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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조선사회 뒷마당

도살면허 독점한 치외법권지대 있었다

‘서울의 게토’ 반촌(泮村)

  • 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도살면허 독점한 치외법권지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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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인용문에 나와 있듯, 조선 정부에서는 법령을 정해 금지할 정도로 강력한 도살 억제 정책을 추진했다. 조선 초기 법전인 ‘경제육전(經濟六典)’에 이런 구절이 있다.

“먹는 것은 백성의 근본이 되고, 곡식은 소의 힘으로 나오므로, 본조(本朝)에서는 금살도감(禁殺都監)을 설치하였고, 중국에서는 쇠고기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령이 있으니, 이는 농사를 중히 여기고 민생을 후하게 하려는 것이다.”(‘세종실록’ 7년 2월4일).

즉 금살도감이란 관청을 설치하면서까지 소의 도살을 막았고 실천도 강력했다. 1411년(태종 11년)에 소의 도살을 전문으로 하는 신백정(新白丁)을 도성 90리 밖으로 내쫓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고기를 밝히는 인간의 욕망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세종 7년에는 신백정이 도성으로 되돌아와 도살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한성부에서는 이들을 바닷가로 축출하고, 밀도살된 쇠고기를 사먹는 자는 제서유위율(制書有違)로 다스릴 것을 논단하라고 요청하고 있다(‘세종실록’ 7년 2월4일).

이런 법과 행정조치에도 불구하고, 소의 도살과 쇠고기의 식용이 멈춘 적은 없었다. 성종 4년 7월30일 부제학 이극기의 상소문의 일부를 보자.

“소의 도살을 금지하는 법령이 분명히 있지만, 그러나 서울 성내의 대소인(大小人)의 집에서 아침저녁의 봉양(奉養)이나 빈객(賓客)을 연향(宴享)할 때에 대개 금지한 쇠고기를 쓰고, 관가(官家)에서 공급하는 것도 또한 간혹 쓰니, 이러한 고기들이 어찌 모두 저절로 죽은 것들이겠습니까? 이러한 일들이 나날이 반복되어 그치는 때가 있지 아니하니 정히 사방의 농민들의 가축이 점차 없어질까 두렵습니다.”



쇠고기 식용 금지는 결코 지켜질 수 없는 법이었던 것이다. 이후 쇠고기의 식용을 두고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처벌도 강화되어 ‘정당한 이유 없이’ 소를 잡은 사람은 전가사변(全家徙邊)이란 극형에까지 처했으나(‘연산’ 11년 4월20일), 고기를 밝히는 인간의 욕망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쇠고기에 관련된 적지 않은 정보를 갖고 있으나, 그것을 여기서 낱낱이 주워섬길 수는 없다. 다만 법은 존재하되 지켜지지 않았고 단속은 때로 강화되었다가 이내 느슨해지는 식의 반복을 거듭했을 뿐이다. 그 이유는 쇠고기를 소비하는 주 계층이 다름아닌 조선의 지배계급인 사대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뜬금없이 쇠고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쇠고기를 먹으려면, 소를 도살하는 사람과 유통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 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소의 도살이라 하면 곧 백정을 떠올리고, 또 백정 하면 홍명희가 창조한 양주(楊州) 백정 임꺽정을 떠올릴 것이다. 뭔가 좀더 아는 사람이라면, 백정에게 가해진 사회적 차별과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형평사(衡平社) 운동을 떠올릴 것이다. 이것 또한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정작 내가 궁금해하는 것은 그런 사회학적 문제가 아니라 쇠고기의 생산과 유통, 곧 누가 언제 어떤 필요에 의해 소를 도살하고, 어떤 유통망을 통해 어떤 가격으로 판매하였는가, 또 어떻게 쇠고기를 소비(요리)했는가 하는 문제다. 일종의 생활사적 문제인 것이다.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서울 쪽이다. 서울은 조선 제일의 도시고, 인구가 가장 밀집한 곳이니 쇠고기의 최대 소비처였던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서울의 소는 누가 도살하고, 어떤 방식으로 유통되었을까? 이것이 이 글이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백정이 그것을 담당했던가?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백정은 조선 전기에 서울 시내에서 축출되었다. 그렇다면 백정이 아닌 어떤 계층이 소의 도살과 쇠고기의 유통에 관여했던가? 이제 이 이야기를 해보자. 조선 전기는 자세한 사정이 나와 있지 않으니,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임진왜란 뒤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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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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