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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자금 태풍의 눈’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싸늘한 검무(劍舞)·‘리쌍 부르쓰’, 그 극단의 조화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대선자금 태풍의 눈’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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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자금 태풍의 눈’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정치권에 맞서고 있는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과거 법조를 출입하며 그와 친분을 쌓은 모 일간지의 간부는 “강직한 탓에 기자들이 민원을 부탁하기가 꺼려지는 검사”라며 “골프를 쳐도 자기 것은 자기가 낼 정도로 냉정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와 가까운 재경지청 고위간부는 “초임 때부터 결벽증 비슷하게 정의감에 대한 기준이 평균치보다 높았다”고 말했다. 한때 그를 부장으로 모셨던 법무부 간부는 “정의에 대한 신념을 그에게서 배웠다”며 존경심을 감추지 않았다.

고교 동기생인 한 검찰 간부는 “강직하고 청탁 같은 것은 일절 거절하는 원칙주의자로 사람도 가려서 만나는 등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평했다. 그는 또 “실력이나 청렴도에 비춰 대검 중수부장으로 적격”이라고 치켜세웠다.

변호사인 또 다른 고교 동기생에 따르면 안중수부장은 군법무관 시절 성실하고 치밀한 업무처리로 지휘관들의 신임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안중수부장을 “겸손한 원칙주의자”로 규정지었다.

“검사보다는 판사나 교수의 이미지다. 사시에 일찍 합격했기 때문에 교만에 빠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재거나 과시하지 않는다. 몇 달 전 동창회 모임에 나왔을 때도 조금 늦게 와서 두리번거리다 한쪽 구석에 가 앉는 버릇은 여전했다.”

이 변호사는 “안중수부장은 그다지 사교적이지는 않다. 친구들도 만나는 친구들만 계속 만난다”며 “언젠가 내게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잘 안 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안중수부장의 고교후배인 검찰 간부는 “교우관계가 한정된 건 맞다”면서 “하지만 그런 성격이 오히려 특수수사에는 적격이다. 검사가 너무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은 직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1977년 육군법무관으로 입대한 안중수부장은 1980년 전역, 초임을 서울지검에서 시작했다. 지금은 그 의미가 약해졌지만 과거 ‘서울지검 초임’은 성적이 우수한 사법연수원 졸업생들에게 주어지는 ‘특전’이었다. 그는 동기생 중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연수원을 졸업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기 중 최연소 합격

검찰에서는 사시 기수를 기준으로 서열을 매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 서열이 검사 생활 내내 따라다닌다. 위에 언급한 안중수부장의 후배 검찰 간부는 임관연도는 같지만 사시 기수로는 후배다. 그는 “안선배는 사시에 너무 일찍 합격한 데다 졸업도 하지 않고 연수원으로 곧장 가는 바람에 손해본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나이나 학번으로는 선배지만 사시 기수는 후배인 검사들과 다소 불편한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안중수부장의 후배(사시)이자 선배(대학)인 대검의 한 간부도 “한 부서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관계가 편하진 않았다. 터놓고 얘기해본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순탄하게 요직을 두루 밟던 그가 국민의 정부에서 두 차례나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다가 지난해 여름 뒤늦게 승진한 것을 두고 “안대희는 이제야 나이에 맞게 승진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안중수부장의 첫 근무지는 서울지검 형사1부였다. 당시 형사1부장은 이한동 의원. 이부장은 초임인 안검사가 경찰 송치사건을 대충 넘기지 않고 더 수사해 경찰관을 구속하는 걸 보고 “무서운 녀석”이라고 평했다. 실력을 인정받은 안검사는 이듬해인 1981년 쟁쟁한 실력자들만 모인다는 특수1부에 배속됐다. 훗날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역임한 김석휘(고시 사법과 8회) 당시 서울지검장이 직접 발탁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초년병인 안검사는 특수1부에 가자마자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유명한 저질연탄 사건이 그것이다. 처음엔 안검사 혼자 맡아 했는데, 사건이 점차 커지면서 특수1부 검사 전원이 투입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특수1부장은 임상현(고시 사법과 16회) 변호사였고 뒷날 국민의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최경원(사시 8회) 변호사와 안검사의 사시 한 기수 선배인 박주선(사시 16회) 의원이 각각 수석과 차석이었다.

수사팀은 국내 대형 연탄업체들이 석탄에 저질 무급탄(속칭 버럭)을 섞어 판매함으로써 100억원대의 부당이익을 올린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연탄은 서민들의 생활필수품이었기 때문에 이 수사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전두환 대통령이 김석휘 서울지검장에게 격려전화를 걸 정도였다. 이 일로 동력자원부 석탄국장 등 관련 공무원들과 업자들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여론의 지지를 받았던 이 수사는 그러나 “국내 연탄업계를 다 망하게 한다”는 경제논리에 밀려 끝이 좋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당시 동력자원부 장관이 전대통령에게 읍소한 결과라는 설도 있고, 전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당시 대한광업진흥공사 이사장의 로비가 작용한 결과라는 소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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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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