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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반도, 해법은 없는가

다자주의 안보틀은 비현실적

  • 글: 이정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cmlee@yonsei.ac.kr

다자주의 안보틀은 비현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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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와 (아버지)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독일 통일의 공동주연이었다면, 공동조연은 최장수 독일 외무장관을 지낸 겐셔와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동의가 없었다면 독일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독의 콜과 겐셔 그리고 미국의 부시와 베이커라는 투 톱이 없었다면 독일 통일은 결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1980년대 말부터 급속도로 진행된 옛 소련과 동구권의 정치적 변화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으며 공산권 체제붕괴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1년 후 동서독을 포함한 주변 4강인 미국·소련·영국·프랑스를 축으로 한 이른바 ‘2+4 회담’을 계기로 동서독 기본협정이 체결되면서 동서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결국 서독과 미국의 합동 대전략(Joint Grand Strategy)으로 전후 유럽질서는 근본적으로 재편되었다. 통일 독일을 가능케 했던 원천적인 힘은 바로 빈틈없는 미독 공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 총리의 냉철하고 철두철미한 외교정책 특히 대미 정책이 큰 기여를 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표출된 동서독 양 지역의 국민정서(national sentiment)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통일을 위한 냉철한 로드맵(road map)을 설정한 점이 바로 통일의 지름길이었다.

1989∼90년 유럽에서 외교·안보 쟁점은 통일독일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잔류 여부였다. 소련은 이를 지속적으로 반대해왔다. 미국의 핵심적인 우방국인 영국과 프랑스도 내면적으로 독일의 조기 통일을 반대했다.



이와 같은 반대에 봉착한 콜 총리와 부시 대통령은 ‘2+4 회담’의 틀을 유지하면서 실질적으로는 ‘1+1 회담’, 즉 서독과 미국이 공통적인 외교전선을 구축해 소련·영국·프랑스를 설득하고 동시에 이 국가들의 반대를 초월하는 외교능력을 발휘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 및 개방 정책이 독일 통일 과정을 촉진시킨 중요 변수였다면 독일통일을 전폭적으로 지지한 빈틈없는 미독공조는 핵심변수였다.

동독은 소련과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최전선이었던 만큼 그 전략적 가치는 절대적이었다. 동독에 주둔한 소련군(Group of Soviet Forces Germany)은 동독군의 두 배인 38만명이었다. 소련군은 20개 사단, 6000여 대의 탱크, 1500여 대의 전투기(이중 80%는 전술핵무기를 투하할 수 있는 능력 보유), 특수부대(Spetznaz) 등을 동독에 주둔시키고 있었다.

통일독일 NATO 잔류 배경

1990년 2월10일 이러한 상황 속에 콜·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에서 만났다. 그리고 콜 총리는 “저는 오늘 모든 독일 국민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저는 독일 국민들이 함께 한 국가에 생활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독일 국민 스스로 결정할 권한이 있다고 합의했습니다. 오늘은 독일을 위한 참으로 위대한 날입니다”라고 천명했다.

소련이 통일독일의 NATO 잔류를 받아들인 진짜 이유는 미국의 확고한 입장 표명 때문이었다. 1990년 6월8일 개최된 미독 정상회담에서 콜 총리는 “통일된 독일의 NATO 잔류문제에 관한 한 부시 대통령과 저의 견해는 완전히 일치한다”고 밝혔다. 부시 역시 “우리는 독일과 함께 통일독일의 완전한 NATO잔류를 지지하며 이 점에 대해 한치의 흔들림이 없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이 소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누차 강조한 결과, 고르바초프는 통일독일의 NATO 잔류를 승인했을 뿐 아니라 동독 주둔 소련군을 완전 철수시켰고 주독미군의 구 동독 지역 파병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독일의 통일과정과 한반도 통일과정은 다른 궤도에서 관찰할 수밖에 없다. 역사적·정치적·군사적 그리고 경제적 배경의 차이점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남북통일이 어느 시점에 그리고 어떠한 과정을 거쳐 실현될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한국의 외교전략은 한반도 통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한반도의 통일과정에서 분출될 다양한 정치·외교·군사·국제법·경제·사회적 문제점을 감안하면 대한민국의 외교능력은 독일 통일 과정에서 발휘된 서독의 외교능력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의 안보합의(security consensus)는 지난 5년 간 매우 놀라운 속도로 변화했다. 특히 북한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상당부분 희석됐다.

안보합의를 둘러싼 남남갈등은 새 정부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때문에 우리외교의 총괄적인 역량, 국가안보 전략과 비전, 전략정보 능력, 한미공조의 미래, 대주변국 외교, 그리고 남북관계의 향방 등을 감안하면 다가오는 한반도의 구조적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한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또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통일을 원만히 실현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서독은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미독공조로 극복했다. 미국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계기로 탈냉전적 완충지대를 설정했다고 보았을 때 서독 통일외교의 핵은 다름아닌 대미외교였다고 확신할 수 있다. 서독이 보여준 외교와 통일의 역학관계는 이미 통일과정에 진입해 있는 한국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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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cmle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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