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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인터뷰|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이회창 총재, ‘위험한 정치’그만두시오”

  • 안기석daum@donga.com 육성철sixman@donga.com

“이회창 총재, ‘위험한 정치’그만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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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대통령 면전에서 여권 실세의 퇴진론을 주장해 화제가 된 정동영 최고위원으로부터 청와대 발언 막전막후와 현 정권의 위기론, 그리고 그가 말하는 여권 실세들의 의혹 배경과 차기 대권주자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 보았다.
‘정치적 스타’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일까. 민심이 가장 원하는 말을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극적인 장소에서 할 수 있는 정치인이 스타가 될 수 있다면, 민주당 최고위원인 정동영(鄭東泳·47) 의원(전주시 덕진구)은 최근 이 공식에 꼭 맞아떨어지는 발언을 한 셈이다.

화려했던 증권시장의 몰락으로 빈털터리가 되고 구조조정의 찬 바람에 ‘따뜻했던’ 직장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인사개입과 비리의 핵심으로 지목되는 여권의 실세를 향해 대통령이 보는 앞에서 ‘물러가라’는 말을 꺼낸 것은 민심의 풍향에 좌우되는 언론이 ‘극적인 드라마’로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추락하는 주가와는 달리 정동영 최고위원의 인기는 급상승을 하고 있다. 발언 직후 정동영 의원 사무실로는 수백통의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그의 홈페이지에는 격려의 글이 연일 올라왔다. 물론 화려한 인기 이면에는 질시와 미움의 그림자도 따라 붙었다. 정의원으로부터 공격당한 여권 실세를 지지하는 듯한 민주당 중앙당 부위원장급 당직자들이 정의원을 규탄했고 당내에서는 ‘배은망덕한 짓을 했다느니’ ‘벌써부터 인기에 영합하는 발언을 한다느니’ 하는 비난이 있었다.

그러나 12월14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정동영 후원회는 만원사례였다. 광화문 일대가 교통체증을 일으킬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며 후원금도 예년의 수준을 휠씬 넘어섰다. 차기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한 이인제 최고위원도 이날 축사에서 “정의원은 미국 케네디 대통령과 비슷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뜨거운 충정으로 (퇴진)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청와대 발언 직후 인터뷰를 신청했지만 그의 바쁜 일정으로 후원회가 끝난 다음날인 12월15일 서울 여의도 국회내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이뤄질 수 있었다. 애당초 오전에 약속이 잡혔지만 후원회를 성황리에 치른 후유증 때문인지 몸살이 나 오후 3시로 인터뷰를 미뤘다. 정시에 그의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바람에 그는 자리에 없었다. 낡고 묵직한 책상과 푹신한 소파도 없이 딱딱한 등받이 의자만 있는 그의 사무실은 서재나 마찬가지였다. 책상 오른편 벽에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고 책상 정면 벽면에는 ‘견리사의(見利思義)’라고 쓴 목판이 걸려 있었다. 조금 늦게 들어온 정의원은 자강불식에 대해 묻자 “쉬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라”는 뜻이라며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사진기자가 사진을 계속 찍자 정의원은 잠시 양해를 구한 후 머리를 손질하고 나왔다. 방송인 출신답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는지 신경쓰는 것 같았다.

“위기의 빨간 불이 들어온 겁니다”

─청와대 발언 이후 전화가 많았나요.

“대부분이 기자들 전화죠. 한 몇 백통은 통화했을 겁니다. 국회 출입기자만 200여명이잖아요.”

─정의원은 민심을 어떻게 체험합니까.

“중앙당이나 국회에서는 민심이 체감되지 않아요. 정치인은 민심을 해석하는 사람이지만 민심의 실체는 아니잖아요. 오히려 친구나 후배 모임이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많이 느껴요.”

─이번 청와대 발언 배경에도 그런 자리에서 느낀 민심을 반영했습니까.

“저는 김대중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집착이 있어요. 그게 저의 정치적 핵이거든요. 사실 IMF가 왔을 때 민주주의의 위기가 온 겁니다. 문민정부가 실패했을 때 ‘차라리 전두환 시대가 좋았다’는 반작용이 있었잖아요. 그때 김대중 정부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강조하면서 잘 극복했어요. 그런데 김대중 정부가 다시 출렁거리니까 민간정부에 대한 비판이 많아졌어요. 김대중 정부의 실패 여부를 가리는 바로미터는 다음 선거예요. 그런데 불만의 파고가 자꾸 높아지니까 ‘위기’라고 인식하는 거예요.”

─김대중 정부의 위기를 언제부터 느끼게 됐습니까.

“느낌만 있는 게 아니라 과학적 지표로 나타나고 있어요. 11월에 4년만에 최초로 여야 지지율이 역전됐어요. 제가 당에서 세번쯤 얘기했어요. 공식회의, 최고위원회의, 비공식 조찬 간담회에서 ‘이거 빨간 불이 들어온 겁니다. 지금 깜빡깜빡하는 겁니다. 비상한 시국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조기에 민심의 트렌드를 돌려놓지 않으면 97년 신한국당 꼴이 납니다’고 말했어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외부의 이회창 총재나 야당이 강해서 위기가 온 게 아니라 내부의 품질과 단합, 리더십에 문제가 생겼다고 봅니다. 그래서 ‘당쇄신론’ 입장에 서게 된 겁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라게 ‘폭탄발언’을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조용히 직언할 수도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런 노력을 했습니까.

“11월11일 청와대에서도 대통령께 개인적으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내부 쇄신이 필요합니다. 의원들의 자발성이 필요합니다. 내부에서부터 위기가 초래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내부에서 무너질 위험이 있습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대통령은 그냥 듣기만 했습니까.

“특별한 반응은 없으시고 ‘알았다’고만 했습니다.”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분위기는 어떠했습니까.

“동료들도 비슷한 무력감과 답답함을 호소하더라구요. 그래서 반추해서 작년 옷사건 때를 떠올렸어요. 김대중 정부에 대한 신뢰의 일각이 무너진 게 옷사건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옷사건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고 기술적인 문제였거든요. 신속하고 과감하게 조기에 자르고 수습했으면, 모두가 다 살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걸 깔아뭉개고 실기하다가 7개월을 끌었어요. 그때 저는 평의원이었는데 요로를 통해 건의했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어요.”

─옷사건 때는 직접 대통령에게 전달하지 않았나요.

“직접은 안했구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비공식 라인을 통해 전했어요. 이번에 청와대에 가서 한 얘기도 그겁니다. ‘저는 젊은 의원의 한 사람으로 작년 옷사건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의원직을 던지고라도 대통령을 가로막지 못한 것을 반성합니다. 오늘 그런 연장선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의원직이나 최고위원직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는 것이 대통령을 돕는 일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가감없이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정의원의 발언을 권력투쟁의 시발탄으로 보는 시각이 강한데요.

“신문에서는 청와대 발언을 두고 음모니 배후니 하면서 좁게만 보는데, 제가 무슨 친권이고 반권입니까? 저는 정권교체가 최고의 선이라는 생각에서 야당에 뛰어들었던 초심 그대로입니다. 이게 실패하면 제가 정치에 투신한 의미가 사라지는 겁니다. 김대중 정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것은 그래도 견딜 수 있지만,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 실망을 넘어서 분노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의 일부를 제가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이 고장났어요”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최고위원들끼리는 사전에 의견을 조율하지 않았습니까.

“11월 하순에 최고위원 간담회에서 제가 워크샵을 하자고 제안했어요. 하룻밤을 새서라도 왜 민심이 이렇게 됐는지 따져보자고 했어요. 정말 위기인가 아닌가? 위기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해보자고 했어요. 그래서 날짜까지 잡기로 했는데, 대통령께서 토요일에 청와대로 들어오라고 하니까 그 전날 최고위원들이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도 권최고위원 문제를 얘기했어요. 하지만 초점은 큰 물줄기를 반전하는 일대 국정쇄신 차원에서 시스템론을 얘기한 겁니다. 시스템을 점검하고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지금은 시스템이 작동하질 않아요. 시스템보다는 비공식 의사결정 구조가 지배하니까 시스템은 느려지고 무력해지는 거죠.”

─권노갑 최고위원을 포함한 동교동계가 현 집권 여당의 시스템과는 부적합하다는 거죠?

“그건 시스템이 아니고 비공식 라인이죠. 제 주장의 핵심은 퇴진이 아니라, 일대 쇄신 차원에서 시스템을 재구축하자는 거였어요. 동교동계 문제는 부차적으로 얘기였어요”

─부차적이지만 그게 중요한 얘기였지 않습니까. 그동안 시중에서는 소수의 여권 실세가 나라를 휘두른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당내부에서는 이를 쉬쉬했던 것 아닙니까.

“신문에서는 제목으로 크게 뽑았지만, 부분적인 문제예요. 부분이 해소됐다고 해서 시스템이 작동되는 게 아니잖아요. 설사 권 최고위원이 물러났다고 해서 당이 활성화됩니까? 아니지요. 저는 권노갑 최고위원이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시스템이 작동하는데 도움이 되고 대통령에게 좋은 사람을 천거해준다면 그게 더 효율적일 수도 있잖아요.”

─청와대 발언 전에 초재선 의원을 만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 특정 세력이 조직을 차지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도저히 힘이 안 난다는 것을 확인하신 것 아닙니까.

“저는 쇼크를 받았어요. 능력이나 심지, 순수성에서 경외심을 갖고 있는 동년배 의원 한 명이 ‘의원직을 더 해야 하는지 심각한 회의에 빠졌다’고 말하는 걸 듣고 찬 물을 등줄기에 끼얹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오히려 사태를 안이하게 보는 것 같았어요. 거의 한결같이 무력감, 답답함, 총체적 위기라고 했어요.”

당내에는 노회한 ‘쥐’들도 많지만 결국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역할은 ‘순진한’ 정 의원이 자임한 것일까. 당시 상황이 궁금해 물었다.

─언론에는 자세한 얘기가 나오지 않았는데, 청와대에서 몇 번째로 발언했나요?

“제가 마지막이었어요. 대통령 옆에 한화갑, 이인제, 김중권 최고위원 등 공교롭게도 이번 전당대회 득표순으로 앉았어요. 서영훈 대표가 김근태 최고위원에게 먼저 얘기하라고 했어요. 그렇게 돌아가다 보니까 제가 맨 마지막에 발언을 하게 됐어요. 먼저 말문을 연 김근태 최고위원이 사실 할 말은 다 했어요.”

“더 심한 루머도 얘기했어요”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 권노갑 최고위원을 만나서 ‘이런 말을 하겠다’고 했다면서요.

“하겠다고 얘기한 게 아니구요. 총체적 위기로 봐야 한다는 말을 했죠. 의원들이 권최고위원을 뭐라고 얘기하는지 그대로 전달했어요.”

─그때도 권노갑 최고위원에게 ‘YS정부의 김현철’이라고 얘기했나요.

“그렇게 보고 있다고 말했죠. 그보다 더 심한 루머도 얘기했어요.”

─권노갑 최고위원도 자신이 금융권과 벤처업계에서 돌아다니는 비리에 관한 루머를 듣고 있다던가요.

“그렇다고 해요. ‘정 최고가 얘기하는 것 중에 일부는 처음 듣는다’고 했어요. 그 자리에서 정동채 의원도 똑같이 얘기했어요. 국정 쇄신이라는 틀 속에 권최고 문제는 부분으로 들어간 거였어요. 그런데 본질은 다 어디로 가고 권최고위원 문제만 권력투쟁으로 부각됐어요”

권노갑 최고위원이 처음 듣는다는 얘기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이야기의 맥을 끊는 것 같아 인터뷰가 끝난 후 ‘인터뷰 팁’으로 가르쳐 달라고 물어보았더니 정 의원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금융 벤처업계 소문을 들어보니까 권노갑 최고위원과 여권 실세들에 관한 것들이 많더라구요.

“사실이 아닌 게 많죠. 권 최고위원은 벤처에 이해가 없는 아날로그 세대예요. 구세대지요. 디지털 벤처 쪽과는 연이 닿을 수가 없어요.”

─중요한 건 사실 여부보다 시중 여론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거잖아요. 김현철씨도 인사 개입외에 이권 개입은 나중에 밝혀놓고 보니 별것이 없었는데 당시에는 모든 비리의 배후가 김현철씨라고 믿지 않았습니까.

“저도 권 최고위원에게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저는 권 최고가 결백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야당할 때 김현철을 한보 몸통이라고 쳤지 않습니까?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한보와는 관련이 없습디다. 그러니까 정치인에게는 이미지가 중요한 것 아닙니까. 이것을 직시해야 됩니다. 그냥 아니라는 생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정도로 그렇게 좋지않은 소문이 나돌면 소문을 안고 사라져 주면 될텐데 그게 쉽지 않아요. 그건 권 최고위원이 대권 주자 만들기에 관심이 있다는 말 아닙니까.

“그건 전혀 제가 고려해보지 않은 생각이에요. 대권은 2002년 국면의 일이지, 지금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잖아요. 저는 정치적 역관계 같은 데 별로 관심이 없어요.”

이미 언론에 도배질한 친권이냐 반권이냐는 이분법으로 대권이나 당권에 대해 더 이상 정의원을 ‘고문’하는 것은 별 소득이 없을 것 같았다. 정 의원의 충정이 신뢰의 위기로 인해 정지된 시스템을 작동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이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해 더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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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석daum@donga.com 육성철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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