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탈북자들에 대한 적응교육이 모든 탈북자 개개의 수준에 맞춰 다양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또 남한과는 전혀 다른 체제에서 살다온 사람들인 만큼,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법률과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시장경제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 등을 일반화해 가르쳐줄 부문이 필요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수준을 구분해 난이도를 달리해 교육해야 한다. 또 외부와 철저히 격리시킨 채 행해지는 지금의 교육방법보다는 어느 정도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토록 유연한 형태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2∼3개월의 집중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한순간에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 무난히 적응할 수는 없다. 남북한간 체제와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외부와 격리한 채 이루어지는 교육이 꼭 필요하다면 기능 위주의 교육보다는 한국사회를 이해하고 어떤 자세로 남한에서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정신교육 위주의 교과 과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원에서 컴퓨터교육이나 외국어 교육, 요리 실습, 자동차 운전면허증 취득 같은 기능 위주의 교육은 정말로 꼭 필요한 과목일까?
탈북자 H씨는 “하나원에서 컴퓨터나 외국어 등을 배우지만 완전한 것이 못되기에 결국은 사회에 나와서 다시 배울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 나와서 다시 배워야 할 것을 왜 하나원에서 격리시킨 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며 탈북자들이 하나원에서 취득한 것 중에서 사회에 나와서도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자동차 운전면허증뿐이라고 말했다.
얼마전 조선일보는 금융피라미드 사기에 걸려 돈을 잃은 탈북자들에 대해 보도했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나원 수료생들이다. 남한사회 실정에 어두운 탈북자들을 속인 사람들은 마땅히 질타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쉽게 돈을 벌려고 한 탈북자들도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이번 사기사건 에서도 보듯이 한국에 올 때까지 죽음의 위협과 고통을 이겨낸 정신력으로 스스로 자기 앞길을 개척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남한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는 정신교육이 하나원의 중요한 교육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탈북 때의 정신력으로 자립해야
성공 사례로 매스컴에 많이 알려진 김용씨나 전철우씨 외에도 탈북할 때의 정신력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탈북인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는 느릅냉면 특허를 받아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 제품을 공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례를 좀더 적극적으로 알림으로써 탈북자들이 정신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후원회에서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사회 적응실태를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탈북자들이 남한생활에서 겪는 가장 어려운 점은, 경제적인 문제(18.4%)이며 그 다음으로 취업과 외로움, 남한사람들의 편견과 언어문제, 문화적 차이, 남한사회의 이해 부족,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대인관계, 건강문제, 아이들의 장래문제, 결혼문제 등을 들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탈북자들은 극히 적었으며, 이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대기업과 공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탈북자들의 취업률은 63%에 불과하다. 탈북자들이 남한사회에서 처음 대하는 사람은 담당 경찰관일 정도로 대인관계가 협소하다.
지방으로 가게 된 탈북자들의 경우 담당 경찰관들이 한두 번 정도 직업을 알아봐 주지만, 서울에 남은 탈북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직업을 찾아야 한다. 물론 탈북자들끼리도 직업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현실에 어두운 탈북자들인지라 정보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벼룩시장’ 같은 광고지에 의존하게 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건강보조식품 판매 같은 다단계판매에 빠져들어 결국 돈을 잃고 만다.
탈북자 P씨는 ‘벼룩시장’ 광고를 보고 “월급을 괜찮게 주겠다”는 여러 회사를 찾아다녀 보았지만, 그가 들어간 곳은 인맥이 있어야 팔 수 있는 정수기나 화장품 판매 등 판매직종뿐이었다고 한다. 탈북자 L씨가 3년 동안 갈아치운 직업은 10여 개가 넘는다. 별다른 기술이 없던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직업은 대부분 3D 업종의 단순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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