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진급·보직·파워… 호남군맥 대약진

군 내부자료로 본 ‘국민의 정부’ 군인사 난맥상

  • 글: 조성식 mairso2@donga.com

    입력2003-03-25 1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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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 공개, 99년 육사 35기 진정서에 담긴 비밀
    • 99년 육사 35기 대령 진급률 : 호남 50%, 영남 20%
    • 99년 육사 35기 작전 특기 대령 진급률 : 호남 80%, 영남 14%
    • 국방부·육군본부의 인사 부서 요직 장악
    • 육사 30기 준장 진급 : 호남 28명 중 17명, 영남 50명 중 11명, 기타지역 63명 중 20명
    • 육사 27기 중장 진급 : 호남 6명 중 5명, 영남 8명 중 3명, 기타지역 6명 중 1명
    • 육본 인사관리과장 5명 중 호남 출신 3명만 장군 진급
    • 기무·헌병·감사 3대 군 사정기관 독식
    • 인사 부서 고위직 역임한 호남 출신 K장군의 활약
    진급·보직·파워… 호남군맥 대약진
    군 소식통에 따르면 3월 중순 현재 군에서는 인사비리에 대한 내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다. 1차 대상은 해병대인데, 수사 결과에 따라 다른 군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이 소식통의 분석이다.

    군 사정에 밝은 정치권의 한 관계자도 이 사실을 확인해줬다. 만약 인사비리 수사가 전 군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된다면 ‘국민의 정부’의 군 인사 실정(失政)이 일부나마 드러나리라는 것이 이 관계자의 추측이다.

    어느 조직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인사는 만사의 근원이다. 합리적 기준이 없는 정실 인사는 지탄을 받고 조직원의 사기를 떨어뜨리게 마련이다. 지난 5년 동안 우리 군 주변엔 과거 영남 정권에서 엿볼 수 있었던, 그러나 그 강도가 훨씬 심해진 지역편중 인사의 망령이 배회했다.

    1999년 11월 국회 국방위 소속 허대범 한나라당 의원에게 한 통의 진정서가 날아들었다. 이 진정서는 육사 35기인 모 영관장교가 진급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작성한 것이었다. 11월5일 허대범 의원은 국회 국방위에서 이 진정서를 꺼내 들고 읽어내려갔다. 첫머리는 이랬다.

    “금년도 진급심사는 한마디로 호남 출신과 그들에 빌붙어 진급한 장교, 일부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는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폭거임.”



    상임위장은 곧 아수라장이 됐다. 여당인 국민회의 의원들은 “근거도 없는 괴문서로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며 허의원의 발언을 제지하는 한편 속기록 삭제를 요청했다. 여야 의원들간 말싸움이 이어졌고 결국 정회가 선포됐다.

    비록 정치공방으로 유야무야되긴 했지만, 이 사건은 ‘국민의 정부’의 군 인사 난맥상, 특히 지역편중 인사 시비의 실상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당시 이 진정서 내용은 국회 국방위는 물론 국방부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올랐으나 국방부의 ‘노력’으로 곧 자취를 감췄다.

    지역편중 인사는 ‘국민의 정부’의 큰 오점으로 꼽힌다. 불균형과 차별을 바로잡는다는 취지에서 역대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당하고 피해를 입었던 호남 출신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한 것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것이 바로잡기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특혜와 차별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단계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국정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이른바 4대 권력기관의 지역편중 인사 실태는 그간 언론보도로 어느 정도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가장 지역편중이 심하다고 알려진 군 인사 실태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다.

    이는 물론 언론의 접근을 차단하는 군의 배타성과 보안성, 은폐성 때문이다. 철저한 상명하복을 바탕으로 한 군 특유의 위압적인 분위기 탓에 다른 조직에서는 종종 나타나는 내부 고발자가 드문 것도 한 이유다. 또 문제가 있어도 단합과 결속을 빌미로 쉬쉬하고 덮는 풍토가 그 어느 조직보다 강하다는 점도 실태 파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군 인사의 문제점은 여러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다. 육사 출신에 대한 비(非)육사(갑종, 3사, 학군[ROTC]) 출신의 소외감, 육군의 요직 독식에 따른 해·공군의 불만, 육군 내 병과간 갈등, 특정 인맥이나 사조직에 대한 특혜, 지역편중 인사 등이 그것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지역편중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역대 정권에서는 몇몇 특정인을 중심으로 한 인맥이 문제가 됐었다. 이는 지역편중 현상이 그만큼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반증”이라며 “지역편중이 심화되면 인맥은 문제도 안 된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지역’이 ‘인맥’을 덮어버렸다”고 말했다.

    ‘신동아’는 ‘국민의 정부’ 군 인사 난맥상을 취재하는 과정에 여러 명의 현역 및 예비역 장교들로부터 지역편중 인사를 고발하는 충격적인 증언과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들을 확보했다. 군 수사기관과 군 정보기관, 정치권 관계자의 도움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소문으로만 돌던 군 인사의 지역편중 실태를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다. 대령과 장성 진급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치가 드러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증언과 자료에 따르면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국민의 정부’의 군 인사는 지역편중 의혹을 지울 수 없다. 아니, 명백하고도 노골적인 지역편중 인사였다. 특히 인사 관련 보직과 인사에 영향을 미치는 고위직, 그리고 이른바 힘있는 자리는 특정 지역 출신 인사들이 도맡아왔다. ‘국민의 정부’가 막을 내린 지금도 사정은 비슷하다. 주요 보직의 경우 임기가 2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의 정부’ 군 인사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것은 곧 현 정부의 군 인사 실태를 파악하고 그 시스템을 점검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고급 정보를 제공해준 군의 한 관계자는 “무모한 지역편중 인사로 군의 사기를 엉망으로 만든 지난 정부의 잘못을 새 정부가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는 충정에서 인터뷰에 응한다”고 말했다.

    물론 특정 지역 출신들이 진급과 보직에서 우세를 보였다는 사실 자체를 인사비리로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누가 보더라도 납득이 가지 않는, 도를 넘어선 지역편중 인사는 필연적으로 부적격 또는 불공정 인사 시비를 낳게 마련이다.

    군의 한 관계자는 “능력이 엇비슷한 경우 호남 출신을 진급시킨 것에 대해선 탓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누가 보더라도 자질과 능력이 의심스러운 사람을 단지 그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진급시키고 요직에 앉힌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역편중 인사는 구조적 문제”라며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진급·보직 라인이 대부분 호남 출신들로 채워진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지역편중 현상은 영관급 인사보다 장성급 인사와 요직 인사에서 더 두드러진다. 먼저 영관급 인사부터 살펴보자. 도대체 1999년 10월에 있었던 육사 35기 대령 진급심사가 어땠기에 현역 장교가 국회에 진정서까지 보내는 사태가 벌어졌을까. 취재과정에 접촉한 군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진정서 내용은 대체로 사실에 가깝다고 확인해줬다. 진정서 작성자의 주장은 대여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모집단 비율 계산해야

    첫째는 “호남 출신은 무조건 진급, 기타 지역은 나눠주되 영남은 최대한 배제했다”는 주장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9년 대령 진급 대상자는 2700여 명이다. 이는 육사뿐만 아니라 3사, 학군 출신 등을 아우른 숫자다.

    그해 대령으로 진급한 사람은 140명이다. 그 중 호남 출신은 46명이고 영남 출신이 33명이다. 그밖에 수도권 33명, 충청권 17명, 기타 지역 11명이다. 이 수치로만 보면 호남 출신이 영남 출신보다 13명 더 진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모집단 크기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진급 대상자 중 호남 출신은 약 660명이었고 영남 출신은 900여 명이었다. 이 수치를 감안하면 호남 출신과 영남 출신의 진급률 격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역편중 통계를 낼 때 모집단의 크기는 매우 중요하다. 공식 발표를 보면 호남 몇 명, 영남 몇 명 하는 식으로 단순 수치만 공개되기 때문에 실상을 알기 어렵다. 군 관계자들은 “지역편중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집단의 크기, 즉 진급 대상자 수를 감안해 통계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둘째 주장은 “육사 35기의 호남 출신 장교는 90% 진급했다”는 것. 이 주장은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이지만 호남 출신들의 진급률이 돋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해 육사 35기 대령 진급 대상자는 모두 190여 명이었다. 이 수치는 2차 진급 대상자만을 계산한 것이다.

    장교 진급심사는 보통 3차에 걸쳐 이뤄진다. 1차 때는 대개 소수의 ‘우수한’ 장교들만 진급 혜택을 누린다. 육사 35기에 대한 대령 1차 진급심사는 1998년 10월에 있었다. 진정서에서 문제삼은 것은 1999년 10월에 있었던 2차 진급심사 결과다.

    2차 진급 대상자 190여 명 가운데 호남 출신은 35명이었는데, 그 중 16명이 진급, 50%에 가까운 진급률을 보였다. 반면 영남 출신은 대상자 63명 중 14명이 진급해 20%에 그쳤다. 그밖에 수도권에서는 44명 중 21명이, 충청 지역에서는 33명 중 5명이 대령 계급장을 달았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35기 대령 진급인사에서는 육사 졸업 성적이 1∼10위인 장교들 가운데 2명을 제외하고 모두 진급에서 미끄러졌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졸업 성적은 장교의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다. 성적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자질이 뛰어나다는 얘기”라며 “호남 출신이 많이 진급되는 과정에 타 지역 출신의 우수한 장교들이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개탄했다.

    다음으로 진정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육사 35기의 호남 출신 보병(병과) 작전 특기는 100% 진급했다”는 주장이다. 장교라면 누구나 병과와 특기를 갖는다. 육군 병과 중 인원이 가장 많은 병과가 보병이고 보병 병과 중에서 가장 흔한 특기가 바로 작전이다. 따라서 작전 특기 장교는 어느 부대에서든 주력인 셈이다.

    육사 35기 대령 진급 대상자 중 보병 병과로 작전 특기를 가진 장교는 52명이었는데 그 중 15명이 2차 진급에 성공했다. 호남 출신의 경우 대상자 6명 중 5명이 진급, 80%가 넘는 진급률을 보였다. 이에 비해 영남 출신은 대상자 21명 중 3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밖에 충청 출신은 13명 중 2명, 수도권 출신은 8명 중 5명이 진급했고, 기타 지역출신 4명은 아무도 진급하지 못했다.

    진정서에는 특정인을 겨냥한 대목도 있다. 모 병과의 L대령이다. L대령은 교통사고를 내 약식 기소된 전력이 있다. 뒷날 사면되긴 했지만 벌금형을 받았다. 이에 대해 진정서 작성자는 “호남 출신은 교통사고로 (사람을) 치어 죽여도 진급되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진정서에는 또 특정 고교 출신들의 높은 승진율을 비난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광주 S고교 출신은 무조건 100% 진급”이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그다지 틀린 얘기는 아니다. 육사 33·34·35기 중 이 고등학교 출신은 모두 6명인데, 그 중 3명이 진급했다. 35기만 놓고 본다면 대상자 3명 중 2명이 진급했다.

    S고를 문제삼은 것은 당시 육군본부(이하 육본) 인사운영차장이 바로 이 학교 출신인 K장군(당시 준장, 육사 29기, 현재 사단장)이었기 때문이다. 인사운영차장은 군에서 진급 못지않게 중요한 보직을 관리하는 자리다. 그런데 K장군이 인사운영차장을 맡고 있을 때는 인사운영실에서 진급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따라서 K장군의 동문인 S고 출신들의 진급률이 높은 것은 ‘오해’를 살 만했다. 그후 K장군은 인사운영차장에서 물러나 여단장으로 나갔다가 2001년 4월 사단장으로 진출했다.

    마지막으로 진정서 작성자는 “주요 보직자는 호남 일색이다. 전임자를 조기에 보직 교체했다”며 이렇게 외치고 있다.

    “참모총장은 총장 퇴임 후 자숙하라. K인사운영차장, K작전처장을 즉각 보직해임하고 군기문란죄로 처벌해야 한다. 장군인사실장, 통제계장, 진급계장은 즉각 물러나라.”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뒷날 국방장관에 오르는 호남 출신의 김동신(육사 21기, 광주일고) 대장이었다. 김동신씨는 진정서가 국회 국방위에서 공개되기 열흘쯤 전인 10월26일 합참의장 경쟁에서 밀려 총장직에서 사퇴한 상태였다. 육사 28기로 전북 N고 출신인 K작전처장은 그후 사단장으로 진출했는데, 재임중 여군장교 성추행사건에 휘말려 옷을 벗었다.

    세 사람을 포함해 진정서에 언급된 ‘주요 보직자들’의 출신지는 작성자의 주장대로 모두 호남이다. 먼저 장군인사실장은 말 그대로 장군 인사를 전담하는 자리다. 당시 장군인사실장은 전남 D고 출신인 N대령(육사 35기)이었다. 그는 1998년 1차 진급심사 때 대령으로 진급했다.

    인사운영실장의 지휘를 받는 통제계장은 모든 장교들의 보직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는 요직이다. 당시 통제계장은 역시 육사 35기인 광주 출신의 P중령이었다.

    진급계장은 말 그대로 진급을 다루는 실무장교다. 인사참모부에서 진급 업무를 관장하는 부서는 인사관리처(처장은 준장급) 소속 진급과(과장은 대령급)이고 그 실무 부서가 진급계다. 진급계장은 진급 대상자들의 인사자료를 만들어 진급심사위원회에 제출하는 요직이다.

    당시 이 자리엔 육사 37기로 전북 H고 출신인 M중령이 앉아 있었다. M중령은 이듬해 6월 육본 고등검찰부에 의해 진급과 관련한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돼 옷을 벗는다. ‘국민의 정부’에서 겉으로 드러난 유일한 군 진급비리 사건인 이 사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다루기로 한다.

    진정서에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도 호남 출신이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수석부관은 총장의 의중이나 지시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인사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 진정서 사건이 났을 때 수석부관은 육사 34기, 전남, C고 출신인 S대령이었다.

    육사 36기는 유독 졸업생이 많은 기수로 약 330명에 이른다. 200명 안팎이었던 육사 신입생 수가 대폭 늘어난 것은 30기부터. 36기 대령 진급 대상자는 약 250명이었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호남 출신은 65명으로 그 중 51명이 대령 진급에 성공했다. 반면 영남 출신은 100명 가량인데, 대령 진급자가 20명이 채 안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말 많은 장성 인사의 지역편중 실태를 살펴보자. 군 관계자는 “김영삼 정부 때는 상당수 장성이 영남 출신이었다. 호남 출신은 20%도 안 됐다”고 지적했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이것이 완전히 뒤집혔다.

    육사 30기는 ‘국민의 정부’ 첫 해인 1998년에 처음으로 장성(준장) 진급 대상에 올랐다. 그해 1차 진급자가 결정됐고 1999년에 2차, 2000년에 3차 진급자가 나왔다. 그 결과 모두 46명이 준장이 됐는데 그 중 호남은 14명, 영남은 13명, 그밖에 수도권 4명, 충청 11명, 기타 지역 4명이었다.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육사 30기 준장 진급 대상자 가운데 호남 출신은 28명으로 그 중 17명이 진급했다. 반면 영남 출신은 대상자 50명 가운데 별을 단 사람이 11명에 불과했다. 영·호남 진급자 수에서 앞의 자료와 근소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호남 출신’의 개념에 대한 해석 차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호남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과 호남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의 출신지를 어떻게 규정하는냐, 그리고 원적과 본적이 다른 경우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생긴 오차인 셈이다.

    1999년에 장성 진급 대상에 오른 육사 31기의 경우 역시 3차례에 걸쳐 48명이 별을 달았다. 그 중 호남 출신은 13명, 영남 출신은 15명이었다. 특히 1차 심사결과만 놓고 보면 전체 진급자 11명 중 호남 출신이 6명에 이르러 극심한 지역편중 현상을 보였다. 육사 32기는 2001년에 별을 달았다. 1차 심사 때 진급한 사람이 모두 18명인데 그 중 호남 출신이 9명, 영남 출신이 4명이다.

    소장급 분포를 보면 호남과 영남의 비율이 엇비슷함을 알 수 있다. 육사 30기의 경우 1, 2차 진급 심사를 통해 15명의 소장이 배출됐는데, 그 중 호남이 5명이고 영남이 4명이다. 29기 출신 소장은 모두 19명. 그 중 6명이 호남, 4명이 영남 출신이다. 영호남 출신이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8기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22명의 소장 가운데 7명이 호남권이고 6명이 영남권이다.

    군내 영호남 출신 인구 비율은 약 2대1이다. 따라서 호남과 영남의 진급자 수가 같다면, 인구비례를 감안하면, 호남이 약 2배 늘어난 셈이다. 호남 출신 진급자가 영남보다 2배 많다면, 실제로는 4배가 늘어난 셈이다.

    중장급은 소장급보다 호남의 비중이 돋보인다. 육사 28기에서는 1차 진급 결과 3명이 중장으로 진급했는데 출신지를 보면 2명이 호남이고 1명이 영남이다. 단 호남으로 분류된 2명 중 1명에 대해서는 출신지 논란이 있다. 본적은 호남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수도권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9명의 중장이 배출된 육사 27기의 경우에도 호남 출신의 진급률이 돋보인다. 진급 대상자 6명 중 5명이 진급한 것이다. 광주일고 출신이 3명, 광주고가 2명이다. 반면 영남 출신의 경우 대상자 8명 중 3명이 진급하는 데 그쳤고 기타 지역에서는 6명 중 1명만이 진급했을 뿐이다.

    육사 26기도 27기와 비슷하다. 10명이 중장으로 진급했는데, 호남 출신은 대상자 7명 중 5명이 진급했다. 영남은 7명 중 2명, 기타 지역 출신은 6명 중 3명이 진급했다. 25기의 경우 8명이 중장인데, 그 중 호남 출신이 4명, 영남이 1명이다.

    ‘호남 독식’ 의식한 끼워넣기(?)

    장관급 장교인 대장의 경우엔 지역 안배가 뚜렷하다. 육군에서 배출한 대장은 모두 6명인데 그 중 3명이 육사 25기 출신이다. 먼저 육해공군의 최고 지휘관인 이남신 합참의장은 육사 23기로 전북 익산, 전주고 출신이고 김판규 육군참모총장(육사 24기)은 경남 마산, 경남고 출신이다.

    김종환 1군사령관(육사 25기)은 강원 원주 출신으로 대성고를 졸업했다. 2군사령관은 충남 아산 출신으로 경복고를 나온 홍순호 대장. 학군 4기로 서울대 출신 첫 대장이다. 서종표 3군사령관은 김종환 1군사령관과 동기로 전남 여천, 서울공고 출신이다. 포병 병과로는 육사 출신 중 처음으로 대장에 올랐다. 서울, 배재고 출신인 남재준 한미연합사령관도 육사 25기.

    대령급과 장성급 진급 실태를 보면 전반적으로 호남 약진 현상이 뚜렷하다. ‘호남 독주’라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일부 계급의 경우 ‘영호남 쌍두체제’의 양상을 띠고 있다. 모집단 크기를 감안한 진급률은 호남이 크게 앞서지만 진급자 수만 비교하면 영남과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군 관계자는 “호남 독식이라는 비난을 의식해 집권 후반기로 가면서 ‘끼워 넣기’ 등으로 구색을 맞춘 흔적이 뚜렷하다”고 꼬집었다.

    “노통(노태우 대통령)과 YS 시절 군에서 영남의 비중은 40%였다. 노통 때는 영남 중에서도 경북 출신이 많았고 YS 때는 경남이 득세했다. 호남 출신의 진급률이 상대적으로 낮긴 했지만 지금처럼 지역편중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영남 출신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다. 영호남 인구비율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이 바뀐 후 진급인사에서 호남의 비중이 40% 이상으로 올라가자 영호남이 차지하는 비중이 80% 안팎에 이르렀다. 독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영남과 호남 출신의 진급자 수를 비슷하게 맞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타 지역 출신들은 과거 정권 때보다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그들은 ‘이 나라 군대엔 영호남밖에 없냐’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런데 영남은 영남대로 불만이다. 호남과 비중은 비슷하지만 핵심 보직은 호남 출신이 차지하고 영남 출신은 대체로 한직으로 돌기 때문이다.”

    진급 관련 부서 장악

    호남이 인사 관련 요직을 독식하고 있다는 주장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군 인사는 각군 본부 인사참모부에서 이뤄진다. 육군의 경우 진급인사를 총괄하는 부서는 인사참모부 예하 인사관리처인데, 실무는 진급과에서 맡고 있다. 그래서 인사관리처장은 진급처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육본 인사참모부장은 박흥렬 소장이다. 육사 28기인 박소장은 경남, 부산고 출신. 하지만 진급 실무를 총괄하는 인사관리처장(진급처장)은 호남 출신의 정희성 준장이다. 육사 31기로 전남 함평 학다리고 출신이다.

    진급과가 인사에서 힘을 발휘하는 까닭은 진급과에서 작성한 인사자료가 진급심사위원회에 제출되기 때문이다. 자료를 작성하면서 진급에 불리한 사항을 빼는 등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게 군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군 정보기관 관계자는 “진급과에서 인사자료를 올릴 때 아예 될 사람, 안 될 사람을 구분하기 때문에 위원회의 진급심사는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진급심사는 4심제로 이뤄진다. 갑·을·병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1차로 진급 대상자를 추린 다음 선발위원회를 구성해 최종 결정한다. 각각의 심사위원회에는 진급과 장교가 간사로 배석한다. 이러니 진급과의 힘이 세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장교들의 보직관리를 총괄하는 인사운영차장 한홍전(육사 32기) 준장은 충남 공주 출신이지만 전북 익산의 원광고를 졸업, 호남 인맥으로 분류된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역대 육본 인사운영차장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람은 문제의 진정서에 등장했던, 광주 S고 출신의 K소장이다.

    K장군은 1998년 10월부터 1999년 10월까지 약 1년간 인사운영차장으로 재임하며 진급 인사에서 상당한 실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했듯 K장군이 인사운영차장을 지낼 때는 인사관리처 소관의 진급 업무가 인사운영실로 넘어가 있었다. 그에 따라 당시 K장군은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진급과 보직 두 가지를 다 관리하는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K장군이 물러난 후 진급 업무는 인사관리처로 환원됐다.

    비전문가가 인사업무 총괄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국민의 정부’에서 육본 인사관리과장을 거친 다섯 장교의 명암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호남 출신은 모두 준장으로 진급한 반면 영남 출신은 별을 달지 못했다. 경북 출신의 김성종(육사 30기) 대령은 1997년 말부터 1년간 재임한 후 부사단장으로 나갔는데 아직 진급하지 못했다. 김대령의 후임자가 바로 지금 인사관리처장을 맡고 있는 정희성 준장이다. 전남 학다리고 출신인 그는 인사관리과장을 지낸 후 별을 달았다.

    정준장 후임인 영남 출신 황성칠(육사 31기) 대령은 진급에 실패했다. 황대령의 뒤를 이어 인사관리과장을 지낸 사람이 바로 현 인사운영차장인 한홍전(육사 32기·전북 익산 원광고) 준장이다. 한준장 후임은 동기인 박창희 대령. 전주고 출신인 그도 인사관리과장을 마친 뒤 준장으로 진급했다.

    이런 ‘특별한’ 현상은 국방부 인사관리과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97년 말부터 3년간 국방부 인사관리과장을 지낸 김안식(육사 30기) 대령은 별을 달지 못했다. 반면 후임자인 송승석(육사 32기) 대령은 재임 10개월 만에 준장으로 승진한 후 군단참모장으로 진출했다. 김대령은 경북 출신이고, 송준장은 이남신 합참의장과 동향인 전북 익산 출신이다. 현 국방부 인사관리과장 박철수(육사 33기) 대령은 전남 출신으로 성남고를 나왔다.

    국방부에서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는 국방부 차관보다. 현 차관보는 예비역 소장인 오치운(육사 25기)씨. 광주일고 출신인 오차관보는 합참 군구조발전부장, 국방부 품질관리소장 등을 지냈다. 인사 관련 부서에는 근무한 적이 없어 취임시 비전문가라는 비판과 함께 ‘호남 배려’가 아니냐는 눈총을 받았다.

    그밖에 국방부 인사 관련 부서에 근무하는 호남 출신 장교로는 인사복지국 차장 장종대 준장이 있다. 그는 육사 32기에, 전북 출신이다. 또 장군인사 담당자는 전남 출신 김아무개(육사 39기) 중령이다.

    인사 관련 부서는 아니지만 국방부 요직으로 꼽히는 몇몇 자리에도 호남 출신이 포진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실장 차영구(육사 26기) 중장은 전남 출신으로 서울 성동고를 나왔다. 정책국장 김선규(육사 28기) 소장은 광주일고 출신. 국방장관 보좌관 이봉운(육사 31기) 준장도 광주일고를 나왔다. 군비통제관 김국헌(육사 28기) 소장은 전남 출신으로 서울 성남고를 졸업했다.

    군 인사에서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는 역시 참모총장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사람은 모두 세 명이다. 김동신(육사 21기)-길형보(육사 22기)-김판규(육사 24기) 순이다. 이 중 호남 출신은 광주일고를 나온 김동신씨뿐이다. 비호남 출신이 참모총장을 할 때 참모차장은 호남 출신이 맡은 점이 눈길을 끈다.

    김동신씨는 ‘국민의 정부’ 호남군맥의 명실상부한 대표주자. 1998년 3월∼1999년 10월까지 참모총장을 지낸 그는 2001년 3월 국방부장관으로 복귀했다가 지난해 7월 서해교전 직후 물러났다. 군 관계자는 “‘국민의 정부’에서 호남 출신으로 장성이 된 사람은 대부분 김동신씨와 직·간접 연결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롭게도 광주일고 출신의 김동신씨가 국방장관을 지낼 때 헌병, 기무, 감사 등 군내 3대 사정기관의 사령탑은 모두 광주일고 출신이었다. 이정 합조단장, 문두식 기무사령관, 강준근 전 국방부 감사관이 그들이다.

    길형보씨는 평남 맹산, 김판규 현 참모총장은 경남 출신이다. 길씨가 참모총장을 지낼 때 참모차장은 전남 출신의 선영제(육사 25기) 중장이었다. 육사 26기인 현 신일순 참모차장도 전남 출신이다.

    길형보 참모총장 시절엔 3명의 장군 진급 예정자가 비리사건에 연루돼 별을 못 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전산병과의 L씨(육사 30기)는 금품수수로, 기무사 간부 S씨(육사 31기)는 여자 문제로, 공병 병과 L씨(육사 31기)는 군납비리에 연루돼 옷을 벗었다.

    확실한 호남독식, 기무사

    인사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기관이 기무사다. 기무사의 존안 자료는 인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국민의 정부’에서 기무사령관(중장)을 지낸 세 장군은 모두 호남 출신이다. ‘국민의 정부’ 첫 기무사령관은 현 합참의장인 이남신 대장. 육사 23기인 이의장은 전북 익산, 전주고 출신이다.

    이의장의 뒤를 이은 김필수 전 기무사령관은 육사 26기로 전북 고창, 고창고 출신이다. 현 사령관은 전남 화순, 광주일고 출신인 문두식(육사 27기) 중장. 문사령관은 기무사 1·2처장, 참모장을 지낸 정통 ‘기무맨’으로 호남 군맥의 실세로 불린다.

    기무사에는 현재 8명의 육군 장성이 포진하고 있다. 원래 6명이었는데 대선 직전인 지난해 10월 영남 출신 2명이 추가로 진급했다. 그 전까지는 육군장성 6명 중 4명이 호남 출신으로 영남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영남 출신 장성으로는 해군 1명이 있었을 뿐이다.

    군 및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기무사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참모장, 1처 5과장, 기획관리실 인사담당과장, 청와대 민정수석실 파견자 등 주요 보직을 호남 출신이 독식했다고 한다. 현 기무사 참모장 김복산 소장은 3사 1기로 전남 목포 출신이다.

    기무사의 인사 개입과 관련해 군 수사기관 관계자는 “김동신씨가 참모총장일 때 기무사 고위관계자가 각 군 인사참모부장을 기무사로 불러들여 진급인사를 조정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기무사 고위관계자와 육본 인사참모부 고위간부가 호텔에서 진급 인사안을 짜 참모총장에게 보고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마디로 기무사를 거치지 않은 진급인사는 없다는 것이 군내 중론이다.

    특전사령관 역시 김희중(육사 25기, 조대부고), 류해근(육사 26기, 전주고) 장군에 이어 김윤석(육사 27기, 광주고) 장군에 이르기까지 계속 호남 출신이 맡고 있다.

    헌병 조직의 최고위직인 합조단장 이정 소장도 호남 출신이다. 육사 29기로 광주일고를 나왔다. 이소장은 합조단장에 오르기 전 육군 헌병감을 지냈다. 이소장을 비롯해 ‘국민의 정부’에서 육군 헌병감을 지낸 사람은 한 명을 빼곤 모두 호남 출신이다. 이소장의 전임 헌병감인 김시천(육사 28기)씨는 서울, 성동고 출신이다. 그에 앞서 헌병감을 지낸 김보연(육사 26기)씨는 전주고 출신. 이소장의 후임인 이길재 헌병감은 육사 31기로 광주고를 졸업했다.

    2000년 6월 육본 고등검찰부는 인사참모부 소속 진급계장 M중령과 인사운영실 소속 K중령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진급 청탁과 관련해 각각 1000만원, 500만원을 받은 혐의였다. 당시 군내에선 군검찰이 두 사람의 여죄를 캐는 과정에 장성들의 진급비리까지 포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진급비리에 관련된 사람이 100명에 이른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수사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 전역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군 수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당시 이 사건에 관련된 인사 부서 책임자는 아무런 문책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뒤에 전투부대 지휘관으로 영전했다”고 귀띔했다. 군검찰 주변에서는 당시 군 고위층의 압력에 의해 육본 고등검찰부 수사팀이 ‘판도라의 상자’를 덮었다는 게 정설로 굳어져 있다.

    문제의 군 고위층으로 지목되는 사람은 호남 출신의 K장군이다. 문중령이 조사과정에 이 장군의 이름을 들먹이며 “나를 건드리면 내가 알고 있는 비리를 다 폭로하겠다”고 수사팀을 협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시 육본 법무감은 현재 국방부 법무관리관인 김창해(육사 36기, 부산고) 준장이었고, 수사 실무책임자인 고등검찰부장은 현재 모 군사령부 법무참모인 C대령이었다. 김법무관리관은 지난해 10월 참여연대에 의해 공금횡령,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한 바 있다.

    K장군과 더불어 호남 군맥 인사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은 전북 출신의 또 다른 K장군이다. 그는 인사 관련 부서에 근무할 때 방위병 보직 관련 수뢰사건에 연루돼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데도 장군으로 진급했다.

    ‘장군의 밥상머리’

    이처럼 군 주변에서는 인사비리나 부적절한 인사에 대한 소문이 많이 떠돌고 있다. 장군 인사와 관련된 군내 여론 중 신빙성이 높은 얘기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군 고위직을 지낸 예비역 장군 A씨와 B장군의 경우 ‘국민의 정부’ 고위층의 가족이 다니는 모 교회에서의 인연이 진급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A씨는 장인이, B장군은 부인이 이 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

    C장군은 부패 장군의 대명사로서 장성 비리를 다룬 실화소설 ‘장군의 밥상머리’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D장군은 ‘욕대장’으로 통할 정도로 입이 걸고 성격이 괴팍하다.

    E장군의 경우 천용택 전 국방장관과 한 부대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다. 그가 준장으로 진급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놀랐다고 한다. F장군은 훈련중 부하 사망사건으로 진급 부적격자로 분류됐음에도 군 고위층의 배려로 사단장에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G장군은 전역 대상자였는데도 소장으로 진급되는 특혜를 누렸다. H장군은 군수·조달비리와 관련해 구설에 올랐다. I장군은 지방색이 지나치게 강한 언사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반감을 사고 있다. 인사 부서 요직을 거친 J장군은 방위병 보직 청탁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K장군은 국방부 내 호남향우회 모임을 주도한다고 소문나 있다. L장군은 뇌물을 주고 사단장에 진출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비육사 출신인 M장군과 정보부대 N장군은 임동원(육사 13기) 전 대통령 특보와 한 부대에 근무한 덕을 봤다고 알려져 있다.

    진급시 특정인의 지원을 받았다고 무조건 비난할 순 없다. 개중에는 실제로 진급할 만한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군 관계자는 일부 특정인사의 영향력에 대해 “지휘관 시절 부하로 데리고 있던 사람이 진급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 관행으로 볼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만 능력과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을 단지 과거 인연만으로 진급시키려 하는 건 청산해야 할 구태”라고 비판했다.

    부적격 인사 시비의 그늘에는 피해사례가 있게 마련이다. 육사 25기 K장군(대구)의 경우 군단장 진출을 앞두고 간암을 앓고 있다는 잘못된 소문 탓에 보직해임 당했다.

    육사 26기인 Y장군(안동)은 김대중 정부 집권 초기 군 정보기관 고위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호남 5인방’에 대한 소문과 함께 지역편중 인사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다가 역공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단장 대리근무 명령을 받은 지 3일 만에 뚜렷한 이유 없이 인사명령이 취소돼 한직으로 밀려났다.

    육사 28기 K대령(강원)은 1999년 김동신 육군참모총장의 북풍사건 연루사실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제보했다가 총장 직속 수사기관인 중앙수사단에 불법 연행됐다.

    중앙수사단은 정체불명의 투서를 내세워 K대령의 비리를 찾아내려 했으나 사실무근으로 밝혀지자 3일 만에 풀어줬다. 그 과정에 K대령은 중앙수사단 고위관계자와 참모총장 측근으로부터 숱한 회유와 협박을 당했다. K대령은 결국 장군으로 진급하지 못한 채 1999년 말 전역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새 정부의 군 개혁과제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인사에 의한 조직 안정”이라며 “호남 출신인 조영길 국방장관이 현재의 지역편중 구도를 어떻게 타파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극심한 지역편중 인사 탓에 동기간이라도 영호남 출신은 서로 대화도 하지 않는 상태”라고 탄식했다.

    지역편중 인사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특정 지역 출신들을 싸잡아 매도하는 건 공정하지 않은 처사다. 지난 정권에서 상위 계급에 오르고 좋은 보직을 차지한 장교들 중에는 지역적 우대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장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4월 노무현 정부의 첫 군인사가 단행될 예정이다. 군 지휘부는 지난 5년 동안 켜켜이 쌓인 인사불만을 해소해야 할 숙제를 안고 있다. 평생을 군에 헌신한 일부 우수한 장교들이 지역편중 인사로 억울하게 진급하지 못한 한을 풀어줘야 한다.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혁신적인 인사개혁을 하되 옥석을 가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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