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호

“전쟁터에서 즐기는 와인 맛을 아는가?”

김진화 기자의 이탈리아 바냐 카우다 샐러드와 배 프로슈토

  • 글·최영재 기자 (cyj@donga.com)

    입력2004-09-16 1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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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탈리아 식당에서는 프로슈토 (이탈리아식 햄)를 멜론에 얹어 먹는데, 김기자는 이를 한국의 배에 얹어 내놓는다. 이 프로슈토라는 것이 그냥 먹으면 짜고 느끼하지만 배 위에 얹으면 간도 맞고, 시원하고 달콤하고 아삭아삭한 배와 섞이면서 기막힌맛을 낸다. 바냐 카우다는 이탈리아식 멸치젓으로 만든 소스라서 우리 입맛에도 그만이다.
    “전쟁터에서 즐기는 와인 맛을 아는가?”

    와인잔을 들고 있는 김진화 기자

    한국 기자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 있다. 백발을 휘날리며, 전세계의 취재 현장을 뛰어다니는 외국의 ‘늙은 기자’들이다. 40대 중반만 넘으면 취재수첩을 놓아버리고, 한국땅만 벗어나면 돌파능력이 떨어지는 우리 언론 풍토에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김진화 기자(63)는 국제 언론 시장에서도 초특급 대우를 받을 만한 한국산 ‘늙은 기자’다. 한국에서 그만큼 국제적이고 현장 리얼리즘에 집착하는 기자는 흔치 않다.

    그의 이력을 보자. 합동통신 외신부(1961∼64), 동아일보 중동 통신원(1965∼72), 제네바 EVRO-EAST 선임연구원, 이탈리아 MIDDLE EAST BUSINESS 아테네 특파원(1972∼77), 미국 BUSINESS NEWS 중동·아테네 특파원(1973∼79), ARAB PIONEEV 아테네 베이루트 특파원, KBS 중동지국장, KBS 뉴욕지국장, KBS 해설위원, 시사저널 뉴욕편집위원. 그는 평생을 전쟁터를 누비는 저널리스트로 살았고, 예순이 넘은 지금도 ‘현장’에서 살고 있다. 영어·불어·아랍어를 동시통역 수준으로 구사하고, 이탈리아말·독일말 등 여러가지 유럽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세계 어느 곳에 파견되더라도 거침이 없다. 그는 분명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현장 저널리스트다.

    재미있는 것은 그를 만난 사람들의 반응이다. “잘 모르겠는걸, 어떤 사람일까?” 그에게는 이런 것이 통하지 않는다. 푹 빠지거나, 다시는 만나기 싫거나, 두 가지 중 하나다. 다 이유가 있는데, 먼저 아주 싫어하게 되는 경우를 보자. 그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사람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미국 영화의 남자 주인공 잭 니콜슨을 연상하면 된다. 그는 하루에도 손을 수십번 씻을 정도로 청결 결벽증이 있다. 택시를 잡을 때, 승차거부라도 당하면 즉시 수첩을 꺼내 차량번호를 적고 신고해 버린다. 개인간에 분쟁이 생기면 말로 하지 않고 소송으로 해결한다.

    식사라도 같이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질려버린다. 웨이터를 수도 없이 불러 불평하고 야단친다. 손수건도 두 장씩 갖고 다닌다. 하나는 본래 목적의 손수건이고, 다른 하나는 식당에서 내놓은 식기를 새로 닦는 수건이다. 지방 출장을 갈 때는 숙박업소의 청결도를 믿지 못해 침대 커버를 따로 한 장, 트렁크에 넣어가는 경우도 있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다.

    이번에는 아주 좋아하게 되는 경우다. 그는 예술을 알고 멋을 부리고 섬세하고 낭만이 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는 반드시 전망 좋은 창가에 앉고, 이탈리아 칸초네를 부르며 눈물 흘리고, 와인의 색깔과 향기, 맛을 천천히 즐긴다. 남에게 피해주는 일을 끔찍이도 싫어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약자와 여성을 배려한다. 한번 내뱉은 말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킨다. 허례와 권위의식은 찾아볼 수 없고, 모든 일 처리가 원칙적이고 지극히 투명하다. 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을 아끼지 않는다.



    “전쟁터에서 즐기는 와인 맛을 아는가?”

    예술을 사랑하는 김진화 기자는 화가 · 음악가 친구가 많다. 맨 오른쪽은 화가 김비함씨.

    그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유별나게 까다로운데, 각별한 이유가 있다. 오랜 외국생활 동안 그는 부업으로 최고급 레스토랑 웨이터 일을 했다. 유럽에서는 요리사와 웨이터가 대접받고 보수가 높다. 특급 레스토랑 웨이터로 일하려면 반드시 호텔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그는 북유럽과 제네바에서 호텔학교를 다니며 웨이터와 소믈리에(와인 감별사) 과정을 이수했다. 포크와 나이프를 놓을 때 간격은 30cm, 포크·나이프 끝과 테이블 끝 간격은 5cm, 식탁보가 늘어지는 간격 등 레스토랑의 기본 매뉴얼을 이때 제대로 배운 것이다. 이 실력으로 그는 오슬로·제네바·스톡홀름·파리·피렌체·아테네 등 유럽 곳곳에서 웨이터 일을 했다. 그러니 대충대충 넘어가는 한국 식당의 서비스가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특급 웨이터였던 만큼 그의 요리 실력도 대단하다. 김진화식 요리의 특징을 꼽자면 간단하고 독창적이라는 것을 들 수 있다. 프로슈토 요리가 그렇다. 프로슈토는 이탈리아에서 먹는 햄으로 돼지 넓적다리를 매우 얇게 썰어 소금이나 후추간을 조금 한 뒤에 말린 것이다. 이탈리아 파르마 지방의 것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으나, 김진화씨에 따르면 산디엘 지방에서 나는 ‘프로슈토 디 산다니엘 리’가 덜 짜고 맛있다고 한다.

    이탈리아 식당에서는 이 프로슈토를 멜론에 얹어 먹는데, 김기자는 한국의 배에 얹어서 먹는다. 이는 김진화 기자가 새로 시도한 방법이다. 이 프로슈토라는 것이 그냥 먹으면 짜고, 느끼해서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달콤하고 시원한 배 위에 얹으면 간도 맞고 느끼한 맛이 시원하고 아삭아삭 씹히는 배에 섞이면서 기막히게 어울린다.

    홀로 먹으면 칼칼하고 구린내가 강한 홍어회가 들큰한 돼지고기 수육과 섞일 때 새로운 맛을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요리는 배를 깎아 햄을 얹으면 끝날 정도로 간단한데, 특급 호텔 외국 식품 매장을 여러 군데 뒤져야 할 정도로 재료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다음 요리는 바냐 카우다(Bagna Cauda) 샐러드. 채소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니, 이 요리도 어려울 게 없다. 핵심은 바냐 카우다 소스를 만드는 것. 냄비나 뚝배기 그릇에 양파를 잘게 다져 넣은 뒤, 올리브유를 적당히 붓는다. 그런 다음 엔초비(이탈리아식 멸치젓국)를 넣고 은근한 불에 끓이면 끝이다.

    “전쟁터에서 즐기는 와인 맛을 아는가?”

    샐러드도 도예가 수준의 정성을 들여 담는다.

    엔초비가 없으면 한국 멸치젓국을 써도 되고, 기호에 따라 파와 마늘을 다져 넣어도 된다. 소스가 준비되면 쪽파, 오이, 붉은 피망, 노란 피망, 당근, 셀러리를 5∼6cm 길이로 잘라 색깔을 맞추어 내면 된다. 서양요리에서는 레몬이 빠지지 않는데, 길이와 직각으로 잘라서 내는 것이 원칙이다. 멸치젓이 재료라서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서양요리는 순서대로 먹기 때문에, 격식을 차리자면 프로슈토 요리를 먹고, 바냐 카우다 샐러드, 파스타나 스테이크, 후식 순으로 진행하면 된다. 여기에 와인을 곁들이는데, 프로슈토 요리나, 바냐 카우다 샐러드에는 화이트나 레드 어느 것이나 좋다.

    식문화에 누구보다 까다로운 김진화 기자는 최근 가칭 ‘슬로푸드 코리아 컨비비엄(동호회)’을 발족시켰다. 슬로푸드 운동은 패스트푸드의 반대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천천히 먹자는 운동이 아니라 진짜 식품을 재배·생산·유통시켜 온 가족이 건강하고 즐겁고 여유 있는 식생활을 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진짜 음식을 요리하고 즐겁게 먹자면 ‘천천히’할 수밖에 없다. 17년 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의 작은 도시 브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비단 음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당초에 전통음식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으나 점차 미각 유산 보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생물의 다양성(bio-diversity)과 환경친화 요리·음식(eco-gastronomy) 등 환경보호 운동에 눈을 돌리고 있다. 현재 슬로푸드 운동은 세계적으로 큰 호응을 얻어 세계 45개국에서 유료회원 7만여 명을 확보하고 있다.

    김진화 기자는 5월9일 가칭 ‘슬로푸드 코리아 콘비비엄’ 창립회원을 모아 장장 4시간 동안 저녁식사를 했다. 이렇게 식사를 하고 난 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갔다. 전운이 감도는 이라크 내부 취재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식탁이 그에게 쉼터라면 전쟁터는 그에게 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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