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한미동맹北 벌교(伐交) 공세 막는 최후의 보루

  • 글: 김재창 예비역 육군 대장·국제관계학 박사 jckim_kor@yahoo.co,kr

    입력2003-03-24 1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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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자(孫子)는 “내전에서 이기려면 벌모(伐謀)와 벌교(伐交)와 벌병(伐兵)을 한 후 공성(攻城)하라”고 했다. 먼저 상대의 전쟁의지를 무너뜨리고 상대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킨 후 군사적으로 공격해야 이길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한미동맹을 이완시키려는 북한의 벌교(伐交)술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미동맹北  벌교(伐交) 공세 막는 최후의 보루

    당선자 시절 한미연합사를 방문해 사열을 한 노무현 대통령.한미군사동맹이 50년 만에 변화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미동맹은 1950년 북한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고, 1953년 휴전이 성립된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공식화됐다. 이 조약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한국과 미국 어느 일방이 외부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을 경우, 그것이 곧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그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정신에 바탕을 두고 6개항에 합의한 것이다.

    이 조약의 핵심은 한미간에 군사동맹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조약 4조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미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허여(許與)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되어 있다. 이 합의에 근거해 미국은 전투부대를 한반도에 파견했고, 한미 양국 군은 연합작전 체제를 구축해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면서 전쟁을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한미 군사동맹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안전과 한반도의 안정을 지켜온 기본 틀이었다.

    ‘통일 이후’ 위한 한미동맹 돼야

    21세기가 시작되면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전략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소련의 위협이 소멸한 후 세계질서는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고, 동북아 나라들간의 관계도 냉전시대의 대결관계를 탈피하면서 화해와 협력, 개방과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 변화의 바람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내부적으로는 통제를 강화하고, 외부적으로는 체제 유지를 위한 도전을 계속해왔다.

    언젠가 남북한은 통일정부를 이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감격적인 순간은 복잡하고도 매우 어려운 전환기를 거쳐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남북한의 200만 대군이 반세기 동안 대치해온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통일을 이룩하는 전환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다. 냉전시대에 한반도에서 전쟁을 억제하고 안정을 지켜온 한미동맹은 통일을 향한 전환기에, 그리고 더 나아가 통일 이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서둘러 검토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냉전시 북한의 우위를 억제

    제2차 세계대전 전후(戰後) 처리과정에서 한반도를 남북으로 분할하기로 결정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중대한 실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분단된 한반도를 무력으로 통일하려 했던 발상은 무모한 것이었고 그것이 성공하리라 믿었던 것은 중대한 착각이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3년간의 전쟁은 수많은 사상자와 폐허로 변한 국토, 깊은 마음의 상처를 남기고 다시 그 자리에 철조망을 설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휴전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어느 나라의 이익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과, 당시 상황에서는 한반도의 현상유지(Status Quo)가 최선의 선택이라는 데 국제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휴전 이후 남북한이 걸어온 길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휴전 직후 쌍방은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방어태세를 구축했다. 기습을 했던 북한도, 기습을 당했던 남한도 똑같이 참호를 깊이 파고 철조망을 설치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고 판단했을 때 남한은 폐허가 된 산업시설을 복구하고 경제 개발에 들어섰다. 그러나 놀랍게도 북한은 병기공장부터 재건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거의 성공할 뻔했던 6·25 기습 남침공격과 초전(初戰)에서 거둔 성공의 환상을 잊지 못하고 무력통일의 가능성을 믿었던 듯하다.

    남북한이 상이한 진로를 선택한 결과는 1960년도 초부터 표면화했다. 우리가 겨우 삼천리호 자전거를 만들어 자랑하고 있을 때 북한은 당시로서는 최신 화기였던 AK-47 자동소총을 자체 생산하여 보급했고 중화기까지 생산하기 시작했다(남한이 소총을 자체 생산해 전선에 배치한 것은 그로부터 15년 후인 1976년 가을이다). 남북한간에 군사력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고 생각된다. 1980년대 말 미·소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북한은 줄곧 군사력에서 절대적 우위를 유지하면서 남한의 안전을 위협해왔다.

    이 시기 한미동맹은 남북한간의 전력 격차를 보완하고 한반도에서 안전을 보장해준 효과적인 장치였다. 휴전협정은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였지만, 힘없는 ‘합의’만으로 전쟁 재발을 방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중립국 감시위원단이 협정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기능을 수행하지만 강제적인 집행능력이 없는 형식적인 감독자에 불과했다. 결국 한미동맹체제와 한미연합군의 군사력이 전쟁을 억제한 현실적 수단이었고 평화를 지켜준 최후의 보루였던 셈이다.

    1960년대 말까지 한국군은 미국의 군사원조에 의존하는 지상군 위주의 군대에 머물렀다. 이때 미군은 판문점에서 서울로 이어진 서부 축선 방어를 담당해줬기 때문에 한국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1970년 초 미군의 일부 지상군 부대가 철수하면서 한국군이 전(全) 전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 무렵까지만 해도 북한의 군사력은 남한을 크게 앞섰다. 이러한 전투력의 불균형은 북한으로 하여금 무력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전쟁을 도발할 수 없었던 것은 한미동맹의 군사적 억제력 때문이었다고 평가된다.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초기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은 비로소 군사력 증강에 나설 수 있었다. 소총과 수류탄 정도의 소화기를 생산하는 수준에 불과한 방위산업이었지만, 이는 자주국방 의지를 키워줬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무렵 북한의 군사력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잠수함을 도입해 남한의 후방 항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증원군의 해상교통로를 차단·공격하겠다는 속셈이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도 소련으로부터의 첨단무기 대량 도입은 계속됐다. 미그-23과 미그-29 등 첨단 전투기와 SA-3과 SA-5 등 대공유도탄 그리고 첨단 기술로 제작된 전차가 이 무렵 도입됐다. 북한의 전력증강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미 증원군이 개입하더라도, 이를 저지 또는 지연시키면서 강력한 기동부대를 투입할 수 있는 수준의 전투력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력상의 불균형을 극복하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해준 것은 한미연합군사령부(ROK/US Combined Forces Command) 창설과 연합훈련이었다. 한미연합군사령부는 북한이 공격해 왔을 때 연합작전이 가능하도록 평시부터 연합 지휘체계를 구축해두고 방어계획을 수립해 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북한이 기습 공격을 하더라도 지체 없이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보유하고자 했다.

    이때 주한 미 지상군 배치는 미국의 개입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중요한 억제 수단이었다. 미 2사단은 북한이 서울로 진출할 수 있는 중요 축선에 위치해 있어 실질적인 방어력을 보강했을 뿐 아니라 전략적 차원에서는 유사시 미군의 자동개입 의지를 확인해주는 인계철선(trip wire) 역할을 해줬다.

    팀 스피리트를 포함한 각종 한미 연합훈련은 종합적인 억제 수단이 됐다. 이 훈련들은 유사시 한반도에 파견될 미군 부대원들에게 한반도의 지형과 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북한에게 유사시 미군이 개입한다는 시나리오를 보여줌으로서 오판을 방지했다는 점이다.

    결국 북한은 냉전의 전 기간을 통해 남한보다 현격히 우세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사용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북한이 선택했던 군사노선과 대남 공세는 인적·물적으로 많은 투자를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현상유지 틀을 깨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는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무장이냐 동맹이냐

    현실주의 논리에 따르면 국제관계는 무정부 상태와 같다. 국제연합(UN)이라는 기구가 존재하지만, 국제연합은 세계정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능력도 없다. 안전보장이사회가 국제평화를 보장해갈 책임을 맡고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분쟁을 관리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국가가 생존하려면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거나 아니면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어두어야 한다(Arms or Alliance). 가장 확실한 생존 수단은 자신의 군사력을 충분히 보유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형태와 수준은 다를지라도 거의 모든 나라는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적절한 상대를 골라 동맹을 맺고 있다. 미·일 동맹, 뉴질랜드·호주·미국 동맹(ANZUS), 미·캐나다 동맹, 북대서양지역 집단안보체제(NATO) 등이 대표적인 예다.

    동맹이란 다른 나라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서로간의 신의에 바탕을 둔다. 실제로 전쟁이 벌어졌을 때 신의를 저버리고 동맹국이 함께 싸워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맹국들은 평소 두터운 신뢰를 쌓아가며 서로 배신할 수 없는 장치를 마련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국가간의 동맹은 공동의 위협이 존재할 때 쉽게 성립되고 공동의 위협이 해소되면 해체된다. 물론 이념이나 가치관이 비슷한 나라끼리의 동맹이 효과적이지만, 전쟁은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대사(大事)이기 때문에 때로는 이념에 관계없이 동맹을 체결하기도 한다. 2차대전 때 공산주의 소련과 자본주의 미국·영국이 동맹을 맺은 것이 좋은 예다.

    동맹에 참여하는 것은 유사시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도움을 받는다는 기대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동맹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도 생각해야 한다. 동맹국이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을 경우 자기 나라는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 않더라도 군대를 파견해 같이 싸워야 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맹은 동맹으로부터 예상되는 이익이 동맹을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보다 클 경우 잘 유지되지만, 반대라면 해체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가간의 동맹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서로의 입장을 조율해가며 동맹을 관리해야 한다.

    냉전시기 한미동맹은 한국과 미국 모두에게 전략적 이익을 가져다줬다. 한국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미국의 지원이 필요했다. 특히 남한이 산업화를 추진하는 동안 북한은 군사노선을 추구했으므로 남한의 안전은 매우 위태로웠다. 이 시기 한미동맹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남한의 안전과 한반도의 안정을 지켜준 실질적인 수단이었다. 남한은 이러한 안보를 바탕으로 산업화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는 대소(對蘇) 봉쇄전략 수행 차원에서 중요한 나라였다. 좁고 길다란 한반도의 허리 부분은 불과 155마일밖에 되지 않는다. 한반도는 소련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던 동북아시아의 거대한 대륙세력이 해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할 ‘긴 통로’로 인식됐다. 따라서 이 지역을 방어하는 것은 소련의 위협으로부터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 유럽의 광대한 경계선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가졌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세계전략 차원에서 한반도의 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겠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따라서 냉전기간 동안의 한미동맹은 공동의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 효과적 장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한미동맹은 새로운 전략환경을 맞이했다. 위협의 규모와 성격도 변했고 주변국과의 관계도 변했다. 한국과 미국의 국내적 상황도 변하고 있다. 소련이 해체되자 남북한 대결은 더 이상 세계적인 냉전의 일부로 다뤄질 필요가 없어졌다. 한·러, 한·중 관계가 개선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남한에서의 반미시위 횟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부분적이라도 남북한간에 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그 상황 속에서 북한이 끈질기게 대남 정치·심리전 공세를 계속하며 한미동맹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이 틈을 타서 북한이 유도탄을 개발, 실전 배치하고 핵을 개발해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남북관계는 냉전의 틀 안에 갇혀 있었다. 변화의 폭은 제한되어 있었고 변화의 속도는 느렸다. 따라서 현상 유지라고 하는 안정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 그 안정은 역사학자 존 가디스(John Gaddis)가 ‘긴 평화(Long Peace)’라고 표현한 냉전 틀 속에서의 평화였다.

    그런데 남북관계는 긴 평화의 틀을 벗어나 변화의 시대를 맞고 있다. 변화의 폭은 넓어졌고 변화의 속도는 빨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동북아 전체의 안전과 안정에 영향을 주게 된다. 중요한 것은 변화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관리하는 것이다. 안보 차원에서 변화를 관리하는 것은, 변화의 전 과정을 통해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한국이 전환기에 안전을 보장받으려면 스스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든지 아니면 제3국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 동맹을 맺어서 안전을 보장하려면 앞서 지적했듯 동맹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부담도 감내해야 한다. 그것이 때로는 행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경우를 낳을 수도 있다. 특히 남북한 협상과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대치하고 있는 두 나라가 독자적인 군사력만으로 안전을 보장받으려 할 경우 군비경쟁을 불러올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군비경쟁이 일어나면 작은 분쟁이 확대돼 전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한반도처럼 동족간의 내전적 대립이 강한 지역에서는 감정적 요소가 개입할 가능성이 커 더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전환기의 안전을 보장받는 최선의 방안은 신뢰할 만한 동맹체제를 유지해 최대한 행동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다.

    동맹 대상을 골라보면 미국 이외에는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냉전 이후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됐다는 점에서도 한미동맹은 큰 가치를 지닌다. 지난 반세기 동안 동맹국으로서 쌓아온 신뢰라는 유산을 갖고 있는 것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라는 것도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지역국가 중 어느 하나를 택해 동맹을 맺는 것은 상당한 역작용을 불러일으킨다. 그로 인해 남북관계가 지역분쟁의 틀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불행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현재로선 한미동맹이 최선의 방책이 될 수밖에 없다.

    유일한 동맹 대상은 미국

    미국에게도 냉전 이후 한반도에서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이익이 된다. 냉전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핵 대결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질서를 관리해온 동반자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련이 해체된 후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게 되면서 세계평화와 질서를 혼자 떠맡게 됐다.

    미국에게도 동북아시아의 중요성은 점증하고 있다. 경제대국 일본뿐만 아니라 NICs(Newly Industrializing Countries·신흥산업국)와 중국의 부상은 이 지역의 중요성을 더해주고 있다. 미국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적대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동시에 이 지역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가 자리잡는 것이 미국에게도 이익이 된다. 이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중요한 동반자가 된다.

    한반도의 안정은 지역안정과 직결되고, 지역안정은 일본과 중국에게도 이익이다. 이 지역에서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지역 국가들간에 아물지 않은 역사적 상처를 봉합하고 화해와 협력의 문화를 키워가기 위한 환경을 제공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면 모든 지역국가들이 직간접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되며, 그것은 누구의 이익과도 일치하지 않는 불행한 사태로 발전하게 된다.

    신 세계질서 속에서 미국이 필요로 하는 한반도의 안정과, 전환기에 한국이 필요로 하는 안전은 관심의 범위만 다를 뿐 내용은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팽창을 더 이상 저지할 필요가 없는 미국에게 남북 관계는 세계 질서상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문제이자 남북한 문제로 인식될 것이다. 이렇게 위상 변화가 있었지만 미국의 처지에서 지역안전은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에 21세기에도 한미동맹은 존속해야 한다.

    그런데 전환기의 한미동맹이 내적·외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 첫째는 북한의 핵 개발이다. 과거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대규모 화포와 전차부대가 실체였다. 서울이 휴전선 바로 앞에 있기 때문에 서부 축선상에 배치된 북한 기동부대는 매우 위협적이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판단해보면 그 위협의 범위는 한반도에 국한된 것이었다. 설사 북한이 도발한다 해도 전진속도가 제한되어 있다는 한계도 있었다. 냉전 기간 북한이 화포와 전차의 수를 계속 늘렸음에도 전쟁을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은, 유사시 증원세력이 신속히 투입되도록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갖춘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한반도의 어떤 도시든 초토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거 재래식 기동부대들이 휴전선을 넘어 내려오는 차원의 위협이 아니다. 전방부대들이 북한의 기동부대를 저지하여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에 증원부대를 불러오는 방법으로 억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전쟁은 상대방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이다. 핵을 가진 자와 핵을 가지지 않은 자 간 전쟁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때 핵이 없는 한국은 핵을 갖든지, 아니면 동맹국의 핵우산 아래에라도 들어가야 세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고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세력균형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핵무장한 쌍방이 대결하는 상황은 불안한 긴장의 연속이 된다. 좋은 예가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다. 그래서 과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핵개발을 거의 완료했지만 서로 합의해 핵시설을 폐기하고 비핵화를 이룩했다. 북한의 핵무장을 막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한이 핵을 갖더라도 그것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지 동족간에 사용하려는 것이 아니다’는 주장은 논리에도 맞지 않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북한 핵은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문제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을 뿐 아니라 필요시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뤄나갈 틀은 지역구도가 적절하다고 본다.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는 지역 차원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게 북한의 핵은 국가의 생존과 직결된다. 그러나 그 해법은 응징하는 것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 설득과 협상, 응징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양국은 역할은 분담하되 대응은 공동으로 추진함이 바람직하다.

    둘째, 북한의 대남 무력통일 전략이다. 한미동맹은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경제적으로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무력적화 노선을 포기했다는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남북 상황을 비교하는 것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결과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 남한이 경제개발에 자원을 집중하는 동안 북한은 군사력 건설에 몰두했고, 그 결과 남한은 경제력에서, 북한은 군사력에서 우위를 확보했다.

    북한 지도자들은 이러한 결과를 보면서도 진로를 수정하지 않고 있다. 경제 개혁을 시도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자산은 군이 사용하고 있다. 생필품을 배급하지 못하는 형편인데도 전략무기 개발에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대미 협상에서도 우선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체제보장과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더 비중 있게 꺼내들고 있다.

    남북 문제는 같은 민족간에 일어난 내전 때문에 발생했다. 동족간의 내전은 때로는 협상하고 합작하고 협력하지만, 그 기저에는 민심을 수람(收攬)하기 위해 경쟁하는 정치·심리전이 깔려 있다. 그리고 종국에는 무력에 의해 승부를 결정하는 특징도 지녔다.

    伐謀 伐交 伐兵 攻城을 막아라

    손자(孫子)가 가르쳐준 내전 전략은, 먼저 벌모(伐謀·상대의 전쟁의지를 꺾음)하고, 이어 벌교(伐交·상대가 맺고 있는 친교 관계를 끊음)하고, 이어 벌병(伐兵·상대의 군대를 공격)하며, 공성(攻城·상대국의 수도를 장악)하는 것이다. 북한이 끈질기게 정치·심리전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군사적 공격에 앞서서 상대방의 전쟁의지를 끊고 상대방의 동맹을 공략해 전략적 고립상태에서 스스로 무너지게끔 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벌병(伐兵)하려는 공세는 한미동맹으로 막아낼 수 있지만, 벌모(伐謀)와 벌교(伐交) 공세는 한국정부가 막아내야 한다. 벌모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안은 국가의 도(道)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부와 국민이 한마음으로 외부의 침략에 대응하려는 의지를 결집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적 도(道)가 흔들리면 벌모의 공격은 상당한 효과를 가져온다.

    벌교 공세는 반미정서를 유발해 동맹을 약화시키거나 와해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북한이 주기적으로 무장공비를 침투시켰던 냉전시대에는 동맹과 적의 구분이 쉽고 명확했다. 그러나 전환기에는 정치·심리적 차원의 공세를 병행하기 때문에 적과 친구를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이것이 확대되면 전형적인 내전이 된다. 내전을 승리로 이끌어가려면 우리 스스로가 벌모·벌교와의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한미동맹이 안전할 수 있다.

    셋째, 최근 주한미군의 규모와 배치를 조정하는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한강 이북에 배치된 미군 전투부대를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하고, 지상군을 축소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군사 기술이 발달해 군사력을 보다 신속하게 분쟁지역으로 전개할 수 있는 능력이 확보됐고, 규모는 작아도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구비됐기 때문에 나왔다고 한다.

    전술적인 관점에서만 본다면 기계화된 미 지상군 부대(2사단)를 휴전선에 근접 배치해두면 기습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종심(縱深)에 예비로 두었다가 결정적인 상황에 투입하겠다는 것이 합리적인 발상이다. 그러나 이 부대가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정부의 의지를 과시하는 상징적 역할을 해왔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후방으로의 재배치는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하다.

    국가의 道

    남북 대결이 내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심리적 요소는 전술적 요소보다 훨씬 더 중요한 요소로 다뤄져야 한다. 전투부대의 재배치가 한미동맹을 약화하거나 동맹 쌍방을 심리적으로 이완(弛緩)하는 결과를 갖고 온다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愚)가 아닐 수 없다. 전환기 한미동맹은 한반도의 안전을 마지막까지 지켜나가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그리고 통일 이후에는 지역안정을 지켜나가는 더 높은 차원의 동맹을 위한 기초가 돼야 한다.

    안보는 국가의 존립과 패망을 가름하는 중대사다. 안보 전략은 ‘한번 해보고 안 되면 바꾼다’는 실험적 방법을 적용할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손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고 충고한 바 있다. 한 나라의 안전을 지키는 수단은 자신의 군사력과 동맹에서 나온다. 지도자와 국민이 일심동체로 적대 세력에 대항해 국가를 지키려는 의지, 즉 도(道)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전환기에 나라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냉전시대에 안전을 추구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북한의 미사일이 더 높게 더 멀리 날아다니는 것은 ‘보이는 위협’인데, 그보다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 더 심각하다.

    북한의 정치·심리전 메시지가 개방사회의 정보망을 타고 구석구석 침투해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안보의 기반인 도(道)가 흔들리고 있다. 안보의 수단인 동맹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국가의 도(道)를 바로 세우고 동맹을 강화할 때이다. 동맹을 위해 투자하지 않으면서 동맹의 열매를 얻겠다는 발상은 의존심이다. 동맹을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는 동맹을 보호해주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으로서 서로를 보호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전환기 한국의 안전을 지킬 수 있고, 동북아의 안정과 미국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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