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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메달에 얽힌 비화

금메달을 강물에 던진 무하마드 알리, 사흘만에 금메달을 박탈당한 벤 존슨

금메달을 강물에 던진 무하마드 알리, 사흘만에 금메달을 박탈당한 벤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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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사기’의 원조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했던 미국의 프레드 로즈 선수다.

세인트루이스올림픽 마라톤은 미국 선수 31명과 그리스, 쿠바 선수 1명씩 33명만 뛰었기 때문에 미국의 집안잔치나 마찬가지였다.

33명 가운데 가장 먼저 메인 스타디움에 뛰어들어온 선수는 미국의 프레드 로즈였다.

그런데 로즈는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땀방울 하나 없이 깨끗했다.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루스벨트가 관중석에서 내려와 월계관을 쓴 로즈와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그런데 로즈가 들어온 지 15분 뒤에 2위 주자가 들어왔다. 세상만사가 다 귀찮다는 듯 지쳐 보이는 미국의 토머스 힉스 선수였다.

그런데 힉스에게 2위가 선언되자 자동차로 레이스를 따라 온 심판과 기록원이 로즈에게 달려가 ‘F’자가 들어가는 욕설을 퍼부으면서 실격을 선언하고 우승자를 힉스로 고쳤다.



로즈는 15km 지점에서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레이스를 포기했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던 트럭이 로즈를 태워주었던 것이다. 로즈는 차안에서 쥐가 풀리자 장난기가 발동했다. 메인스타디움 바로 앞에서 뛰어내리더니 갑자기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 전모는 로즈를 태워주었던 트럭 운전사가 나타나 증언하면서 밝혀지게 된다. 로즈는 15분 동안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라는 기분을 맛본 셈이다.

그런가 하면 무려 12년이 지난 뒤에야 자신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사실을 깨달은 선수도 있다.

1900년 2회 파리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는 프랑스의 빵집 배달원 비셀 데아토 선수였다. 데아토는 파리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59분 45초의 기록을 세우며 1위로 들어왔다. 그런데 질식할 듯 더운 날씨에 코스도 좁은 골목길인데다가 대회운영마저 허술해 여러 차례 길이 막혔다. 그래서 데아토는 공식경기로 인정되지 않은 줄 알았다.

비셀 데아토는 파리올림픽이 막을 내리고 12년이 지난 1912년 우연히 올림픽 역사를 뒤지다가 자기 이름이 2회 파리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된다.

올림픽에서는 장애인이나 큰 부상을 당하고도 금메달을 딴 의지의 선수가 많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 출전한 미국의 월마 루돌프 선수는 여자 육상 100m를 종전 올림픽 기록보다 0.5초나 빠른 11초에 달려 금메달을 땄다. 200m에서도 역시 24초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했고 400m 릴레이에서는 44초4의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내 3관왕이 되었다.

월마는 1940년 태어날 때 몸무게가 겨우 2kg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4살 때는 성홍열에 걸려 폐렴을 앓았다. 한쪽 폐렴이라면 괜찮았겠지만 월마는 양쪽 폐렴이었다.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겼지만 이번에는 양쪽 다리에 마비가 왔다. 8살 때 겨우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었다. 월마는 약한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하루에 10시간씩 달렸다. 산이건 들판이건 무조건 달렸다. 그로부터 11년 후 월마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여자가 됐던 것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시각장애인으로 남자 수영 200m 개인혼영과 400m 개인혼영에서 2관왕에 오른 헝가리의 타마스 다르니 선수도 양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청각장애자였다.

헝가리 선수들의 ‘인간승리’

다르니 선수처럼 헝가리에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딴 영웅이 유난히 많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남자수구에서 금메달을 딴 헝가리에는 도저히 수영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선수가 끼여 있었다. 올리버 하라가 그 주인공이다.

올리버 하라는 2살 때 부다페스트 시내를 달리는 전차에 치여 한쪽 다리를 절단했다. 당연히 정상적인 스트로크는 불가능했다. 그런데도 유럽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1500m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라는 결국 수영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수구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는 ‘인간승리’를 이룩했다.

역시 헝가리의 카로리 타카스 선수는 1929년부터 1938년까지 국가대표 사격선수였다. 그런데 1938년 군 작전에 참가했다가 수류탄이 폭발하는 바람에 오른손을 잃었다. 그는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왼손으로 총 쏘는 법을 다시 익혔다. 그리고 38살의 늦은 나이에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해 자동권총에서 금메달을 쐈다.

1952년 헬싱키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딴 헝가리의 미크로스 질 바시 선수는 총상을 입은 몸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1946년 경찰관으로 근무할 때 동료의 오발로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그때의 총상으로 신경이 마비돼 얼마 동안 걷지도 못했다. 그러나 매일 다리에 큰돌을 매달고 운동을 계속했다. 질 바시는 결국 1948년 런던올림픽 그레코로만형 웰터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다이빙은 혼자서 물 속에 뛰어드는 스포츠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쉬운 운동 같다. 그러나 최소한 3m, 최대 10m에서 묘기를 보여가며 물 속에 뛰어들 때처럼 위험한 순간이 없다.

미국의 패트 맥코믹 선수는 1952년 헬싱키올림픽, 1956년 멜버른올림픽에서 여자 다이빙 2종목을 2연패했다. 그런데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에 의사의 신체검사 결과가 매스컴에 보도돼 화제를 모았다.

“머리 가죽이 15cm나 찢어졌다가 아물었고, 척추에 금이 가 있다. 갈비뼈 한 개가 부러졌다가 아물었고, 손가락 한마디가 골절됐다. 턱뼈가 느슨해졌고 윗니가 몇 개 쪼개졌다.”

이런 상처를 극복하고 2번의 올림픽에서 모두 4개의 금메달을 딴 맥코믹은 멜버른올림픽이 끝난 후 “이제 시합은 끝났다. 앞으로 내가 할 일은 가정에서 훌륭한 주부 노릇을 하는 것이다”라며 올림픽 무대에서 영원히 은퇴했다.

올림픽 역사에서 최고의 투혼을 보인 선수는 에티오피아의 마라톤 영웅 비킬라 아베베 선수다.

아베베는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뜨거운 아스팔트 길을 시종일관 맨발로 달려 2시간 15분 16초의 세계 최고기록으로 첫 번째 금메달을 땄다. 당시 그는 28살로 에티오피아 셀라시에 황제의 근위병이었다. 아베베는 로마올림픽 이후 일등병에서 단번에 하사로 진급했다. 아베베는 4년 후에 열린 1964년 도쿄올림픽 마라톤에서는 운동화를 신고 나왔고 계급은 상사로 진급해 있었다.

맹장수술 받고 10일만에 금메달

아베베는 9월16일 맹장수술을 받고 10일 만인 9월27일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채 한 달이 안 된 10월21일 도쿄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12분 12초라는 세계 최고기록을 세우며 사상 최초로 올림픽 마라톤을 2연패했다. 그의 계급은 곧바로 상사에서 중위로 올라갔다.

아베베는 1969년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충돌사고를 당해 하반신 불구가 되었다. 아베베는 하반신 감각을 잃어 마라톤을 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상체를 이용해서 활쏘기 훈련을 했다. 손과 팔의 힘을 강화하는 체조를 해가며 장애인올림픽 양궁 종목에 출전했다. 이번에도 아베베는 금메달을 땄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장애인올림픽까지 제패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 다이빙에 출전했던 미국의 그랙 루가니스 선수는 부상투혼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양심적이지 못했다.

루가니스는 3m 스프링보드 다이빙 경기에서 9번째 연기를 하는 도중 스프링보드에 뒷머리를 부딪혀 다섯 바늘을 꿰매는 부상을 당했다. 당시 미국 팀의 팀 닥터 제임스 페퍼 씨는 급한 나머지 보조장갑도 끼지 않고 루가니스의 머리를 꿰맸다. 투혼을 발휘한 루가니스는 하이다이빙에 이어 스프링보드 다이빙까지 석권해 2관왕에 올랐다.

그런데 6년 뒤인 1994년 루가니스는 자신이 에이즈 환자이며 88년 서울올림픽 당시에도 에이즈를 앓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그러면 자신을 치료했던 의사는 어떻게 되고 자신의 피가 섞여 있는 풀 속으로 다이빙을 했던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올림픽은 그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영광이다. 그런데 하나도 어려운 금메달을 부부가 혹은 연인이 한꺼번에 따낸 경우가 있다. 이른바 ‘금메달 커플’이다.

1956년 멜버른에서 올림픽사상 처음으로 로맨스가 꽃피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투원반 금메달리스트인 올가 피코토바 선수와 미국의 투헤머 금메달리스트 헤럴드 코널리 선수의 염문이 나돌았다. 결국 이들은 국제결혼을 해서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타 모니카에서 두 아이를 낳고 잘 살았다.

올가 여사는 ‘운명의 링’이라는 책을 펴내 또 한번 화제를 뿌렸다. 책이름을 ‘운명의 링’이라고 붙인 것은 오륜기의 무늬와 결혼 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1932년 LA 올림픽 때는 미국의 다이빙 선수인 마이클 갈리젠과 조지아 쿨맨이 약혼한 상태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 뒤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 때 부부가 교환한 메달이 모두 8개였다.

우선 남편 갈리젠은 스프링보드 다이빙 금메달, 하이다이빙 은메달, 갈리젠은 4년 전 1928년 암스텔담 대회에서도 두 종목에서 은메달을 땄었다.

부인 조지아도 남편과 마찬가지로 스프링보드 다이빙에서 금메달, 하이 다이빙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조지아 역시 4년 전 암스텔담대회에서 하이 다이빙 은메달, 스프링보드 다이빙에서 동메달을 차지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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