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호

‘지독한 편식’에 빠진 증권쟁이의 글읽기

  • 글: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yung12@hananet.net

    입력2003-03-26 08: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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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한 편식’에 빠진 증권쟁이의 글읽기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듯, 그 시절 내게도 ‘글읽기’는 시간을 쪼개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입시 관문을 코앞에 둔 때는 입시와 관계없는 모든 작업이 뒤로 밀렸고, 자투리 시간마저 피곤하다는 핑계로 대충 넘어갔다. 유일하게 시간을 낸 것이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던 버스 안이었다. 종암동과 혜화동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문학작품을 탐닉했고, ‘서울의 봄’으로 세상이 들썩이던 때는 ‘민중과 지식인’을 읽었다. 그래도 그 당시 무척이나 책을 좋아했었다.

    언제 읽을지 모르는 책을 사러 청계천 헌책방을 들락거렸고, 따뜻한 봄볕을 등지고 독서삼매경에 빠져들기도 했다. 가끔 아이가 “아빠는 왜 눈이 나빠졌느냐”고 물어올 때면 햇볕 아래서 책을 너무 많이 봐서 그렇다는 허풍을 떨긴 하지만. 나는 지금도 밥을 먹으며 책을 보는 큰아이를 야단치지 못한다. 책 읽는 버릇마저 나를 닮은 아이를 볼 때마다 어머니가 나의 버릇없는 행동에 얼마나 속을 끓이셨을까 하는 생각이 나서다.

    책은 읽는 대상 그 이상의 것

    대학시절을 거쳐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시기가 되면서 악착같이 책을 사모으고 읽는 작업을 계속했다. 몇 년 전 정보통신 열풍이 강하게 몰아치던 당시 종이책의 종말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부정했다. ‘책은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다. 장서로서의 가치도 있고, 한 권 한 권 쌓여가는 책을 보는 즐거움도 크다’는 논리를 가졌다.

    글읽기에 관한 한 나는 지독한 편식을 하는 편이다. 몇 년 동안 한 분야의 책만 읽는 버릇이다. 대학시절엔 그 대상이 사회과학서적이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것을 원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는 사회과학의 치밀함이 좋았다. 어찌보면 필요 이상으로 논리적이고자 하는 지금의 글 쓰는 버릇도 그때 생겨났는지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구애의 대상이 역사로 바뀌었다. 역사에 대한 나의 탐닉은 오래된 것이었다. 대학에 진학할 때 역사학을 전공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졌던 적이 있다. 겉으로는 ‘민족사관 정립’이란 거창한 이유를 내세웠지만, 내심 유학을 가지 않아도 교수가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학문이라는 단순한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역사를 공부해서 먹고 살 수 있겠느냐는 주위의 은근한 협박이 있었다. 거기에 더해 원하는 대학의 사학과에 들어갈 성적이 안 된다는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역사책이라면 지역을 불문하고 읽는 버릇으로 표출됐다. 일본과 인도, 베트남 역사가 그 대상이었고, 중남미 역사, 유목민,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사 역시 무척 흥미로운 주제였다. 그 중 가장 매혹적인 대상이 중국이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어릴 때 ‘삼국지’ ‘초한지’ 등의 호쾌한 전쟁 장면을 접한 경험 때문이다.

    내게 중국사의 체계를 잡아준 책은 존 K. 페어뱅크 교수의 ‘동양문화사’였다. 독자를 유혹하기 위한 조금의 흥밋거리도 제시하지 않은 채, 오직 개설서의 역할만을 묵묵히 수행한 책이었다.

    중국인들은 거대한 땅과 많은 인구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체제를 필요로 했고, 그 필요는 한 인간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형태로 열매를 맺었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도 왕국은 존재했다. 인간은 누구나 살아 있는 동안 자기 왕국을 만들고, 그 왕국을 핏줄에게 넘겨주려는 이기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대의 그 누구도 중국 황제와 같은 권위를 갖지는 못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중국왕조는 퍽 특이한 존재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중국만큼 적은 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을 지배해온 경우가 없었다. 황제의 의례적(儀禮的)인 지도력, 엘리트들의 도덕적 원리에 대한 자발적 수양, 백성을 자동적으로 조정하는 현명한 관료주의…. 이 모든 것들이 자급자족적이고 자기영속적인 문명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권력의 중심에 선 자나 권력과 상관없이 살아온 자 모두 그들 나름의 생활을 이어왔다. 그리고 후대 학자들은 이런 삶의 모습을 문화라고 명명했다. 문화의 정점은 역시 황제와 그가 살고 있는 궁전이다. 황제는 화려한 생활과 어마어마한 권위를 유지하려 3중으로 둘러싸인 땅에 궁궐을 지었다. 유교라는 정치 이데올로기도 채택했고, 그의 왕국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체제도 만들어냈다. 상류문화가 꽃피었던 자금성(紫禁城)은 몰락의 현장이기도 했다.

    왕조 말기 수취체제의 붕괴로 백성들은 착취에 시달렸고, 토지를 버린 농민들은 그들을 지켜주지 못하는 조정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여러 집단이 통합돼 점차 큰 조직이 됐고, 스스로 무장을 하면서 국가에 대항하는 힘을 만든 것이다. 명나라를 무너뜨린 이자성(李自成)은 실직한 역졸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무장을 했다고 해도 한낱 농민이나 역참인들이 무슨 일을 벌일 수 있겠는가?’라는 낡은 정부의 안일함을 비웃으며 그들은 혁명을 도모했고, 명의 숭정제는 왕궁 옆의 경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백성도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평시에는 그들이 평화롭게 먹고 사는 모습이 문화였고, 돈황의 막고굴을 파고 들어갈 때 백성이 갖고 있었던 간절한 염원도 문화였다. 삶이 팍팍해졌을 때 그들이 의존했던 여러 이단의 종교 또한 그들이 남긴 문화였다.

    출장차 서울에서 도쿄로 가는 비행기에서 ‘모택동 비사’를 펼쳤다. 이유는 간단하다. 도대체 문화혁명이라는 게 무엇일까, 얼마나 심오한 뜻을 지녔기에 그 이념을 완성하기 위해 10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죽어갔고, 몇 천년 동안 중국인이 떠받들던 공자(公子)마저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해가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문화혁명에 대한 나의 관심은 퍽 오래됐다. 중학교 때로 기억한다.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이 죽고 4인방 체제가 붕괴되던 즈음, 갱지로 만든 원고지를 묶어 글모음집이란 것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때 썼던 첫 번째 글이 치기 어리게도 ‘중국의 대자보에 관해서’였다.

    황제체제를 대신해 집권한 공산당은 마오(毛)의 주도하에 대약진 운동을 벌인다. 그러나 이 운동이 실패하면서 수많은 아사자가 생겨났고, 정치적 위기에 몰린 마오(毛)는 류사오치(劉少奇)를 비롯한 과거의 동지를 제거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명분은 구사상, 구문화, 구풍속, 구습관의 4구(舊) 타파였고, 주역은 홍위병이었다.

    몇 년 동안 한 분야의 책만 섭렵

    역사를 보면 가끔 인간은 너무 맹목적이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겠다는 일념으로 무수히 많은 모슬렘들의 목숨을 빼앗은 십자군전쟁이 그랬고, 문화혁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홍위병들은 이름이 오래됐다는 이유만으로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요리점 ‘전취덕’의 간판을 ‘북경오리 요리점’으로 바꿔버렸다. 마파두부의 발상지인 쓰촨(四川)성 성도의 ‘진마파두부 반점’ 역시 ‘진마파’라는 세 글자를 떼야 했다. 봉건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상표인 ‘마파’ 두부가 구사회를 상징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파괴하고 혁명화한다’는 문화혁명의 파고는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유치한 일까지 정당화시켰다. 한 무리의 홍위병들이 ‘빨간색은 혁명의 상징인데 빨간색 신호에 정지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우겨 정지신호와 진행신호를 바꾸는 바람에 교통사고가 빈발했다.

    나는 ‘증권쟁이’다. 점쟁이를 제외하곤 미래를 예측해 먹고 사는 유일한 직업을 가진 셈이다. 그리고 그 판은 인간의 이기적 본능이 첨예하게 얽혀 있는 세상이다. 가끔 직업과 연관해 역사를 생각해볼 때가 있다. 몇천년 동안 사람들은 이기심 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해왔다. 지금 나의 직업세계에 있는 사람들도 이기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른다.

    ‘어떤 시대, 어떤 상황이었건 특별한 것은 없지 않았을까? 우리가 과거의 그들을 돌이켜보면서 왜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그것도 집단 광기 속에서 저질렀을까? 정말 어리석지 않은가?’라고 얘기하면서도, 지금 우리라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를 보면 그 결과를 뻔히 알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의 글읽기에 관한 편식은 계속될 것 같다. 내가 조용한 산사에서 책 읽기를 꿈꾸고, 몇 년동안 한 분야의 공부만 계속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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