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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산에 정치생명을 걸다

‘특검제 수용’ 노무현의 2004 총선 전략

  • 글: 김기영 hades@donga.com

다시 부산에 정치생명을 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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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노무현 정권은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방법으로 지역여론을 움직이고 통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대표적 사례가 지난 2월26일 국회를 통과한 대북비밀송금사건 특검법의 거부권 행사 여부를 놓고 보름 동안 청와대가 보여온 절묘한 줄타기 처신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특검법은 향후 남북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중요한 법안이다.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을 계승한다면 당연히 거부권을 행사했어야 옳다. 하지만 한나라당 단독으로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할 때부터 노대통령은 사실상 이를 방치함으로써 특검법 자체를 거부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오히려 특검을 통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자연스러운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 인사는 나아가 대북송금사건 특검법은 “DJ와의 차별화를 이루면서 한편으로는 한나라당을 분열에 빠뜨리고, 민주당에도 변화를 몰고 와 마침내 노무현식 정계개편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대통령의 눈은 부산·경남을 향해 있으며 이곳에서 확고한 지지를 받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가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차근차근 이 인사의 주장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사실 특검법은 단순한 법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남북문제를 두고 크게 두 가지로 갈라져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다. 그간의 대북송금 자체가 불법이며 이로 인해 김정일 정권을 연명시켜 오늘날 북한 핵위기로까지 사태가 악화됐다는 시각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 해도 대북송금이 남북화해와 공존에 역할을 했던 만큼, 특검제를 통해 그 내막을 공개하고 관계자를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국론이 나뉠 정도인 만큼 정치권도 특검제를 두고 두 가지 의견으로 크게 대립하고 있다. 대북송금이 김대중 정권에서 이뤄진 사건이어서, 특검제에 대한 선호도는 김대중 정권에 대한 호불호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정리하자면 반(反)DJ 정서가 뿌리 깊은 영남과 이 지역을 연고로 하는 한나라당은 특검제를 선호하는 반면, 민주당은 애초부터 특검제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이라고 해서 특검제에 모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당론과 달리 대북송금사건은 특검으로 조사할 사안이 아니라는 소신을 갖고 있는 의원들도 적지 않다.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국회에서 특검법을 통과시킬 때 반대의견을 던진 김부겸(金富謙) 의원 같은 이가 그 주인공이다. 어느 당이든 소수의견이 있을 수 있다. 첨예한 사안일수록 사소한 이견에도 조직은 흔들릴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 내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에 부메랑 된 특검법

특검법이 제정되고 특별검사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면 한나라당 내 소수파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탈당 등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특검법은 한나라당이 제안한 법률이지만 부메랑처럼 한나라당의 분열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특검법은 민주당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구주류 의원들은 특검법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특히 호남 출신들은 지역 여론을 바탕으로 특검법에 강하게 반발해왔다.

하지만 비(非)호남 출신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특검법에 대한 반감이 약한 편이다. 중부권 출신 고위 인사는 한나라당 단독으로 특검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직후 “특검법 자체를 피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다만 어떻게 하면 국익을 해치지 않을 것인지를 연구하는 게 더 올바른 자세”라며 “수도권과 중부권 우리 당 의원이라면 나와 생각이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당 신주류 의원 다수는 말은 안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도 우리와 같을 것이다. 구주류인 정균환 총무가 당 전체 의견과 달리 구주류 자체 판단으로 한나라당과 특검제를 두고 협상을 벌여왔는데 이런 정총무의 처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여러 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기 오래전부터 특검 불가피론은 민주당 신주류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대행의 청와대 영수회담이 한창일 때, 노대통령의 386 핵심브레인 가운데 한 인사는 사석에서 “특검제를 수용하더라도 남북관계나 국내 정치문제 등에서 우리가 크게 손해볼 것은 없다”며 사실상 특검법 수용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인사는 “특검이 누구인가.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복수로 후보를 추천하지만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 아닌가.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이 대통령의 뜻에 반해 국익을 해치는 방향으로 수사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검을 수용할 경우 민주당 내 갈등이 일겠지만 언젠가는 거쳐야 할 내부 진통 아니겠나. 이를 통해 정치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인사의 예상대로 지난 14일 노대통령은 특검법을 원안대로 수용함으로써 특검정국 정면돌파를 선언했다.

정리하자면 특검법 정국은 노무현 대통령과 그 측근에게는 위기가 아닌 기회였던 셈이다. 특검법 제정과정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당내 갈등은 노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동참할 우군세력을 선별하고 골라내는 과정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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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기영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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