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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가 명택 11

서울 도심의 숨은 명당 ‘안국동 8번지’

해위(海葦) 윤보선(尹潽善) 고택

  • 조용헌 <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cyh062@wonkwang.ac.kr

서울 도심의 숨은 명당 ‘안국동 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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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 전대통령은 충남 아산군 둔포면 신항리의 새말에서 태어나 10세쯤에 이 곳으로 이사온 이후 줄곧 이 집에서 살았다.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이 집에서 살았고 대통령을 그만 둔 후에도 이 집에서 살았다.

고택의 돌담길을 따라 대문 앞에 서니 왼쪽으로 40∼50cm 높이의 네모난 돌이 눈에 들어온다. 말을 타고 내릴 때 발을 디디기 위한 용도의 하마석(下馬石)이다. 서울의 전통가옥 대문 앞에 지금까지 남아 있는 하마석은 매우 희귀한 사례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3개의 소문(小門)이 나타난다. 맨 오른쪽의 소문은 별채인 ‘산정(山庭)채’로 들어가는 문이고, 왼쪽의 문은 작은 사랑채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 가운데 나무 사이로 몇 미터 들어가서 여는 문은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다.

큰 대문 하나에 작은 대문 3개의 구조는 셋이 모여 하나로 귀결되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의 구조다. 삼한(三韓)을 통일하고 고려가 세워질 때 자주 등장하던 논리가 회삼귀일이어서 그런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이를 회통과 통합의 원리로 존중해 왔다.

3개의 소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문은 산정채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다. 아주 귀엽고 아담한 문이다. 그러면서도 철제로 되어 있어 튼튼한 질감과 심플한 맛을 준다. 문의 전체 높이는 180cm, 여닫이의 높이는 1m 정도로 낮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또 문 위로는 작은 지붕이 얹혀 있는데 문이 지녀야 하는 품위를 모두 갖추고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문을 통과하고 있다는 느낌을 분명하게 준다.



윤상구씨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는 나무로 된 문이었는데 6·25전쟁 때 부서져서 60년대 초반 해위 선생이 직접 모양을 설계하여 쇠문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예쁜 문은 해위 윤보선의 작품이다.

수많은 고택을 다녀 보았지만 이처럼 예쁘면서도 실용적이고 분명한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 문은 보지 못하였다. 전통의 상징성과 모던한 아름다움이 이상적으로 결합된 문이다.

문은 무엇인가? 동양문화에서 문이 지니고 있는 상징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성(聖)과 속(俗)의 경계다. 성스러운 공간과 세속의 공간을 구분하는 장치가 문인 것이다. 바깥에서 중심부로 들어갈 때마다 문을 하나씩 통과하게 되는데, 바로 그 때마다 세속의 세계에서 좀더 성스러운 공간, 즉 중심부로 진입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마치 옷을 한 꺼풀씩 차례차례 벗는 것처럼 문을 많이 통과할수록 때를 벗고 정화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찰에 들어설 때 제일 앞에 서 있는 일주문(一柱門)부터 시작해서 사천왕문(四天王門), 불이문(不二門), 금강문(金剛門) 등 여러 개의 문을 거쳐서 대웅전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배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구중궁궐(九重宮闕), 구중심처(九重深處)라고 할 때 구중이라는 의미 역시 9개의 문을 지칭함은 물론이다.

이처럼 동양세계는 문을 통해 성스러운 공간을 확보하려 하였다. 반면 서양에서는 실내 공간의 높이를 통해서 성스러움을 확보하려 하였다. 서양의 유명한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동양의 사찰에 비해서 천장이 유난히 높다. 천장이 높으면 건물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외감과 신성감을 주기 마련이다. 반대로 천장이 낮으면 아주 답답하다.

아무튼 윤보선 고택도 여러 개의 문을 통해 중심부로 진입하도록 배치돼 있다. 일단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다음에 산정채로 가는 작은 소문을 통과하고 다시 산정채의 출입문을 열도록 되어 있다. 문을 하나 더 통과할수록 그 건물에 들어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 신성하고 깊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용을 하므로, 결과적으로 철제로 된 소문(小門)의 존재는 산정채의 품격을 높여주는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문이 많아서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도 생활에 너무 쫓기면서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산정(山庭)채는 어떤 용도의 집인가? 우선 이름부터 특이하다. 뫼 산(山)에 뜰 정(庭) 자이니까 산 옆의 뜰에 있는 집이라는 뜻인데 이 집 어디에 산이 있단 말인가?

산속의 별장 이미지 주는 산정채

그런데 과거의 집은 현재의 집과 전혀 달랐다 한다. 옛날에는 현재 연못 자리에서 대문쪽까지 작은 산맥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연못이 있었고, 연못을 건너가는 다리도 있었으며, 그 옆에 작은 동산이 있었던 것이다. 그 동산을 산으로 간주하고 산 옆에 있는 별채라는 뜻에서 산정채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산정채는 집 안에 있는 별채이지만 마치 산속의 별장에 있는 것과 같은 호젓함과 한가함을 주어 그렇게 이름 짓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는 집에 있으면서도 관념상으로는 산에 들어와 살고 있는 셈이다. 임천간(林泉間)에 노니는 걸 좋아했던 옛 선비들의 풍류를 엿볼 수 있는 작명이다.

산정채에는 그 풍류에 걸맞은 현판이 큼직하게 걸려 있다. ‘유천희해(遊天戱海)’라는 글씨가 바로 그것인데, 하늘과 바다 위에서 노닐고 춤춘다는 뜻이다. 하늘과 바다에서 놀 수 있어야 진짜 노는 것 아니겠는가. 그 호탕함이 부럽다. 산정채에 드나들던 선비들이 가슴에 품었던 호방한 기개가 그대로 묻어 있는 글씨체로 보인다. 집주인에게 확인해 보니 추사의 친필이라고 한다.

정면이 4칸, 측면이 2칸 통의 크기인 산정채에는 이 현판 글씨 외에 조그만 편액이 하나 더 걸려 있다. ‘태평만세(泰平萬歲)’라고 새겨진 편액이다. 그런데 그 편액의 모양이 특이하다. 동행한 사진작가 권태균씨의 설명에 의하면 편액의 모양은 박쥐를 본딴 것이라고 귀띔한다. 그는 중국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부의가 살았던 장춘의 궁궐에서도 박쥐 모양을 한 편액을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빨래를 두드릴 때 쓰던 다듬이 돌의 양 옆에도 박쥐 문양이 새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왜 박쥐인가? 서양에서는 박쥐가 악마의 상징이지만 동양에서는 반대로 오복(五福)의 상징으로 본다. 박쥐를 한문으로 복()이라고 쓰는데, 박쥐 복 자가 복 복(福)자와 모양이 비슷해서 같은 의미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신구에도 박쥐 문양을 새겨놓은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산정채는 한국 현대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윤상구씨의 설명에 의하면 영국 에딘버러대에서 고고학을 공부한 후 1932년 여름 귀국한 해위 선생이 1945년 광복될 때까지 13년 동안 일체의 바깥 활동을 삼가면서 칩거하던 곳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정당인 한국민주당의 산실이었고,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야당의 회의실로 쓰이던 곳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 정치사의 중요한 일들이 바로 이 산정채에서 논의되었던 것이다. 김영삼 전대통령, 김대중 대통령도 젊었을 때부터 여기를 드나들던 멤버이다. 지난 1980년 ‘서울의 봄’ 때는 해위 선생이 당시 야당의 양대 거물인 김영삼, 김대중씨를 이곳으로 불러서 야당후보 단일화를 당부하던 곳이기도 하다. 그것이 해위 선생의 공식적인, 마지막 정치행위였다. 산정채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곳이다 보니 TV 방송국에서 드라마를 촬영하기 위한 무대로 눈독을 들이는 곳이기도 하다.

산정채에서 눈여겨볼 장치 하나는 ‘양실(洋室)’이라고 불리는 햇볕가리개다. 산정채의 한쪽 면이 서쪽을 향하고 있어서 오후가 되면 석양이 낮게 깔려 실내로 깊숙이 들어오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이 햇볕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 고택 가운데 이러한 햇볕가리개가 설치되어 있는 건물은 강릉의 선교장, 해남 녹우당, 그리고 비원의 연경당과 산정채라고 한다. 그런데 산정채의 햇볕가리개는 다른 곳과는 달리 러시아 양식이라는 특징이 있다. 구한말 개화기 때 러시아 사람들이 제작하였다는 설이 있다.

녹색의 잔디와 붉은 베고니아 꽃을 배경으로 고요한 중후함 속에 서 있는 산정채. 한국적인 격조와 품위가 배어 있는 건물임에 틀림없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건물 한 채라도 아직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시골도 아니고 1200만 인구가 복작거리는 서울에서 이처럼 품위 있는 건물을 유지하려다 보니 함부로 집을 개방할 수 없는 집주인의 심정을 이해할 만도 하다.

이번에는 안채를 보자. 이 집의 안채는 다른 고택의 안채와는 달리 누마루가 있다. 대개 누마루는 남자들이 사용하는 공간인 만큼 사랑채에 달려 있는 경우가 흔하지만, 이 집은 안채에 누마루가 달려 있어서 다른 집의 안채와 같이 여성 전용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건물 크기도 산정채보다 훨씬 크고 높아서 안채 특유의 아늑함은 적고 대신 당당한 위엄이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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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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