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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수월관음의 미소

  • 박정욱·성신여대 교육학대학원 교수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수월관음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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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점과 함께 차이점을 보자면 관음보살의 얼굴과 성처녀의 얼굴은 그 얼굴에 담긴 감정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성처녀의 얼굴에는 인간의 감정과 겸손함이 있지만 관음의 얼굴에는 감정을 초월한 신의 위엄이 있다. 하지만 그 위엄은 성처녀에게서 볼 수 있는 부드러움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해탈의 표정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가 있다.

수월관음은 ‘착한’ 얼굴이 아니라 선함도 악함도 초월한 얼굴이다. 이 세상에서의 희망이나 열망 같은 욕망 자체를 버린 저 세상의 얼굴이다. 반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처녀의 얼굴에 고통의 그늘이 있는 것은, 아마 서양 문화 자체가 해탈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 예술가들은 해탈의 모습보다는 고통 속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들은 성스러움을 천국에 오를 희망의 표정에서 찾는데 그쳤다.

관음보살의 좌측 아래에는 바다에서 연좌(蓮座) 여의주와 함께 온갖 보화를 들고 올라오는 용왕과 그 일행이 그려져 있다. 이 부분과 관음보살 옆에 놓인 수양버들가지가 꽂힌 물병, 그림 좌측 위쪽에 그려진 파랑새, 우측의 청죽(靑竹) 등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동해 낙산의 동굴에서 친견하는 일화를 상기시키기 위해 그린 것이다.

성처녀에서 보이는 어린 아기로 표현된 세례 요한과 예수 사이에 주고받는 신과 인간 사이의 간절한 시선의 교환이 주는 감동은 없지만, 동해 용왕 일행과 우측에 그려진 불법을 구하려고 관음보살을 찾아 온 선재동자는 불법과 자비를 구하려는 인간의 간절한 욕망이 아름답게 표현돼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예수와 요한을 따로 그림으로써 신과 인간의 영역을 대조해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수월관음도 또한 좌측에는 동해 용왕 일행 즉 신을 그렸고, 우측에는 불법(佛法)을 구하는 선재 동자, 즉 고독한 수도자(인간)를 그렸다.



선재동자와 세례 요한은 신을 바라보며 깊은 경외심과 자비를 구하는 아주 비슷한 자세로 그려져 있다. 연잎을 타고 있는 동자(童子)는 연꽃을 받드는 넓은 연잎을 통해 신을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아기 세례 요한은 수선화 꽃 위에 무릎을 꿇은 이미지로 신앙심을 표현한다.

이런 상상력은 용왕 일행에서도 마찬가지로 전개된다. 여의주를 든 청년은 괴물의 등에 업혀 파도 위를 걷고 있다. 여의주에서는 불길이 새어나오고 있고 괴물의 발에는 버선 같은 이상한 신발이 신겨져 있다. 왜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집어넣은 것일까? 의상대사 일화에서는 용왕이 직접 여의주를 바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괴물의 등에 업힌 청년이 여의주를 바치는 식으로 표현한 것은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독창적 상승 구도

용왕 일행을 유심히 살펴 보면 위로 올라갈수록 얼굴이 크게 그려져 있다. 여의주를 든 청년과 용왕의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크기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원근법 대로라면 그 반대로 그려지는 것이 정상이다. 이러한 구도는 용왕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므로 신분의 차이에 따라 크기가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보물을 바치는 인물들의 행렬을 횡으로 배치하지 않고 종으로 배치하여 역동적인 느낌을 준 것도 화가 나름의 독창성이 뛰어난 부분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성처녀의 구도와 비교해보면 용왕 일행을 그린 이 작은 부분이 또한 얼마나 뛰어난 상승구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삼각구도를 반복하여 상승의 느낌을 주고 있지만 수월관음도의 용왕 일행은 지(之)자 구도와 위로 타오르는 불길을 이용하여 상승 구도를 만들었다. 훨씬 더 비범하고 역동적인 상승이미지를 창조해낸 것이다.

상승구도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관음의 오른 손까지 절벽이 지(之)자 구도를 연장해 올라가고 마지막 절정을 이룬 곳에 다시 물병과 수양버들로 마무리하여 상승하려는 시선을 끌어내리고 있다. 반면 우측에 보일 듯 말 듯 그려진 한 쌍의 청죽(靑竹)은 관음의 머리 위까지 시원스럽게 뻗어 있다. 수직으로 깎인 다빈치의 암석에 비해 훨씬 더 자연스럽고, 세련된 상승구도인 것이다.

생기와 신선함, 名作의 천재성

수월관음도는 불법에 이르려 하는 영혼의 상승 욕구와 이 세상에 불법을 전해주고 있는 관음의 자비를 은은한 색과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선(線)은 불법을 구하는 영혼들이 그려진 그림의 아래 부분을 향하여 강처럼 유연하고 우아하게 흘러 내려간다. 그 흐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처럼 무겁지 않고, 암흑에 묻혀 있지 않으며, 오히려 발랄한 생기(生氣)로 가득 차 있다.

이 생기는 화려한 색상의 연속적인 만개(滿開)와 함께 신선한 이슬처럼 선을 따라 빛나고 있어 그림을 보는 이의 시선을 매혹시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기와 신선함이다. 답답한 암굴의 풍경에 이렇게 생기와 신선함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을 능가하는 천재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월 관음도를 통해 서양 명화에 뒤지지 않는 우리 그림을 알아보았다. 암굴의 성처녀와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관음도일 수도 있다. 서양 명화를 우리식으로 즐기려면 우리의 그림부터 편하게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신동아 2000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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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욱·성신여대 교육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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