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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군단의 ‘담임선생님’ 이백천의 음악인생 中

스타들의 스무살…혹은 살아남고 혹은 사라지고

  • 글: 이백천

스타들의 스무살…혹은 살아남고 혹은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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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쎄시봉 시절로 이야기를 옮겨도 될 것 같다.

1964년 4월 중순의 어느 날 오후. 나는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쎄시봉에 들어섰다. KBS 라디오의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 ‘선데이 리퀘스트’에 사용할 음반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구성대본을 맡았는데 레코드실에 내가 원하는 음반이 거의 없었다. 팝송 레코드가 어느 정도 있기는 했지만 오래된 것들이었고 최신곡은 찾을 수가 없었다. 예산 부족으로 그 많은 신곡들을 때맞춰 구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프로그램의 담당 프로듀서도 없이 외부의 객인 나 혼자 라디오의 한 시간을 책임져야 했던 까닭이 있었다. 새 민방 TV(동양방송)가 곧 발족하는데 마침 대학 동기 김규가 그 프로젝트의 중심 인물이었다. 내가 그에게 쇼파트에 내가 있어야하지 않겠느냐고 자청했더니 그는, 방송 일은 처음이니 TV로 직행하기보다 우선 라디오를 경험해 보는 편이 좋겠다며 구성작가 자리를 잡아놓은 것이었다.

쎄시봉의 주인 ‘이선생님’을 만났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이 이선생은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승낙하셨다. 원하던 일을 쉽게 해결하고 커피를 마시며 실내를 둘러봤다. 플로어에 약 150석, 계단 몇 개를 올라가는 반층 위에 80석이 더 있었다. 위층의 안쪽에는 레코드가 빽빽이 들어찬 DJ 박스가 있었다. 실내 네 귀퉁이에 높이 걸린 네 개의 스피커에서는 부드럽고도 힘찬 사운드가 울려나왔다. 알 마티노의 ‘아이 러브 유 모어 앤 모어 에브리데이’, 짐 리브스의 ‘아디오스 아미고’, 최희준의 ‘맨발의 청춘’, 폴 앤 폴라의 ‘영 러버스’….

찾아간 시간이 오후 두 시쯤이었다. 음악은 싱싱했지만 감상실 안의 풍경은 좀 달랐다. 소곤거리는 친구들, 허공을 쳐다보는 친구, 책 보는 친구 옆에서 도시락을 먹는 손님도 있었다. 머리를 붙이고 나란히 앉아 있는 남녀, 테이블을 옮겨다니는 친구…. 음악은 실내에 가득 차 흐르는데 정작 그 음악을 듣는 쪽은 홍수가 할퀴고 지나간 뒷자리처럼 황량했다. 대개가 스무 살 문턱에 막 올라선 젊은이들. 음악이 좋아 찾아온 학생이 태반이었지만 건달기가 묻어 있는 손님도 적지 않아 보였다. 주인에게 “누군가가 음악 해설도 하고, 영어 가사 풀이도 해주면서 친구처럼 어울려주면 좋지 않겠습니까?” 했더니 “그렇게 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신다. “찾으면 있겠죠”라는 나의 대답에 “얘기 꺼낸 사람이 하시죠, 그게 좋지 않겠어요”라고 이선생이 말했다.

다음 수요일 오후 다섯시. ‘데이트 위드 쁘띠 리’의 예정시간이 되었다. ‘데이트’는 영어, ‘쁘띠’는 불어. 굳이 우리말로 바꾼다면 ‘작은 이가(李)와의 만남’이었다. 일주일 동안 나름대로 광고도 하고, 입구에 포스터도 붙이고 했더니 쎄시봉은 제법 학생들로 가득했다. 그 날 내가 준비한 곡은 루이 암스트롱, 냇 킹 콜, 마할리아 잭슨, 빌리 할리데이, 튜크 엘링턴 악단, 그리고 흑인영가였다. 중앙계단 위쪽, 실내 어디서든 보이는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 한 곡씩 진행을 하고 있었다. 아래 플로어 정면의 젊은 친구 네댓 명이 우루루 일어나 출구 쪽으로 가면서 그 중 하나가 나직이 내뱉었다.



“개새끼, 지랄하네.”

그러자 잇달아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일어섰고 내 쪽을 흘겨본 뒤 나가버렸다.

쎄시봉, 청춘과 낭만의 절정

털퍼덕 계단에 주저앉았다. 일부가 빠져나간 쎄시봉에는 침묵만 남았다. 모두의 시선이 굳었고 그 속에서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만하자 결심하고 남은 손님들에게 사과했다. 아직 내가 수양이 모자라 여러분들을 불편하게 했다고, 기왕 준비한 음악이니 듣자고 하며 허둥지둥 맺음을 했다. 그렇게 끝내는 시점까지 남아준 손님은 절반 정도.

주인과 마주앉았다. 얼굴이 벌개져 죄송하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포스터도 바로 뜯어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선생은 생각이 달랐다. “여기가 바로 종로구 우범지대 일번지고, 그리고 중간에 나간 사람도 많지만 그대로 끝까지 남아 들어주었던 학생들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냥 계속하자는 것이었다. 선생의 부인과 아드님(후에 TBC TV PD가 된 이선권)까지 계속해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쎄시봉 주인 일가의 의견에 선뜻 응할 마음이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가며 혼자서 자문자답을 해봤다. 내 작은 지식 자랑하려고 그들 앞에 선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딘가 지쳐 보이는 그들과 동무하고 싶어서 나서지 않았는가. 다음주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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