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학의 측면에서 학문 활동의 튼튼한 인프라가 되는 번역,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성찰과 지혜의 보고가 되는 번역. 우리는 이런 고전 번역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 이 물음에 비춰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김영두 옮김, 소나무)가 지니는 의미는 범상치 않다. 마치 오늘날의 어느 필자가 쓴 듯한 번역, 언어·습속·환경이 많이 다른 지역의 텍스트임에도 본래부터 현대어로 쓰여진 텍스트를 읽는 느낌이 드는 번역, 요컨대 각각 동시성(同時性)과 동소성(同所性)이라는 고전 번역의 이상에 접근한 책이기 때문이다.
퇴계와 고봉의 서신 왕래는 과거에 막 급제한 젊은 기대승이 상경해서 퇴계를 처음 만나던 해인 명종 13년(1558년)부터 퇴계가 세상을 떠난 선조 3년(1570년)까지 13년간 계속됐다. 이 책은 그들이 주고받은 100여 통의 편지를 일상의 편지들과 학문을 논한 편지들로 나눠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편지를 시기별로 정리했으면서도 ‘영혼의 교류가 시작되다’ ‘처세의 어려움을 나누며’ 등과 같이 각 시기별 편지의 중심 테마를 소제목으로 설정하고, 다시 각 편지에 대해서도 ‘시대를 위해 더욱 자신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진실한 공부를 방해하는 세 가지’ ‘봄 얼음을 밟는 것같이 두려운 마음으로’ 등과 같이 적절한 제목을 붙였다.
고봉은 술을 즐겼던 모양이다. 후학 고봉을 무척 아꼈던 퇴계의 충고가 없을 수 없다. 고봉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술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근래에 병이 잦았기 때문에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몸을 기르고 덕을 기르는 데 모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정말로 굳게 절제하여 술에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들뻘의 전도유망한 선비 고봉과 이미 조선 최고 유학자의 반열에 오른 퇴계 사이의 살가운 정은 옛 선비들이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학문과 덕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사귀고 대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전통 유교문화는 나이를 이유로 연소자를 일방적으로 억압하는 풍토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사실 퇴계와 고봉의 편지는 성리학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문제를 놓고 주고받은 학문적 내용의 편지를 중심으로 이미 번역, 소개된 바 있다. 하지만 김영두씨(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학문적 편지가 터잡고 있는 보다 넓은 배경, 즉 퇴계와 고봉의 인간적 교류와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편지에서 발견하고 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