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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論大戰

밀월에서 대공세까지

  • 안기석 <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daum@donga.com

밀월에서 대공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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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진행되고 있는 정부 당국의 언론정책을 보면 이 보고서가 주문한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집권 초기에 대통령정책기획자문회의에서도 원칙적인 언론개혁에 관한 정책보고서를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IMF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언론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했고 또한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일부 언론과의 밀월에 젖어 언론개혁에 개입할 뜻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김대통령은 자율적인 언론개혁을 강조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집권초기 대통령정책기획자문회의에서 언론개혁에 관한 건의서를 올렸으나 이를 무시하고 ‘위스키 앤 캐쉬’정책으로 언론을 길들이려다가 안되니까 뒤늦게 칼을 뺀 것이다. 집권 초기에 원칙적인 언론개혁을 했더라면 오해를 받지 않았을 터인데 이제 와서 언론개혁을 외치니 오해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사정에 밝은 한 여당 중진의원도 “언론개혁과 관련, 당에서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어요. 뒤늦게 돌격대로 나선 분위기고 청와대 공보쪽도 언론개혁에 대해서는 어떤 역할도 맡지 못했어요. 아예 나서지 말라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면 국세청이 스스로 알아서 했다는 것인데 삼척동자라도 믿지 않을 겁니다. 대통령도 버거워 하는 언론들을 상대로 국세청이 어떻게 독단적으로 일을 벌입니까. 언론개혁과 관련된 일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거나 대통령의 뜻을 관련기관이나 사람에게 전달하는 고리가 있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아무튼 김대중 정부와 주요 신문의 밀월관계는 오래가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지 1년이 채 못되면서부터 정부에 비판적인 기사가 신문을 장식하기 시작했고, 정부에서도 설득이나 해명 차원이라는 형식을 통해 ‘압력성 협조요청’을 행사했다. 그 과정에서 1999년 6월 중앙일보 사주인 홍석현 회장의 구속사태가 발생했다.



물론 이 사태는 재벌기업 세무조사 차원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홍석현 회장은 보광그룹의 대주주이자 중앙일보 사주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국세청은 보광그룹의 탈세혐의를 조사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중앙일보는 김대중 정부가 비판적인 언론을 길들이려는 것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고급옷 로비의혹이나 검찰의 파업유도 의혹으로 집권층의 도덕성에 큰 흠집이 나는 등 궁지에 몰리자 언론에 재갈을 물림으로써 돌파하려는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특히 내각제 문제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언론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려는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언론계에서는 “대선 당시 중앙일보가 이회창 후보를 노골적으로 편든 데 대한 보복”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세계일보에 대해서도 세무조사를 실시했다. 당시 세무조사에 대해 국세청은 “정기조사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일 뿐 특별한 의미는 없다”는 식으로 간단하게 설명했다.

중앙일보 사주 구속의 의미

그러나 당시 대한매일 편집국의 한 간부가 쓴 칼럼은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속마음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것 같아 흥미롭다.

“적어도 이땅의 일부 보수언론은 지난 정권 시절 김대중 대통령을 엄청나게 음해하고 모함했다. 그들은 정치인 김대중이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간다고 시비하고, 왼쪽으로 가면 왼쪽에 서있다고 몰아붙였다. 이는 지난 40년간 집권세력이 조작한 과격 이미지 논리에 순치되거나 그런 논리를 개발, 전파해주며 사익(社益)을 챙긴 결과물이다. 특히 지난 수십년간 형성된 지배엘리트층과 보수 기득권층의 선봉이 되어온 언론이 야비한 지역감정 조작을 확대재생산하면서 호의호식해왔다. 이들 언론은 그동안 특정지역과 계층적 기반이 같다는 이유로 지역감정을 조장하며 지역패권주의를 한껏 즐기는 데 앞장서왔다. 이로 인해 정치인 김대중은 지역감정의 엄청난 피해를 보면서 동시에 반발심리로 혜택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언론이 지금 정권교체가 되었다고 해도 승복할 리가 없다. 사소한 허점도 가차없이 흠집을 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간교한 하이에나보다 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이는 정권을 얕잡아본 표현에 다름 아니다. 계층적 기반이 다르고, 그들이 조작해온 과격 이미지가 아니라 생각보다 물렁해보이고, 권력시스템도 정교해보이지 않자 더욱 밟아보는 것이다. 그런 언론이 탄압을 받고 있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이 정권에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그동안 독재권력, 부패권력에 협력하며 여론을 왜곡하고, 때로 반민족적 반민주적 언론행태를 밟아온 타락언론 기생(妓生)언론에 대해 세무조사든 불공정거래법이든 주어진 법테두리에서 과감히 시정해나가야 한다. 굳이 말한다면 그들에게 빚진 것이 없는 현정권에게 때묻고 병든 언론을 청산하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당시 홍석현 회장 구속과 관련, 중앙일보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정권이 언론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이 정권을 탄압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세계일보 세무조사에 대해서도 폈고, “국세청에서 세금탈루 혐의가 있거나 오랫동안 조사를 받지 않은 기업에 대해 공평과세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와 언론이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하게 된 것은 1999년 5월에 터진 옷로비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언론이 연일 옷로비사건을 보도하면서 김태정 당시 법무부장관의 퇴진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듯하자 김대통령은 “언론이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격분했다. 그러나 김태정 법무부장관은 결국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도 한빛은행 대출사건과 관련, 언론에 오르내리다 혐의가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장관직을 내놓았다. 당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언론이 여론몰이를 하면서 대통령이 총애하는 측근들을 계속 낙마시키는데, 언론에 대한 심기가 편하겠나”는 말을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언론의 두 번째 악연은 노벨평화상 수상 관련 보도였다.

“그동안 언론에 계속 두들겨 맞다가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면서 좋은 평가를 받는가 했더니 약효가 얼마가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통령께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니까 언론이 제대로 보도해주리라고 생각했는데 시상식에 참석하는 것까지 시비를 걸어요. 외국에서는 가는 곳마다 기립박수를 하는데 국내에서는 신문들이 기립 삿대질을 해대는 판이니 대통령의 마음이 오죽했겠어요.”

청와대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주요 신문이 지역감정을 선동하고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정치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데 미칠 지경이었다”고 덧붙였다.

여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김대중 대통령은 국내언론의 노벨평화상 보도에 대해 몹시 섭섭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언론개혁’에 대한 결심을 굳혔다는 관측이 많다.

개혁정책에 대한 저항과 반발이 확산되고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질 대로 떨어지자 나름대로 특단의 대책도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개혁정책이 실패하고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진 원인을 비판적인 언론보도 때문이라고 본 것 같습니다. 정부가 잘한 것도 제대로 보도해주지 않는다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청와대내에서도 더 이상 신문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언론개혁의 정면돌파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은 1월10일 언론개혁 발언 이후 국세청 세무조사나 검찰 조사에 대해 “어떤 외압도 없으니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처리하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언론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순수한 동기에서 언론개혁의 칼을 뽑았다고는 볼 수 없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개혁하기를 기대했지만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상황에 왔기 때문에 세무조사를 실시했다”고 하지만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감정적 앙금’이 있었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특히 2001년 2월 시사저널이 공개해, 정가에 파문을 일으킨 언론개혁문건을 보면 동아 조선 중앙 등 빅3에 대한 여권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이 문건은 “동아 조선 중앙 등 반여 일간지들의 대정부 비판이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는 “언론개혁을 통해 ‘언론 방어벽’을 구축해야 한다”고 건의하고 있다.

이 문건은 1999년 10월 폭로된 중앙일보 북경특파원 출신인 문일현 기자(당시 휴직하고 중국 유학중)가 이종찬 국정원장에게 보낸 언론장악문건과도 논리적 전개가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민주당이나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에게 보고되지 않은 습작품에 불과하다고 애써 무시했다.

어쨌든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 발표와 검찰 고발에 대해 여야 정당과 정치인, 방송사와 신문사, 메이저신문사와 마이너신문사, 시민단체들, 지식인들간에는 언론탄압이냐 조세정의냐, 비판언론 죽이기냐 재벌·족벌언론 개혁이냐, 정권재창출용이냐 김정일 답방 사전 정지용이냐, 곡학아세냐 홍위병이냐 등 다양한 설전들이 벌어지고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 발표를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가 이념적으로 양분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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