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가상공간의 인간관계/ 인터넷 동창회는 왜 위험한가
민경배
●사이버문화연구실 실장
●neticus@orgio.net
이제 사이버스페이스는 단순한 ‘정보의 바다’에 머무르지 않는다. 건조한 디지털 정보들의 데이터베이스쯤으로 여겨지던 사이버스페이스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인생사의 희로애락이 얽혀 흐르고 만남과 헤어짐이 거듭되는 또 하나의 ‘관계와 교류의 장’이 되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창안자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현실계에 이은 제2의 생활 공간으로 자기 진화를 해나가고 있는 셈이다.
소유냐 관계냐
물론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세계와는 다른 원리, 다른 성격으로 구성된 공간이다. 그래서 그곳에선 지금까지 사람들이 펼쳐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인간 관계가 전개된다. 가장 큰 특징은 그곳이 비물질적 공간이라는 점이다. 흔히 비트(beat)의 세계와 아톰(atom)의 세계로 대비해 말하듯 사이버스페이스는 비물질적 ‘비트’로 구성된 가상의 전자공간이다. 현실세계에서는 물질의 ‘소유’가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지만, 비물질적 공간인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소유’란 무의미하다. 비트는 무한 복제를 거듭하며 흘러 다니는 것이지 결코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비트가 어떠한 경로를 거치면서 흘러 다니는가의 문제, 즉 ‘관계’이다. 사람들은 인터넷에 접속하는 그 순간 ‘소유 위주의 사회’가 아닌 ‘관계 위주의 사회’로 들어서게 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사람들의 관계는 ‘점(點)’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전통사회의 인간관계는 지역 공동체에 기반한 사람들 간의 면대면 접촉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면의 관계’였다. ‘면의 관계’는 산업화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다시 ‘선의 관계’로 바뀌었다. 쭉 뻗은 철로와 도로 그리고 전화선이야말로 비대면적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던 ‘선의 관계’의 상징물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선의 관계’는 ‘점의 관계’로 대치되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관계망은 과거의 그것처럼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고정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 접속 종료와 함께 사라지는 인스턴트일 수도 있고, 때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비정형적인 하이퍼링크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전자공간 속의 관계망에서 ‘선’은 무의미하다. ‘선’이 제거되면 남는 것은 ‘점’이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인간관계는 개개인이 하나의 점, 즉 노드(node)가 되어 유연한 관계망을 형성하는 ‘점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K씨가 채팅에 빠진 날
평범한 30대 가정주부 K씨는 요즘 한창 인터넷에 빠져 있다. 대부분의 초보자가 그렇듯 K씨가 즐겨 찾는 곳은 채팅 사이트다. 이른 아침이지만 채팅방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대기실을 잠시 둘러보는 사이에도 K씨에겐 대화 신청 쪽지가 쉴새없이 날아든다. 여성 네티즌의 수가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채팅방에서 여성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남성들의 무관심에 익숙해진 ‘아줌마’ K씨에겐 이들의 ‘환호’가 남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K씨는 가장 마음에 드는 대화명을 지닌 이(아마도 남성으로 추정되는)의 초청에 응해 대화방에 들어선다.
“안녕?”
“네, 안녕?”
“영화 좋아해요?”
“그럼요. 니콜라스 케이지 팬이에요.”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는 한국 땅에서 처음 만난 사람끼리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에게 다짜고짜 ‘영화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일 것이다. 하지만 채팅이라면 어떤가? 그곳에선 이런 식의 대화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채팅을 처음 해봤다는 사람들의 느낌은 한마디로 ‘신기하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배타성이 강한 현대인들에게는 모르는 사람과 아무런 부담 없이 만나 손쉽게 대화를 주고받는 이 소통 방식이 놀라운 경험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연령 성별 학력 계층 지위 등과 같은 사회적 배경에 대한 규정이나 편견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을 지배하는 현실세계의 제반 조건들로부터 벗어나 자신을 원하는 모습대로 창출해 보이는 신통술까지 부릴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매력이다.
사실 채팅에서 개개인의 사회적 배경과 맥락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익명의 베일 뒤에 숨어 단지 ID와 대화명만으로 만나는 상황인만큼 실제 모습은 얼마든지 가공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어떠한 감정을 교환하고 있는가’이다. ‘영화 좋아하느냐’는 식의 첫마디가 자연스레 통용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채팅 과정에는 참여자 개개인뿐 아니라 그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조차 선형적인 맥락으로부터 분리된 채 개별적인 점의 형태로 존재한다. 물론 그 관계는 대부분 지극히 우연적이고 일시적이며 비정형적인 형태를 띤다. 이런 의미에서 채팅은 가장 가상현실적인 인간 관계의 통로다.
토론방으로 간 K씨
K씨는 요즘 맘이 편치 못하다. 새로 장만한 휴대전화 요금 청구서에 신청하지도 않은 부가 서비스 요금이 합산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애초 계약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이동통신 회사를 찾아가 항의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느날 K씨는 채팅을 통해 알게 된 L씨로부터 비슷한 상황의 소비자들이 모이는 사이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았다. 게시판에는 K씨가 가입한 이동통신 회사의 서비스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글이 제법 많이 올라와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서명, 항의문 올리기, 불매운동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캠페인을 벌이며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오고 있었다. 왠지 모를 동지애를 느낀 K씨는 게시판에 자신의 사연을 글로 올리고 서명운동에도 동참한다. 게시판을 나오면서 K씨는 자신의 즐겨찾기 목록에 이 사이트 주소를 올린다.
채팅이 당사자끼리만 공유하는 은밀한 관계라면 게시판이나 토론방 같은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인간관계는 모든 이들에게 공개되는 개방성을 지향한다. 또한 채팅방에서 만들어지는 일회적이고 비정형적인 인간관계와 달리 이곳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는 지속적이고 정형적인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
물론 이들은 서로 얼굴을 모를 뿐 아니라 공동체 의식도 갖고 있지 않다. 게시판과 토론방은 사이버스페이스를 여행하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들락날락거리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사랑방 같은 곳이다. 하지만 이들은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논쟁하면서 자신들만의 인간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그렇기에 이곳에서의 인간관계는, 그것이 공적인 것이건 사적인 것이건 철저히 정보를 매개로 이루어진다.
사이버스페이스가 ‘관계 위주의 사회’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면 정보 역시 고정된 데이터베이스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유연한 정보가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 주가의 등락은 특정 기업에 대한 고정적인 정보보다 투자자 사이에서 흘러 다니는 소문이 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휴대전화 구입에 있어서도 광고나 매뉴얼보다는 이용자들의 체험담이 훨씬 유용한 정보가 된다. 이처럼 정보의 가치는 컨텐츠가 아니라 사물과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
사실 게시판과 토론방에 참여하는 사람들 각자가 알고 있는 정보는 제한되어 있다. 때로는 자신에겐 큰 의미 없는 정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참여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 공간은 지식과 경험의 거대한 창고가 되고, 개별적 정보 사이에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아주 유용한 무엇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이버스페이스 인간관계의 새로운 원리다.
특히 한국 사회는 인터넷 게시판 문화가 상당히 발달한 곳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정보 교환과 커뮤니케이션이 전자우편 위주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는 게시판이 그런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한다. 아마도 의사소통 제도의 후진성이 한몫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나라는 특정 현안을 이해 당사자 간 직접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 이를 다수 대중에게 공개하고, 여론화하고, 나아가 집단행동을 통해 풀어가려는 속성이 인터넷 게시판 문화에 그대로 반영된 듯하다. 게시판 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은 그만큼 정보의 공유와 이를 매개로 개방적 인간관계가 형성될 기반이 잘 갖추어졌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관계망’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K씨 동호회에 가입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은 K씨에게 더이상 흥미를 주지 못했다. 그 동안 채팅 사이트와 게시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하던 K씨도 마침내 사이버스페이스 한귀퉁이에 자신의 안식처를 마련했다. 모 커뮤니티 사이트의 영화 동호회 회원으로 가입한 것. 인간은 역시 사회적 동물이다. 어딘가 집단에 소속되어야 안정감이 생긴다. 오늘은 동호회 가입 후 처음 맞는 번개(오프라인 모임) 날. K씨가 좋아하는 니콜라스 케이지 신작 영화를 단체 관람하고 저녁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다. “어떻게 생긴 사람들이 나올까?” K씨는 장롱 문을 열고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고른다.
현실세계에서 공동체를 규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지리적 거리다. 가족 지역사회 등 게마인샤프트(공동사회)가 지배적이던 전통사회에서는 물론, 학교나 직장과 같은 게젤샤프트(이익사회) 중심으로 재편된 근대 이후에도 대부분의 공동체는 지리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는 지리적 한계를 초월한 세계다. 인간관계도 당연히 탈공간적으로 형성된다. 이들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것은 개개인의 취향과 관심사다. 공통의 가치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 정보와 네트워크를 공유할 수 있는 개방적·호혜적 성격의 가상공동체가 구현되는 것이다.
가상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채팅방이나 게시판에 드나드는 사람들에 비해 소속감이 높으며 멤버도 어느 정도 고정돼 있다. 때문에 지속적이고 안정된 인간관계 유지가 가능하다. 이들은 일정한 멤버십을 형성하고 컴퓨터 커뮤니케이션(CMC)과 오프라인 만남을 통해 단순한 정보 교환의 차원을 넘어서 우정을 나누거나 도움을 주고받는 등 관계를 발전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공동체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시켜 주는 대안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관찰되는 인터넷 동창회 붐은 대안적 공동체 모델에 역행하는 가장 한국적 형태의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유난히 ‘연줄 의식’이 강한 한국인들은 관심사 중심의 탈공간적 가상공동체보다는 기존 오프라인 공동체의 온라인적 확대·강화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그것도 날로 각박해져만 가는 현대 사회에서 강한 연대감을 갖고 끈끈한 정을 나누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강한 연줄 의식은 공유와 상생이 아닌 대립과 배타의 인간관계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경계의 눈초리를 늦출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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