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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지상주의와 인기몰이 정치논리가 문제

새만금사업·청계천 복원 논쟁의 허실

  • 글: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환경학 박사 wukhee@yahoo.com

환경지상주의와 인기몰이 정치논리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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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가 새만금 사업의 모태인 전북 해안지구 간척사업을 처음 구상했던 것은 1970년대라고 한다. 이후 한참 동안 농림부 관계자의 책상 서랍 속에 묻혀 있던 이 계획은 1987년에 이르러 ‘서해안 개발사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는 물론 정치적 고려가 숨어 있다.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민정당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후계자로 노태우 대표를 확정하고 사실상 선거운동에 돌입하던 시점이었던 것이다. 민정당은 야당의 텃밭이던 전북에서 표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새만금 사업은 노태우 후보의 선거공약으로 새롭게 포장되었다.

하지만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참동안 새만금 사업은 계획에만 머물러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업 규모가 방대해 정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하기에는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미루어진 사업이 1991년 마침내 착공할 수 있게 된 데는 정권의 경쟁 상대였던 평민당 김대중 총재의 집요한 권고가 있었던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듬해 대선을 눈앞에 두고 전북도민의 민심잡기에 여념이 없었던 여야 모두에게 새만금 사업은 꼭 추진해야 할 사업이었을 것이다.

아직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던 10년 전에 새만금 사업이 정치적 타협으로 졸속 착수되었다는 사실을 이제 와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상황과 시대가 변한 2002년에, 그것도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그와 똑같은 일이 재발한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제 청계천 복원사업의 추진 과정을 잠시 들여다보기로 하자.

“서울시민 표를 잡아라”

청계천 복원이 처음 구상된 것은 1997년 10월 연세대학교 노수홍 교수와 원로문인 박경리 선생과의 대화에서였다고 한다. 이후 노교수는 ‘청계천살리기연구회’라는 모임을 결성해 2000년 9월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토지문화원과 공동으로 ‘제1차 청계천되살리기 심포지엄’을 갖는다. 그리고 이듬해 4월에는 연세대학교, 2002년 3월에는 이명박씨가 주도한 ‘아태환경NGO한국본부’와 공동으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어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5월17일에도 토지문화관과 청계천살리기연구회 공동주최로 원주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학자들의 청계천 복원 논의는 그야말로 아이디어에 불과했다. 계속되는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자들은 한정돼 있었고 그 내용 또한 재탕, 삼탕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처럼 청계천 복원론자들의 구상이 허술했던 까닭에 환경관련 학계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했다.

청계천 복원이 본격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02년 지방선거 때문이었다. 서울시장선거 출사표를 던졌던 이명박씨는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선거공약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청계천 복원사업을 선거공약 제1호로 삼는 기민함을 보였다. 환경단체들이 청계천 복원에 공개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던 것 또한 이후보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시에 입성한 이명박씨는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지난해 7월 청계천복원추진본부를 설립해서 본격적인 계획수립을 독려했다. 강력한 추진력에 힘입어 청계천복원추진본부 구성 이후 불과 7개월 만인 2003년 2월11일 청계천복원 기본계획이 발표됐다. 수도 서울의 면모를 뒤바꿔버릴 엄청난 도시계획사업 기본안은 이렇게 졸속으로 확정됐다. 사업 추진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는 새만금 사업 추진 당시보다 훨씬 더 졸속이라 말할 수 있다. 도대체 이명박 시장은 왜 그처럼 무리하게 서두르는 것일까?

초대형 토목사업에는 으레 많은 관련자들이 있고, 수많은 이권과 혜택이 난무하게 마련이다. 두 사업은 이처럼 잠재적 이익과 이권이 걸려 있는 대규모 건설사업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각각 선거를 앞두고 본격 구상된 두 사업에서 관련 주요 인사들이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새만금 사업은 20년 이상 걸리는 초장기 건설 사업이었고 특히 초기 10년 동안 공사는 오직 방조제 축조에만 국한됐다. 따라서 이 사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이권이래봐야 고작 지역주민에게 지급되는 토지 및 갯벌보상금이나 어업보상금이 고작이었다(물론 공사주체인 농업기반공사는 장기 일감을 확보한다는 이익을 누렸겠지만). 이렇게 본다면 지역민의 표를 얻는 데 성공한 여야 정치인 이외에 별다른 혜택을 취한 사람은 없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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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환경학 박사 wukhe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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