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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돈 훔친 아들, 믿음을 가르쳐준 아버지

  • 글·이정빈 전 외교통상부장관

돈 훔친 아들, 믿음을 가르쳐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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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는 혼자 수상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너무나 외롭고 슬퍼서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는 왜 자식들에게 냉정하고 무관심할까 하는 의문은 어린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당시 나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백화점이나 식당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이러한 아버지께서 자식들의 성적표 하나까지 전부 챙기며 보관해두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직접적인 애정표현은 자제하면서 자식들의 성장과정을 말없이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씩씩한 사회인으로 키워나가겠다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으리라. 그러나 어린 나로서는 칭찬보다는 꾸짖음과 낮춤을, 단것보다는 쓴것을,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을 중시한 아버지의 사려깊은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나는 아버지께서 자식 모르게 60여 년 동안 보관해주셨던 초등학교 때의 성적표를 그 무엇보다 소중한 유산으로 여기고 있다.

정직의 중요성 일깨워준 ‘금고사건’

아버지는 정직과 신의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셨다. 내가 정직을 우리 집 가훈으로 정한 것도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내가 정직해야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초등학교 2, 3학년 때 일어났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의 귀중품을 보관하는 나무로 만든 금고가 있었다. 금고 열쇠는 아버지께서 보관하고 계셨다. 나는 늘 굳게 잠겨 있는 나무 금고 속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금고의 열쇠를 발견하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사이 열쇠로 금고를 열어보니 한 모서리에 돈이 쌓여 있었다. 수일 후 급히 용돈이 필요했던 나는 부모님께 말씀드리기 싫어서, 금고를 열고 돈을 꺼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버지께서 이 일을 아시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눈치를 살폈다.

다행이 아버지께서는 전혀 모르는 듯 보여 안도의 숨을 내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께서 나를 찾으시더니, 금고의 열쇠를 건네주시며 “네가 큰애가 되었으니 열쇠를 책임지고 잘 관리해 보도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몰래 금고에서 돈을 꺼냈던 나로서는 가슴이 철렁한 말씀이 아닐 수 없었다.

열쇠보관 책임을 맡은 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금고를 열어보고 돈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돈에 손을 댄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 모르게 돈을 꺼내 쓴 것을 크게 뉘우치면서, 나의 잘못을 아시면서도 모르는 체하고 오히려 열쇠까지 맡기신 아버지께 미안함과 고마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잘못을 저지른 아들을 꾸짖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주어 스스로 깨닫게 한 아버지의 뜻을 뒤늦게 이해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나의 성장과정에서 정직의 중요함을 크게 일깨워준 계기가 되었다. 이후 나는 정직을 평생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있다.

정직은 가족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최근 핵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거짓말을 했다고 하여 국제사회가 북한을 믿지 못할 나라로 간주하며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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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정빈 전 외교통상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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