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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실패 인정해야 경제가 산다

신자유주의 비판론자들의 반론

  • 글: 조영철 국회사무처 예산분석관·경제학박사 yccho@assembly.go.kr

시장의 실패 인정해야 경제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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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실패 인정해야 경제가 산다

대니얼 카네만

간단한 기대값 공식을 떠올려 계산해보면 위의 두 경우의 모든 선택은 똑같이 2500만원이라는 기대소득을 갖는다. 다시 말해 무엇을 선택하든 경제적 합리성 기준에서 보면 똑 같은 게임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전자와 후자의 게임을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카네만의 실험에 따르면 전자처럼 기대소득이 증가하는 ‘상향 게임’에서는 확실한 현금 500만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반면 후자의 ‘하향 게임’에서는 돈을 잃을 확률이 50%의 게임을 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생각해보자. 동전던지기에서 앞-앞-앞-앞-앞-뒤가 나올 가능성과 앞-뒤-앞-뒤-뒤-앞이 나올 가능성 중 어느 것이 클 것 같은가. 역시 실험에 따르면 후자의 가능성이 크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양자의 확률은 수학적으로 동일하다.

재미있는 것은 앞면이 계속 나왔을 때 이제 뒷면이 나올 차례라고 믿는 이런 식의 오류는 일반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험이 많은 심리학자들의 통계직관력을 검토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오류가 흔히 나타났다. 이런 연구들은 상황이 어떻게 짜여 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인지와 반응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사람들은 합리적 계산에 따라 행동하기 보다는 감성과 직관에 의존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카네만의 연구를 통해 행태경제학은 투자자가 합리적이라는 효율적 자본시장의 기본 전제를 근본적으로 비판할 수 있게 됐다. 카네만이 인지심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것은 행태경제학에 끼친 이런 기여 때문이다. 행태경제학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지금도 계속 발전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 인물로는 언젠가는 노벨상을 수상할 거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하버드대학의 안드레이 쉴레이퍼 교수가 있다.

MBA도 별 수 없다



증권시장에서 기업의 미래 수익성을 결정하는 기초조건을 따져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이나 정서에 많이 의존하는 투자자를 ‘잡음 거래자(noise traders)’라고 한다. 효율적 자본시장론도 이런 비합리적인 잡음 거래자들의 존재를 인정한다. 하지만 비합리적 투자자의 오류나 실수를 이용하여 차익을 내려고 하는 합리적 투자자가 있기 때문에 잡음거래자의 행동은 상쇄된다는 것이 효율적 자본시장론자들의 반론이다. 개인투자자가 실수나 오류를 범해도 합리적 기관투자가가 이를 교정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카네만의 연구에 따르면 일반인이든 전문가든 인지 오류와 판단 편향의 문제를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경제학박사나 MBA출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기관투자가가 합리적일 거라고 기대하지만, 펀드매니저들은 개인투자자들보다 정보우위에 있을 뿐 3개월, 6개월마다 투자수익률을 평가받고 경쟁상대자와 비교 당하는 압박에 시달리기 때문에 오히려 인지 오류와 판단 편향을 나타낼 가능성이 더 크다고 카네만은 말한다.

케인즈가 말했듯이 주식시장의 게임은 ‘어느 기업이 가장 좋은 지를 고르는 게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기업을 알아 맞추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투자자의 행동을 뒤쫓는 ‘대세 따르기 투자’가 선호된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비슷한 유형의 인지 오류와 판단 편향을 보인다면 잡음 거래자들의 행동은 상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증폭되어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투자자들은 다수 여론에 편승할 때 안심하기 때문에 군집현상이 쉽게 나타난다.

더군다나 경제적인 기초조건을 분석해 투자하는 것보다 다른 투자자의 행동을 주시하는 것이 비용측면에 있어서도 훨씬 싸고 편하다. 결국 아무리 합리적인 투자자라도 독자적인 분석을 통해 투자를 결정하기 보다 오히려 추세를 따라 잡음 거래자들의 대세 따르기를 부추기는 것이 더 유리한 경우가 생긴다. 합리적 투자자가 악화(惡貨)를 구축하기 힘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투자자들은 과거 자료보다 최근 자료를 더 중시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최근의 경제 현상이 장기 추세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하고, 최근 현상을 근거로 미래의 장기 추세를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90년대 미국의 호황을 가리켜 ‘정보기술산업의 투자 붐과 증시 거품을 갖고 경기변동은 사라졌으며 이전 역사와는 달리 장기호황이 지속될 것’이라 했던 허황된 전망 또한 이와 관련이 있다.

기존의 자기 생각과 배치되는 증거와 일치하는 증거가 나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증거를 훨씬 중시한다. 자기 생각과 다른 뉴스가 나와도 견해 수정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견해와 반대되는 뉴스가 계속적으로 반복되면 어느 순간 투자자들은 기존의 자기 견해를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되고 투자 방향도 급속히 변한다. 증시가 늘상 변덕스럽게 요동치고 수많은 거품과 폭락을 만들어 내는 것은 행태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많은 논리적 약점을 갖고 있는 ‘신경제론’에 그토록 많은 이들이 열광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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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영철 국회사무처 예산분석관·경제학박사 yccho@assembl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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