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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의 書海 유람

21세기에 거듭난 우리 고전의 맛

  • 글: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medius@naver.com

21세기에 거듭난 우리 고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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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미암 유희춘의 ‘미암일기’(보물 제260호)를 재구성한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정창권 지음, 사계절)도 빼놓을 수 없다.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개인 일기로는 가장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미암일기’를 관직생활, 살림살이, 나들이, 재산증식, 갈등, 노후생활 등 일상의 여러 범주로 나눠 풀이했다. 각 장의 주제를 소설 형식을 빌려 극화한 부분도 실려 있다.

이 책의 독서 포인트는 조선 중기 사대부 집안의 일상생활, 여성의 지위, 그리고 흥미로운 에피소드 등에 있다. 미암이 전라감사 시절 성병의 일종인 임질에 걸려 아내인 덕봉에게까지 옮기게 된 모양이다. 미암은 의원을 불러 ‘순행(巡行)을 할 때 오랫동안 오줌을 못 누고 참았기 때문에 걸린 병’이라고 둘러댄다.

한편 미암은 덕봉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울로 올라와 관직생활을 하면서 홀로 지낸 지 서너 달. 그간 일절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은 줄 아시오.’ 덕봉의 답장은 압권이다. ‘군자가 행실을 닦고 마음을 다스림은 당연한 일인데, 어찌하여 겨우 몇 달 독숙(獨宿)했다고 고결한 체하며 은혜를 베풀었다고 하시오. 당신은 아무래도 인의를 베푸는 척하면서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병폐가 있는 듯하오.’

덕봉은 매달 한두 번 부녀모임을 가졌고, 산대놀이나 임금 행차 등 나라에 특별한 구경거리가 있을 때마다 구경했다. 조선시대 양반 여성이 집에만 틀어박힌 채 외출도 자유롭게 하지 못했다는 것은 적어도 16세기 전엔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더욱이 3남2녀 중 막내인 덕봉은 친정 부모의 제사도 직접 지냈다. 당시 조상의 제사는 자녀들이 돌아가며 지내는 윤회봉사(輪回奉祀)가 관행이었고, 재산도 남녀차별 없이 균등하게 나눴으며, 남자가 처가에서 혼례를 올리고 그대로 눌러 사는 처가살이가 유행했다.

이상의 두 책은 일단 제목부터 예전의 고전 번역서와 다르다. 고전 텍스트의 본래 한자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한자 제목을 직역해 제목으로 사용하던 것에 비하면, 두 책의 제목은 동시성 측면에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오기에 충분하다.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두 책 모두 고전을 재구성했다는 점이다.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껴라”

전통예술 분야에서는 조선 미술사의 주요 화가와 작품을 해설한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오주석 지음, 솔)이 주목 대상이다.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인 저자는 다년간의 일반인 상대 강의에서 쌓은 내공을 유감없이 풀어놓는다. 강의 현장의 생생한 느낌을 전달하려 어투도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경어체로 돼 있고, 저자가 강의 도중 보인 동작도 일종의 지문처럼 실려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옛 그림 감상의 요령이 눈길을 끈다.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껴야 한다’는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그림을 볼 때는 세로쓰기를 사용했던 옛사람의 눈에 맞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보라는 것. 서양화를 감상할 때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움직이면 그림의 중심 구도와 X자 꼴로 부딪치게 되며, 여러 폭의 병풍이라면 이야기를 마지막부터 거슬러 읽어나가는 꼴이 된다.

저자는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세계 최고의 호랑이 그림이자 초국보급 걸작이라 평한다. 하지만 그 그림을 박물관에서 직접 보면 그렇게 쩨쩨해 보일 수 없다고 한다. 왜 그럴까? 저자는 일본식으로 요란하게 만든 표구 때문이라고 개탄한다. ‘조선 사람이 기모노를 입은 꼴’이 됐다는 것이다. 기모노(표구)를 벗기고 그림만 보면 기막힌 걸작이 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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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medi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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