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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미 PGA 대회 우승한 프로골퍼 최경주

“인생은 어차피 한번뿐…도전하며 살겠다”

태극마크 부러웠던 ‘완도 촌놈’ 성공기

  • 안성찬 < 스포츠투데이 골프전문기자 > golfahn@sportstoday.co.kr

“인생은 어차피 한번뿐…도전하며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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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나는 대우뿐 아니라 스폰서 및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엄청난 효과가 있겠지요.

“물론입니다. 우선 계약사인 슈페리어에서 우승 보너스가 나옵니다. 이외에도 아직 가시화하지는 않았지만 광고 제의나 여러가지 다른 스폰서십이 생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를 관리하는 IMG가 광고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물밑작업을 하고 있겠지요.”

최경주는 올 시즌 슈페리어와 연간 5억원에 3년 동안 스폰서십을 맺었다. 골프용품사인 테일러메이드와도 클럽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계약금이나 우승 및 성적에 따른 보너스 내용은 밝혀진 바 없다. 미국과 한국이 나눠서 스폰서를 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

-라운드 때 신은 골프화에 태극 문양이 들어가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미국에서 투어생활을 하고 있지만 한시도 고국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특히 게임이 풀리지 않을 때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찡하고 힘이 납니다. 국가대표나 상비군이 태극마크가 새겨진 옷이나 캐디백을 갖고 다니는 게 정말 부러웠거든요.”



최경주는 연습장에서 캐디생활을 하며 실력을 연마했기 때문에 국가대표나 상비군을 해본 일이 없다. 하지만 일본이나 미국 혹은 아시아지역에서 경기를 할 때는 늘 국가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한다고 했다.



‘찬밥신세’ 미국생활


-1995년 팬텀오픈 우승 이후에는 한국에서도 잘 나가는 프로였는데, 사서 고생해야 하는 미국 진출을 계획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어차피 인생은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누군가 시작할 일이라면 차라리 내가 하자고 결심한 거죠. 물론 편안한 생활을 팽개친다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계약금과 상금으로 적지않은 돈을 모았거든요. 1995년 이후 1998년만 빼고 늘 1승 이상을 거두었으니까요. 1997년에는 3개 대회에 나가 모두 우승하기도 했고요.”

최경주는 1999년 한국오픈에서 우승했고, 미국 진출 이후인 2000년에도 스폰서 회사가 주최하는 슈페리어오픈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해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프론티어를 하고 싶었다는 얘긴가요.

“리더는 궁극적으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져야합니다. 선택이 잘됐든 잘못됐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완벽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습니다. 프론티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쓰지 않더라도 ‘골프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늘 가슴속에 지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늦기 전에 미국투어에서 뛰어보자고 결심했던 것이죠. 하다가 잘못되면 그때 가서 후회해도 늦지 않을 거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최경주는 1999년 미PGA투어 프로테스트(Q스쿨)에 응시했다. 이미 일본투어에서 2승을 거둬 자신감도 있었다. Q스쿨을 통과했으나 35위를 차지해 풀시드는 받지 못했고, 다만 조건부로 출전하는 대기선수나 마찬가지였다. ‘땜질용 선수’로서의 고달픈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2000년에는 상금랭킹 134위로 다시 Q스쿨을 받아야 했다.

-미국진출에 장애요인이 많았을 텐데요.

“무엇보다 언어장벽과 생활문화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컸습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았지만 별 수 없었죠. 다른 프로 선수들과 눈인사를 하고, 아는 영어단어를 최대한 끌어내 말을 붙여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우월의식이 강한 데다 저는 무명선수이다보니 아는 척도 해주지 않더군요.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서면 죽도 밥도 안된다고 여겼습니다. 스스로 채찍질을 해가며 고된 연습으로 이국생활의 고달픔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어려웠던 점은 투어에 따른 유랑생활이었죠. 모텔을 전전하며 새우잠을 자야 했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아 많이 굶었습니다. 아무리 아껴서 쓰더라도 연간 투어생활비가 20만달러는 족히 들어갔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죠. 무엇보다도 마음을 짓누른 것은 수시로 엄습해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습니다. 혼자 있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하면 좋겠다고 판단해 집사람과 아이를 데려왔지요.”

숨은 이야기 한 가지. 최경주는 미국진출을 앞두고 하루에 영어단어 4개와 문장 1개를 외워야만 잠자리에 들었다. 이런 습관은 미국에서도 계속됐다. 늦게 배우는 만큼 고통이 따랐지만 집사람의 아이디어로 시작한 영어공부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기선수를 하려면 비용이나 체력이 그만큼 더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말이 Q스쿨 통과지 풀시드가 없는 대기선수는 찬밥신세죠. 티오프 시간을 새벽이 아니면 맨 뒤쪽에 배정하기 일쑤거든요. 정말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간 1억원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차디찬 햄버거도 꿀맛일 정도였으니까요.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가난에 장사 없다’고 하던가요. 투어를 쫓아다니는 것에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경험이라고 생각하자고 스스로 달랬지만 자꾸만 깊은 나락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자존심으로 버텼습니다. ‘만일 이대로 주저앉으면 내 인생은 끝’이라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각오를 새롭게 했습니다. 특히 한 가정을 책임질 남자가 할 일은 딱 한가지였습니다. 좋은 성적을 내서 차기년도에 풀시드를 얻는 것이었죠. 만일 여기서 더 무너지면 집을 팔아야 하고 아마도 미국생활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던 거나 다름없었죠.”

이런 생각이 맞아떨어진 것일까. 최경주는 지난해 크라이슬러클래식 4위 등 톱10 이내에 다섯 번이나 들어 80여만달러를 획득, 상금랭킹 65위로 올 시즌 풀시드를 얻는 데 성공했다. 드디어 힘겨웠던 미국생활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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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찬 < 스포츠투데이 골프전문기자 > golfahn@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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