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아내와 골프 치면 참깨가 한 말!

  • 글: 김국진·개그맨

    입력2003-02-04 16: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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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와 골프 치면 참깨가 한 말!
    1993년 미국에 있을 때 처음 시작한 골프가 어느새 10년째다. 주위 사람들은 레귤러 코스에서 핸디 3 정도인 나의 실력에 대해 ‘프로급’ ‘연예계 최고’라고 치켜세워주지만 사실 그건 칭찬이 아니라 ‘세미프로 테스트 여덟 번 낙방’의 쓴 잔에 대한 위로 혹은 격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애초부터 여덟 번 정도는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앞으로 얼마나 더 떨어질지 가늠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지 않는가. 올해 열릴 테스트가 남은 두 번인 셈이다. 열 번을 찍었는데도 안 넘어가면 어쩌냐고? 그럼 열한 번째를 찍어야지 뭐.

    다른 이들은 전지훈련도 간다는데 형편이 허락지 않으니 입맛만 다실 수밖에. 대신 촬영장에 가서도 한구석에서 머리 속으로 골프클럽을 상상하며 혼자 스윙폼을 잡아보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있다. 직업과는 전혀 거리가 먼 분야에 빠져든 사람의 핸디캡이라고나 할까.

    혼자만의 재미였던 골프가 얼마 전부터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됐다. 함께 출연하던 TV 시트콤에서 ‘눈이 맞아’ 지난해 10월부터 나와 같은 집에 살게 된 사람 이야기다. 그 전에는 골프채를 잡아본 적도 없던 아내는 워낙 운동을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당연히 골프도 못 치겠거니 생각했다.

    내가 연습장 가는 길에 그녀도 따라 나섰던 연애 시절의 일이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길래 한번 마음대로 때려보라고 클럽을 쥐어주었다. 십중팔구 헛스윙을 하면 한바탕 웃어주고 잘난 체하며 가르쳐줄 요량으로. 그랬는데 이 사람 남의 속도 모르고 첫 공을 냉큼 딱 맞추는 게 아닌가. 그 흔한 뒷땅치기 한번 없이.



    유럽으로 갔던 신혼여행 기간에 함께 라운딩을 나가보니 분명 소질이 있다. 물론 초보다 보니 매번 정확히 공을 맞추는 것은 아니고 퍼팅 또한 잘 안 되지만, 의외로 자세가 나쁘지 않았다. 어디서 봤는지 다리며 허리가 제법 능숙하게 틀이 잡혀 있는 것이다. 비기너 치고는 훌륭한 솜씨였다.

    내가 처음 골프를 시작할 때 엉거주춤한 자세로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얄밉기도 하지만, 자고로 골프는 ‘폼생폼사’가 아닌가. 기초가 좋으니 입문과정을 무리 없이 따라오리라 믿고 있다. 케이블TV 푸드채널에서 내가 진행하고 있는 ‘김국진의 파워골프 쇼’의 ‘초보대결’ 코너에 아내를 게스트로 출연시키기로 한 것도 그런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촬영을 핑계로 일주일에 한번은 꼭꼭 함께 연습장에 가야 한다. 이름하여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아내와 골프 치면 참깨가 한 말!
    아내는 꽤 ‘단단하게’ 골프를 배우고 있다. 아내가 헛스윙이라도 하면 나는 어김없이 “헛스윙도 한 타”라고 잘라 말한다. 이왕이면 냉정하게, 이왕이면 단호하게. 언젠가 “헛스윙은 빼줄까?”라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본인 또한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룰대로 하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규칙을 어겨가며 골프를 치느니 골프클럽을 놓는다’는 평소 지론을 강조한 결과라고 생각하니 흐뭇하기도 하다. 덕분에 스코어는 150에서 200 사이를 마음대로 오가곤 하지만.

    연습장에 나가는 길에 “같이 갈래?”하고 물으면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방을 둘러메고 따라 나서는 그녀. 원래 추위에 약해 야외촬영 때는 5분도 못 되어 몸을 달달 떨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골프 연습장에서는 두 시간을 쳐도 끄떡없다. 코끝이 빨개져가지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클럽을 휘둘러대는 것이다. 턱 하니 자세를 잡은 채 눈앞에 놓인 공을 맞춰보겠다고 노려보는 품이 한편으로는 웃기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좀 ‘닭살스러워도’ 이해해주세요. 신혼이잖아요). 감히 추측하건대 열심히 연습하면 올 여름 정도에는 티샷부터 퍼팅까지 무리 없이 함께 라운딩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벌써부터 언젠가 아이를 낳으면 함께 손을 잡고 골프장에 가는 꿈을 꾸곤 한다. 클럽 14개 중 무엇을 고를 것인지, 거리나 각도는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지, 갖가지 상황마다 최상의 공략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골프는 ‘선택’을 훈련할 수 있는 좋은 운동이니,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란히 골프가방을 둘러메고 필드에 나서는 세 사람. 상상만으로도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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