 가설을 버리고 백지 상태에서 조사해보기로 했다. 먼저 기본어휘 가운데서도 가장 원시어휘라 할 수 있는 ‘불’이란 낱말을 가지고 추적을 해보았다.

인간이 불을 사용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20만 년 전의 일이라고 한다. 인간은 불을 사용할 줄 알게 되면서 다른 동물과 차별화될 수 있었을 만큼, 불은 인류역사에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고대인들은 불로 인해 비로소 추위를 면하고, 음식을 구워 먹고,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이 가장 먼저 사용했던 말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당연히 ‘불‘이라는 낱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유념해야 할 부분이 있다. 과연 한반도에서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불’을 오늘날의 우리처럼 ‘불’이라고 발음했을까 하는 문제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오늘날의 불과 비슷하게 불, 벌, 부리, 비리라고 불렀을 개연성이 발견되었다.

옛 기록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전인 원삼국(原三國) 시대의 지명이 대개 불(火)을 의미하는 ‘비리’(학계 일부에서는 평야를 지칭한다고 주장함)로 불렸고, 그 이후 삼국시대에도 ‘부리’나 ‘벌’ 등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에 의하면, 후대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옛 지명이나 인명, 관명 등 가운데 상당수가 ‘불’이란 낱말과 연관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예를 들어보자.

●부리(夫里): 우리나라 옛 마을이나 지방의 이름

●해부루: 고구려의 주몽 전설에 나오는 부여국의 왕 이름

●불리지: 기원전 5,6세기경 북중국에 있었다는 ‘불리지국’의 건국자

●발해(渤海): ‘발(渤)’도 ‘불’로 읽어야 한다.

●평양(平壤): 옛날에는 ‘펴라’로 발음했다. 불을 나타내는 말 ‘풀’ ‘푸르’ ‘푸르’ ‘푸라’ 등과 같은 뿌리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된다.

●낙랑(樂浪): 역시 ‘퍼라’로 발음했다.

●패수(貝水): 이 또한 ‘펴라’로 읽었다. 대동강의 옛 이름

●부여(扶餘): 우리 민족이 세웠다는 나라이름. 지금의 만주 땅에 있었다.

●패리: 여진족의 벼슬 이름

●비리: 지금의 시베리아 동남쪽에 있었던 나라. 길리약족 거주지로 추정

이외에 불을 뜻하는 또다른 말로 ‘아’도 있었다. 아궁이(불구멍), 아오지(불붙는 흙, 오지는 흙을 의미함)에서 보듯이 우리의 일부 조상들은 불을 ‘아’라고 부르기도 했던 것이다. 필자는 이런 작업을 마치고 지구상에서 ‘불’이란 낱말을 죄 찾아보았다.

불가사의하게도 우리말 ‘불’은 알타이어인 몽골어와는 전혀 유사하지 않은 반면 인도-아리안어와는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친근 관계가 있었다. 다시 말해 ‘불’ 또는 ‘아’라는 말은 알타이계 언어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고, 인도-아리인계 언어에서 깊은 인연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러니까 ‘불’이란 낱말은 유럽에서 소아시아를 거쳐 이란, 아프가니스탄의 서남아시아, 그리고 인도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대관절 어디에 사는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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