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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자살 금지법 시대

중편소설 자살금지법 (하)

  • 오르테가 이 가세트 (Ortega y Gasset)

제2부 자살 금지법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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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어떤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와아!” 하는 환호성과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떴다.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햇살이 날카롭게 두 눈을 찔렀다. 침대에 쓰러져 있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었던 모양이다. 박수와 환호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베란다에서 바깥을 내다보았다. 거기에는 이상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태양이 내리쬐는 아파트 공터에 많은 사람 모여 있었다. 그 중앙에 사형대 같은 물체가 높이 설치되어 있고, 한 남자가 그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나는 망설이다 바깥으로 나가 보았다. 몰려든 군중 사이로 비집고 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았던 그 물체는 분명 사형대였다. 중세 시대에나 쓰였을 법한 그런 사형대. 나무로 만든 야트막한 단이 설치되고, 그 단 위에는 밧줄이 매달린 철봉같이 생긴 가로대가, 지상으로부터 15미터 높이로 설치되어 있었다. 거기엔 목을 졸라맬 밧줄 네 개가 기다랗게 아래로 늘어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 높이 치솟은 사형대를 올려다보았다. 하늘 꼭대기에서 불타는 듯 이글거리는 태양빛 때문에 사형대의 밧줄은 마치 저 빛나는 하늘 어딘가에서 내려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눈부심을 견디지 못해 시선을 떨어뜨렸다. 밧줄이 내려진 곳마다 자그마한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만 치우면 곧장 목에 걸린 밧줄이 숨통을 막아 단번에 끊어놓을 것이다. 사형대 오른쪽 끝에는 검은 복면을 한 남자가 연설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혼자 쓸쓸히 자살하는 것보다, 혹은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어 익사하는 것보다, 혹은 가스 중독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보다, 이 복고적인 죽음의 방식이야말로 여러분에게 한층 더 품격 있고 예술적인 죽음의 기회를 맛보여줄 것이오. 이제 죽을 때가 됐다고 판단하는 자, 이 세계의 몰락을 견딜 수 없는 자, 생이 주는 공포와 두려움에 지친 자, 죽음이 주는 참된 자유를 갈망하는 자, 영원한 소멸을 꿈꾸는 자는 이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오.

게다가 훌륭한 보너스도 있지 않소! 여기선 혼자 죽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만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것도 자살자가 죽기 전에 이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는 것은 결코 흔치 않은 일이오. 이 자리를 지켜보는 우리는 이 위대한 자살자들의 죽음을 증거하는 참관인이 되는 것이며, 이들의 참회와 분노와 애환을 경청하고 심판하는 판관이 되는 것이며, 우리를 통해 이들의 삶은 의미 있는 예술적인 죽음으로 승화하는 것입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자살자를 모실 순서입니다. 여러분 박수!”



그 남자의 말이 끝나자 사형대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이 우레같은 박수를 보냈고, 어떤 이들은 휘파람을 불어댔다. 사람들 틈에서 먼저 네 사람의 신청자가 나왔다. 그들은 사형대 위로 올라가 각각 의자에 올라서서 둥근 밧줄 구멍에 목을 걸었다. 그러자 관중들로부터 다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네 사람 중 한 명은 여자였다. 그녀는 검정 악기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일렬로 선 채로 관중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두려움이나 공포 따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생의 체념과 죽음의 긍정에서 우러나는 여유와 담담함이 서려 있었다. 사형대 가장 왼쪽에 서 있는, 네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늙은 자살신청자가 빙긋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렇게 많은 대중 앞에 서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군요. 이중에는 혹시 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군중 가운데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저 사람 누군지 알아보았어! 저자는 시의회 의원이었소. 한 번은 부시장도 한 적이 있는 자요. 그렇지 않소이까!”

그 말을 듣고 늙은 자살 신청자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소! 그래도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정치인이란 원래 대중의 이목을 양식 삼아 사는 인간이라, 무관심보다는 차라리 비난을 즐기는 법이지요. 우리 같은 정치인들이 투쟁과 갈등, 전쟁을 즐기는 것도 그 심리 이면에는 그런 과장된 혼란으로 자신의 존재를 대중에 부각하고 역사 속에 영원히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각인하려는 본능적인 욕망이 숨어 있는 것 아니겠소? 오래 전에 이 세계를 피의 광풍으로 몰아넣은 히틀러란 작자를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것이오. 대중은 그를 짐승 같은 인간, 피에 굶주린 살인마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우리 같은 종족은 겉으로 표방하는 반대와는 달리, 히틀러와 같은 무한의 권력과 능란한 세치 혀로 수천만 대중을 자신의 발 아래 무릎 꿇게 하는 그 위대한 능력을 흠모하는 은밀한 욕망을 감추고 있지요.

그렇소, 그는 세치 혀로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를 따르는 국민에게 영광스런 광휘를 부여해주었던 것이오!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 칸, 나폴레옹 같은 영웅들을 기억해보시오! 그들은 모두 잔인한 살육과 무자비한 피의 잔치를 벌였지만, 인류 역사 속에서 그들의 이름은 면면히 빛을 발하지 않소? 권력자들이란 호시탐탐 세계 만방에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절대적 권력, 신과도 같은 권력을 소유하기를 얼마나 갈망하는지! 영웅은 위기에서 태어난다는 말이 있지만, 실은 우리 같은 권력자가 세상의 위기에서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실상이었소! 위기를 두려워하는 정치인은 결코 위대한 권력자가 될 수 없소. 권력의 본질은 바로 파시즘이지요.” 그러자 군중 속에서 우우우 - 하며 비난하는 함성이 터져나왔고, “저놈은 죽어 마땅한 놈이야! 어서 죽기나 해!”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서두르지 마시오. 난 지금 어차피 죽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고, 마지막으로 솔직하게 고백하려는 것이오. 여러분, 생각해보시오! 신이라는 작자도 없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이오? 우리 인간에겐 가능한 모든 극단적인 행위조차 허용되지 않겠소? 자유, 우리 인간이란 종족이 꿈꾸는 그 절대적인 자유를 위해서라면, 한 인간이 자신의 절대적인 힘을 위해서 수백만, 수천만을 전쟁으로 몰아넣어 죽이고, 또 그와 똑같은 수의 인간을 굶어 죽게 만들거나 이런 사형대에 세운들, 그게 무슨 상관이겠소. 신이 부재하는 세계에서는 오로지 인간만 법과 도덕을 세울 수 있을진대, 권력과 힘을 가진 강자만이 인간 세상에 법과 도덕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 아니겠소. 그렇소, 강자만이 법과 도덕, 그리고 모든 인간적 가치를 부여하는 입법자요. 양심이니, 동정이니, 연민이니 하는 따위의 도덕률은 깨지기 쉬운 사기그릇 같은 나약한 인간들을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한 것들이오.

위대한 힘을 가진 입법자들에겐, 도덕률이란 그저 밑 닦는 휴지에 불과할 따름이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히틀러야말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높은 자유를 입법화한 인간이었으며, 신의 위치에 올라선 인간이었소. 그는 비록 패배했지만, 그는 10년 넘는 세월을 그런 위치에서 이 세계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오! 그는 의식적으로 자신의 절대 자유를 추구했으며, 그가 내세웠던 온갖 이데올로기는 단지 어리석은 가축떼 같은 대중을 자신의 손아귀에 장악하기 위해 내세운 장식품에 불과했던 것이오. 내게도 지금 히틀러와 같은 절대권력이 주어진다면, 오, 내게 그런 권력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십억 인구의 90퍼센트를 불태워 죽이고, 총칼로 학살한다고 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오.”

그때 웅성거리는 군중 가운데 한 청년이 앞으로 썩 나서더니 그 늙은 권력자를 향해 소리쳤다.

“당신에게 그런 권력이 주어진다 해도 당신은 절대자유를 얻을 수 없을 것이오! 절대권력은, 결국 대중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 자유는 결국 부자유에 불과한 것입니다. 당신의 절대권력으로 당신이 기반으로 삼는 모든 대중을 학살해버렸을 때, 당신의 절대권력은 무(無)에 봉착하게 될 것이오. 그러므로 아무리 절대적인 권력이라 하더라도 절대적인 자유는커녕 절대적인 부자유만을 초래할 뿐이오. 자기모순에 봉착하고 만단 말입니다! 히틀러의 결말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소! 그는 절대적인 부자유 속에서 비참한 종말을 맞았을 뿐이오! 극단적인 가학(加虐)에서 비롯되는 그런 자유는 결국 힘의 부재요, 무(無)란 말이오!”

청년의 외침에 늙은 권력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그 청년을 매섭게 노려보다 큰 소리로 외쳤다.

“망할! 몹쓸 놈 같으니! 남이 할 말을 가로채버리다니!”

늙은 자살 신청자는 청년을 향해 침을 탁 뱉더니 한쪽 발로 의자를 걷어차 버렸다. 의자가 덜컹하며 앞으로 넘어지자, 그의 목에 걸린 밧줄이 팽팽해지더니 사지를 바르르 떨다 몸을 축 늘어뜨리고 말았다. 군중 속에선 한숨소리가 들려왔고 이어 깊은 정적이 흘렀다. 밧줄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죽은 권력자의 바짓가랑이 사이로 시커먼 똥줄기가 빗물처럼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음 차례로 오십대쯤의 뚱뚱한 중년 남자가 말을 꺼냈다.

“생각해보니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소이다. 나는 그저 성실히 일했을 뿐이오. 개미와 베짱이 우화에 나오는 일개미들처럼 밤낮없이 생산 현장에서 생애를 보냈고, 그 결과 남들이 부러워하는 큰 부를 축적했을 뿐이오. 나는 거창한 이념 따위는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학교에서 배웠던 가치들, 즉 내가 추구하는 이익이 다수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자유주의의 기본 이념뿐이오. 나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애덤 스미스라는 학자가 ‘국부론’이라는 책에서 권고한 대로 성실하게 살아왔소.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며, 필연적으로 사회에도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마련이다”라고 그 책에서 말한 대로, 나는 성실히 나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해왔으며, 때때로 동정심을 발휘하여 내가 모은 부의 일부를 사회에 헌납하기도 했소. 물론 때로는 사회적 동정심에 대해 반발심을 품은 때도 있었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근본적으로 불평등하게 마련이고, 따라서 개개인의 능력차에서 비롯되는 부의 차이도 자연의 법칙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사회적 동정심은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개인을 더욱 무력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에게 비참한 감정을 불러일으켜 그 비참한 감정이 오히려 사회적 증오로 바뀔 뿐이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솔직히 말하건대, 이런 내 속마음을 공공연하게 표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다수는 무능력한 개인들이어서, 굳이 그들의 분노와 증오를 불러일으켜 내 명예를 손상시킬 하등의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무능력하고 나약한 인간들은 그저 동정을 베풀기를 원하고, 또 그들에게 서푼어치 동정만 베풀어도 눈물을 찔끔거리며 감동을 해 동정을 베푼 자를 존경어린 눈으로 바라보니까 말입니다. 나는 내가 이룩한 부의 제국에서 황제처럼 군림했고, 부가 가져다주는 권력과 명예를 최대한 누렸으며, 내 개인의 부가 결국 국민 총생산의 일부로서 국부(國富)에 기여한다는 자긍심을 갖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자살하려는 거요?”

군중 사이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그러자 그 부자는 고개를 들고 멍한 얼굴로 태양이 내리쬐는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는 신앙심에서도 남에게 뒤진 적이 없었소. 내가 헌금한 돈으로 지은 교회도 여러 개입니다. 나는 엄청난 부를 가졌지만 금욕적인 생활을 했으며, 가정에도 충실한 남편이고 가장이자, 부모로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내가 가진 부나 명예가 아니라 내 영혼의 구제요 내 존재의 불멸이었습니다. 나는 신의 존재를 두려워했고 죽은 후에 내 영혼이 올라갈 심판의 저울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자신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신이 사라진 뒤에 내게 남은 것은 절망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이 세속적인 세계에서 큰 부를 축적했지만, 이 많은 부가 내 영혼의 완전함을 보장해주는 황금 갑옷이 될 수는 없었으며, 죽음의 세계가 무(無)이건, 혹은 자유이건 간에, 도대체 이 생이란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한 인간이 이 세계에 내던져져서 기껏 황금만 추구하며 살아간다면, 그가 황금으로 만리장성을 쌓고 그 안에서 지낸다고 한들, 그의 뱃속에는 거지와 마찬가지로 똥만 가득 들어 있을 뿐인데, 그런 빈곤한 영혼의 빈곤을 무엇으로 메울 수 있단 말입니까? 결국 나는 짐승처럼 살아온 셈이며, 그걸 생각하면 내 생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결국 죽음이 내 유일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나는 자살로서 잘못 살아온 내 생에 대해 보복하고, 내 영혼에 회개의 눈물을 보태려 합니다.”

“그래도 당신은 부자니 행복하지 않았소!”

내 옆에 서 있던,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없는 한 남자가 외쳤다.

그러자 그 부자는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행복이라구요? 당신은 지독하게 가난해 보이는군요. 그 가난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여유조차 없었던 게 틀림없소. 당신에게는 행복이 황금의 소유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일 것이오. 하지만 그 어떤 황금도 당신 뱃속에 처넣을 수 없을 뿐더러, 당신의 영혼에서는 똥보다 못한 것일 뿐이오. 내가 이 자리에서 선언하건대,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당신에게 물려주겠소. 당신이 원하는 그 행복을 마음껏 누려보시오!”

그는 이 말을 마치자 지겹다는 듯 의자를 걷어찼고, 즉시 남자의 목은 90도로 꺾였다. 남자의 몸은 기다란 밧줄에 매달린 채 앞뒤로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군중 속에서 몇 사람이 조용히 박수를 쳤다.

이윽고 군중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자살 신청자 중 유일한 여자가 들고 있던 악기 케이스를 열고 그 속에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군중이 잠시 웅성렸다. 여자는 삼십대 초반으로 누가 보아도 매혹적인 미모를 갖고 있었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와 검은 드레스 차림이 마치 연주회 무대에 올라선 것처럼 우아했다. 그녀는 목에 걸린 죽음의 밧줄과 기묘하게 대비되면서 섬뜩한 아름다움마저 풍겨내고 있었다.

여자는 목에 밧줄을 건 채 말없이 바이올린을 턱에 괴고 연주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조용히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눈을 지긋이 감은 채 바이올린 활을 움직이는 그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바이올린의 쓸쓸하고 음울한 음색은 아파트 공터 위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군중들은 깊은 침묵 속에서 그녀의 연주에 귀기울였다. 나는 그녀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곡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즉흥적으로, 자신의 감정과 영혼의 울림을 담은 자작곡을 연주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이올린 연주는 점점 더 고조되었다. 여자는 감정이 북받치는지 질끈 감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바이올린도 그녀의 감정을 따라 울부짖는 것처럼 들렸다. 점점 격렬해지는 손놀림, 미친 듯한 선율의 파장. 군중 사이에서는 훌쩍이며 우는 자, 나지막하게 신음을 내는 자, 오, 오! 하면서 감탄사를 뱉어내는 자까지 생겼다.

여자와 바이올린은 마치 죽음을 앞둔 연인이 열렬한 사랑을 담은 애무에서 시작하여 격렬한 엉킴과 최후의 터질 듯한 오르가슴으로 이어가듯이, 그녀 자신과 바이올린이 합체가 된 것처럼 신들린 듯이 연주했고, 찢어지는 듯한 선율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듯한 순간, 여자는 갑자기 발 밑의 의자를 밀쳐 버렸다. 쿠당탕탕 하며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목이 꺾였다. 그리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몸은 허공에서 검정 포대자루가 흔들리듯이 앞뒤로 건들거리며 떠 있었다. 그런데 바이올린과 활은 여자의 양손에 꽉 쥐어진 채 그대로였다. 여자는 죽음의 세계에도 자신의 바이올린과 함께 간 것이다.

여자의 갑작스런 죽음에 군중사이에서 한숨과 탄식이 이어졌고, 흑흑흑 하며 우는 소리도 들려왔다. 바이올린 소리가 끊긴 공터에는 다시 적막이 흘렀고, 그 무거운 적막은 섬뜩하고 불길하여 마치 온 세계가 죽음에 처한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바이올린과 활을 쥔 채로 기다란 밧줄에 목을 매단 검은 드레스의 여인이 허공에 둥둥 뜬 채 앞뒤로 흔들리는 모습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어 눈을 돌리고 말았다. 모두 여전히 여자가 연주하던 바이올린 소리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모두 그 자리에 굳어버린 동상처럼 멍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흘렀을까?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군중은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네 번째 자살 신청자였다.

“저는… 지금 생각하니 이 자리에 올라올 자격조차 없는 인간이라는 자괴감마저 듭니다. 차라리 자살을 포기하고 내려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남자도 방금 옆에서 죽은 여자처럼 아직 젊어 보였다. 마흔이나 되었을까 싶은 그는 양복차림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벌써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하게 맺혀 있었다.

“저는 권력도, 명예도, 부도, 열렬한 신앙심도, 그리고 예술에 대한 교양도 없는, 그저 주어진 작은 것에 만족하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합니다. 저보다 앞서 죽은 세 사람과 비교해 본다면, 저는 야심도, 능력도, 별다른 노력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만약 제게 기회가 주어졌다면 저 역시 권력이나 부를 추구했을 것입니다. 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평범한 행복에 만족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부를 갖기를 열렬히 갈구했던지! 저는 하루에 열 시간 이상 회사를 위해 일했고, 한 단계라도 더 승진하기 위해 비굴한 짓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여러분에게 일일이 다 보고하기에는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에 비해, 자살이라는 고귀한 죽음의 방식은 저처럼 우유부단한 소시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귀족적인 특혜입니다. 저는 그 동안 숱하게 저 자신의 비루한 생에 환멸을 느끼고 자살 충동을 느꼈지만, 비겁하게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죽음의 공포를 회피해왔을 뿐입니다. 형편없는 소시민답게 죽을 용기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당신 책임은 아니지 않소!”

갑자기 군중 속의 한 사람이 큰소리로 그 남자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 그 목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역시 넥타이를 맨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군중을 향해 소리쳤다.

“나 역시 이 사람과 같은 평범한 소시민이오. 유아원에서부터 시작하여 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장장 25년을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한 기술과 기능을 배워야 했고, 회사에 힘들게 취직해서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고, 외국어와 새로운 기술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틈틈이 공부에 매달렸으며, 회사에서 언제 쫓겨날지 몰라 위아래로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했습니다. 나는 짐수레에다 무거운 짐을 가득 싣고 주인에게 채찍을 맞으면서 허겁지겁 내달리는 노새처럼 그렇게 일상생활에 노예처럼 결박되어 살았습니다. 과연 그런 노새 신세인 우리에게 인생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영혼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과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비난받고 탄핵받아야 할 것은 우리 인간을 이렇게 노새처럼 만든 이 빌어먹을 세상이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예가 되었던 인간은 아니잖습니까? 저기 저 권력자와 부자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지, 힘없고 선량한 우리 대중에게 무슨 책임이 있단 말입니까? 하다못해 짐승들도 드넓은 들판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보잘것없는 양식을 위해 하루종일 일하지는 않거늘, 존엄한 우리 인간이 빵을 위해 이토록 비참하게 하루의 절반 이상을 바쳐야 하는 게 과연 누구의 책임입니까? 일에 지쳐 파김치가 된 몸과 정신으로 아까 저 아름다운 여인이 연주했던 음악에 귀기울이며 예술에 심취할 여유를 어떻게 가질 수가 있 겠습니까? 자살해야 할 것은 저 가련한 소시민, 우리의 가련한 형제가 아니라, 권력과 부와 지식을 독점해온 특권층임을 감히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옳소! 옳소!”

군중은 환호성을 지르며 요란하게 박수를 쳐댔다. 그때 말을 멈춘 채 침묵을 지키던 마지막 자살 신청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런 그의 큰 목소리 때문에 군중은 조용해졌다.

“모든 책임을 자신의 외부에 전가하는 것에는 저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계급적 적대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중산층이었지만,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와 다름없다고 여겼고, 제 처지에 불만을 느낄 때마다 그 불만을 외부에 전가해 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뀐다고 해서 과연 소시민적 우유부단함과 나약함이 금세 당당하고 강인한 정신과 고귀한 영혼을 소유하게 됩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오랫동안 노예 같은 삶에 익숙한 인간이 하루아침에 주인의 삶을 속속들이 닮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썩어빠진 비굴한 노예 정신을 갈아치우지 않는 한, 당신들의 두뇌는 여전히 노새의 두뇌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노예들, 노예들, 오! 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정신의 노예들, 나는 나와 이 세상의 노예 근성에 구역질을 느꼈고, 이 구토를 참지 못해 나는 차라리 자살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 남자는 말을 마치자마자 의자를 힘껏 걷어찼다. 의자는 멀리까지 튕겨 나가 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힘찬 발길질 때문인지 밧줄에 매달린 남자의 몸은 이미 자살한 세 사람보다 더 세차게 앞뒤로 흔들렸고, 그림자도 함께 단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군중 가운데 입을 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입술을 꽉 깨물거나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목이 꺾인 채 흔들리는 남자를 저주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온몸으로 타고 올라오는 전율 때문에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느껴 몸을 돌려 군중을 비집고 나가려 했다.

그때 “잠깐만!” 하고 나를 불러 세우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흠칫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복면을 한 남자가 단 위로 올라가더니 나를 겨냥해 손가락질을 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저자를 잡으시오! 저자야말로 가장 먼저 사형대에 올라가야 할 인간이오. 저자를 잡으시오, 어서!”

그러자 내 주위에 서 있던 남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나를 붙잡았다. 나는 “왜 이러는거요!” 하며 몸부림쳤지만 그들은 완강하게 내 몸을 낚아채고는 단 위로 끌고 올라갔다. 복면을 한 남자가 다시 외쳤다.

“저자의 목에 어서 밧줄을 거시오!”

복면의 명령에 따라 남자들은 마지막 남자를 끌어내리고 나서 단 아래로 떨어진 의자를 주워 올려놓았다. 이윽고 그들은 나를 의자 위에 세우고는 목에 밧줄을 걸었고 내 손을 등뒤에서 밧줄로 힘껏 묶어버렸다. 나는 꼼짝없이 사형대에 올라서게 되었다. 여차 발을 삐끗하면 덜컥, 하고 밧줄이 내 목을 죄어버릴 것이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자를 탄핵해야 합니다. 이 자는 비겁하게도 가장 먼저 자살했어야 할 인간임에도 군중 틈에 숨어서 타인들의 자살을 훔쳐보며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 자가 누군지 아시오? 바로 우리 인간 사회를 이토록 궁지로 몰아넣은, 바로 기자, 지식인, 학자라는 이름의 종족이오!”

그러자 군중 사이에서 “죽여라! 죽여라!”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복면을 한 남자는 손을 들어 소란을 잠재우고는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기자나 학자야말로 가장 먼저 심판대에 올려야 할 종족입니다. 지식이 인간 세상에 가져온 죄악을 논하자면 저 하늘 꼭대기에서 밝게 빛나는 태양이 물러갔다가 내일 다시 떠오를 때까지 열거해도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첫째, 인간의 영혼과 내면을 고양하는 지혜(Wisdom) 대신 분별적인 지식만 추구하여 인간의 관심을 외부의 대상세계로 축소시킨 죄! 둘째, 이성을 신격화하고 논리만 숭배한 결과, 이 세상에서 신을 추방해버린 죄! 셋째,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게 높인 나머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착취하고 파괴하게끔 유도하여 인간과 우주의 통일성을 잃어버리는 오만과 죄악에 빠지게 한 죄! 넷째, 전에 자살한 소시민이 말한 것처럼 대다수 평범하고 선량한 인간들에게 지식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지워서 소박한 삶에 대한 갈망을 앗아간 죄! 다섯째, 온갖 이데올로기로 권력자들에게 아첨하거나 그들 자신이 권력자가 되어 대중을 기만하고 볼모 삼아 이데올로기의 실험대상으로 삼은 죄! 여섯째, 자유언론을 빙자하여 사실상 자신의 사리사욕을 추구하고, 퇴폐적이고 왜곡된 기사로 인간의 심성을 타락시키고 참된 진실을 은폐한 죄!”

“죽여라, 죽여라!” “더 들을 필요도 없다. 목을 매달아라!” 군중은 웅성대며 소리쳤고, 돌팔매질을 해댔다. 복면을 한 남자는 음산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내게 다가왔다. 나는 무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복면을 쓴 남자가 갑자기 복면을 확 벗었다.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복면 뒤에 나타난 얼굴은 바로 내 아내였다. 아내는 나에게 바싹 다가오더니 싸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예수도 죄가 없었지만 십자가에 매달렸지요.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를 법정에 세운 자들이 죄인이었는 데도 말이에요. 하긴 예수도 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요. 그 역시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온 이상, 그는 인간의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지요. 예수는 그걸 알았던 거예요.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만일 지식에 죄가 있다면, 당신의 머릿속에 가득 든 그 지식들도 탄핵의 대상이 될 것이니, 당신의 목을 매다는 건 결코 불의가 아닐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당신의 아내를 죽게 만들었어요. 사랑보다 더 큰 무엇을 위해서였죠? 일? 명예? 출세? 아니면 당신 자신?”

“오, 여보… ”

“그래요.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이제 우린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 지옥에서.”

아내는 말을 마치자 오른 발로 내가 딛고 서 있는 의자를 힘껏 걷어찼다.

나는 비명을 질렀고, 의식이 까마득해지다간 희붐한 미지의 공간 속으로 새처럼 날아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그 순간, 나는 번쩍 눈을 뜨고 말았다. 온몸이 마비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새벽 어둠이 방 안 가득 밀려 들어와 있었다.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식은 땀에 온몸이 젖어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마치 현실처럼 생생했던 꿈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목덜미가 욱신욱신 쑤셔왔다.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괴로운 신음을 토해냈고, 낭떠러지에서 굴러 떨어지는 듯한 고통에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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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자살 금지법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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