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인 재야출신 정치인이자 영원한 정치적 동지로 남을 것 같았던 김근태(金槿泰)와 노무현(盧武鉉). 비록 ‘적’이 되진 않았으나 어느 샌가 두 사람 사이엔 ‘감정의 골’이 깊게 패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민주당 국민경선에서 대선까지, 치열했던 선거가 남긴 상처다.
한 사람은 대통령으로, 다른 한 사람은 유력한 차기 원내대표로 거론되고 있지만 과거 두 사람간의 끈끈한 ‘동지애’는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노대통령과 김의원이 선의의 경쟁자이자 동지적 관계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 두 정치인의 홈페이지가 서로 링크돼 있었고, 서로의 후원회에 참석해 다른 정치인보다 훨씬 깊은 애정을 표현하면서 격려를 아끼지 않는 관계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19일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지금까지 두 사람은 만난 적은 물론 전화통화조차 없을 정도로 소원한 상태다. 노대통령의 한 측근은 “김근태 의원이 당에서 ‘홀로서기’를 하지 않는 한 노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도와주는 일은 없을 것 같다”는 말로 김의원에 대한 노대통령의 서운함을 전하기도 했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서운함은 김의원에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선을 치르기까지 두 사람간에 얼마만큼의 상처와 실망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월10일 오후 김의원을 만나 솔직한 심경을 들어보았다. 인터뷰에 앞서 기자는 김의원에게 솔직한 답변을 요청했고, 김의원도 “이제는 말할 때가 됐다”며 흔쾌히 응했다. 그러나 김의원은 “이미 대통령이 된 노무현과 ‘각’을 세울 이유가 있느냐. 노대통령을 자극하는 발언은 삼가는 게 좋겠다”는 주변의 만류 때문이었는지 다소 조심스러운, 그리고 원론적인 답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김의원은 노대통령 취임 이후 그의 개혁의지와 발언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적극적인 지지입장을 피력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가슴속에 담아둔 자신의 고뇌와 노대통령에 대한 감정을 모두 숨기지는 못했다.
인터뷰는 노무현 정권의 조각(組閣)과 사상 초유의 ‘평검사와의 대화’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사회갈등 해소 방법은 대화·타협뿐
―노대통령의 첫 인사가 매우 파격적입니다. ‘평검사와의 대화’ 등 과거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형식탈피’를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모습입니다. 일부에서는 이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노대통령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대체로 나와 생각이 비슷합니다. 일부에서는 이를 불안해하면서 안정적이지 않다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동안 권력 밖에 있었던 사람들이 국가운영을 위한 의사결정 범위 안으로 들어오면서 국가와 사회의 용량 자체가 확대된 측면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토론하고 타협하는 규칙이 지켜지고 발전돼야 한다고 봅니다.”
―노대통령의 시도는 바람직하지만 아직까지 ‘대화와 토론의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자칫 대화가 갈등을 조장하지는 않을까요.
“(우리 사회에) 갈등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갈등의 요인이 뭔지 드러나야 타협이 이뤄지지 않겠습니까. 지금 노무현 방식은 ‘이미 존재하는 갈등의 이유가 뭐냐, 그걸 드러내놓자. 그리고 토론하자’는 것이고, 토론을 진행하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타협도 하자는 것입니다. 다만 아직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토론과 타협의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아 논쟁이 충돌로 확대되면 곤란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요.”
질문은 지난 2002년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김의원은 당내 경선후보에 도전했다가 정치자금 양심고백 후 그 ‘후폭풍’으로 중도사퇴하고 말았다. 당시 그의 양심고백은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에게 불똥이 튀었다. 당내 인적쇄신 바람에 밀려 정계를 떠나 있던 권 전 고문은 김은성-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되는 과정에서 김의원의 양심고백으로 드러난 정치자금 제공혐의까지 추가로 기소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