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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자금 태풍의 눈’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싸늘한 검무(劍舞)·‘리쌍 부르쓰’, 그 극단의 조화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대선자금 태풍의 눈’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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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판단하려면 안중수부장과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항의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들(특히 가족들)은 그가 따뜻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가 집에서 인터넷 뮤직 사이트에 자신만의 카페를 만들어 맘에 드는 노래를 다운 받고 아이들과 함께 춤추며 최신 힙합곡을 따라 부른다는 얘기만 우선 해두자.

그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런 얘기들은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우선 그가 검사가 되기 전의 시절로 돌아가보자. 안중수부장은 1955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다. 2남2녀 중 장남. 수산대를 졸업한 그의 아버지는 수산업 계통에 종사한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안중수부장은 부산중학교에 진학했는데 부모와 떨어져 큰이모(어머니의 언니) 집에서 다녔다. 아버지가 서울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집이 서울로 이사했기 때문이다.

중학생 안대희는 부모와 떨어져 있어서인지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했다고 한다. 걱정이 된 부모는 2학년 때 그를 서울에 있는 숭문중학교로 전학시켰다. 다시 부모와 한집에 살게 된 안대희는 열심히 공부했고 당시 최고 명문인 경기고에 진학해 부모를 기쁘게 했다.

경기고 69회인 그는 1970년 경기고에 입학해 1973년 졸업했다. 69회의 경우 전체 입학생의 3분의 2는 무시험으로 올라온 경기중 출신들이었고 나머지는 안중수부장처럼 시험 봐서 들어온 학생들이었다. 한 학년에 12개 반이 있었는데 그중 8개 반이 경기중 출신으로 채워졌다. 그보다 두 기수 아래인 71회는 모든 학생이 시험 봐서 입학했고 73회부터는 고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추첨으로 입학생이 결정됐다.

69회 졸업앨범을 보면 안중수부장의 고교 시절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단정하고 차분하고 불량기라고는 없어 뵈는, 영락없는 모범생 이미지다. 두터운 안경과 오똑한 콧날, 그리고 도도록한 입술은 한 고집 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반 단체사진을 보면 키가 평균보다 작았음을 알 수 있다. 나이는 학교를 일찍 들어간 까닭에 동기생들보다 한 살 적었다.



그가 속한 3학년3반은 60명이었는데, 성적은 10등 안에 드는 상위권이었다. 생활기록부에는 대체로 좋은 평만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학년 때는 ‘꾸준히 노력해 성적이 우수’, 2학년 때는 ‘성적 우수, 내성적, 노력형’이라고 적혀 있다. 3학년 때 담임교사였던 박진희씨는 ‘온순·착실하며, 학업 정진, 노력’이라고 평했다. 1학년 때는 독서반, 2·3학년 때는 웅변반에서 활동했다. 학교 관계자는 몇 차례나 “(기록에 따르면) 아주 모범생이었다”고 강조했다.

졸업 안 한 채 연수원으로

69회 졸업생 중 현직 검사는 안중수부장을 비롯해 3명이다. 판사는 8명 배출됐는데 지금은 대부분 변호사로 개업했고 노영보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홍기종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두 사람만 남아있다.

변호사는 판사 출신을 포함해 약 30명에 이른다. 변호사 동기생 중 돋보이는 사람으로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에 근무하는 허익준, 박준 변호사를 꼽을 수 있다. 졸업하던 해 각각 예비고사 전국수석과 서울대 법대 수석을 차지했던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을 졸업한 후 곧바로 ‘김&장’에 입사, 화제를 낳았다. 조세형, 신창원 변론으로 유명한 엄상익 변호사도 동기생이다.

재계 인사로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동생인 김호연 빙그레 회장, 두산그룹 박용만 사장,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여사의 동생인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등이 대표적 인사다. 정·관계로 진출한 사람은 의외로 적어 탤런트 출신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정한용씨, 신현확 전 총리의 아들인 신철식 기획예산처 국장이 꼽히는 정도다.

의료업계에 종사하는 한 동기생은 안중수부장에 대한 흐릿한 기억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경기중 출신이 아니라서 그런지 친한 친구가 많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매사에 몰두하고 집중하는 성격으로 체격은 작지만 대범하고 당찬 구석이 있었고 대인관계가 원만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동창회에는 자주 나오지도 않지만 어쩌다 나와도 잠깐 얼굴만 비치고 돌아가는 편이다.”

법조인 동기생 중 한 명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안중수부장이 좀 엉뚱한 데가 있었다. 사주관상을 공부했다며 친구들에게 ‘너는 합격한다’ ‘너는 떨어진다’ 하고 대입시험 합격운을 말해주던 것이 기억난다. 모범생으로 사교성도 있었다.”

평균치보다 높은 정의감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안중수부장이 사시에 최종 합격한 것은 1975년 대학 3학년 때였다. 입학하자마자 사시 공부에 몰두해 1학년 말에 1차, 2학년 말에 2차에 합격했다. 사시 17회 합격자 중 최연소였다. 그는 학교 공부를 계속하지 않고 곧바로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그 탓에 대학 중퇴자가 됐다. 군법무관 시절 복학을 시도했으나 수업 불참으로 학점 취득이 어려워 졸업장을 받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교수들이 “여기가 학원이냐”며 학점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안중수부장의 성격에 대해 물어보면 대개는 ‘강직’ ‘원칙주의자’ ‘정의감’ 같은 단어들을 말한다. 사시 동기인 검찰 간부는 “강직하고 원칙에 충실해 청탁이라는 것이 아예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역시 사시 동기인 모 검사장은 “청렴하고 강직하다”는 한마디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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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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