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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7년... 여전한 전위부대, 그러나 주류 꿈꾸는 파워맨들

  • 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386’ 7년... 여전한 전위부대, 그러나 주류 꿈꾸는 파워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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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7년... 여전한 전위부대, 그러나 주류 꿈꾸는 파워맨들
90년대 들어 조직운동의 한계를 느낀 이정우씨는 고시를 돌파구로 삼았다(이후 운동권에 고시바람이 불었다). 그가 90년 외무고시, 91년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모두 통과해 고시3관왕의 영예를 안자 곧바로 정치권에서 20대의 전국구 의원(14대)이라는 제의가 들어왔으나 그는 정치적 재야이기를 고집했다. 대신 대중운동과 정치운동을 매개로 한 세대운동을 모색하며 ‘열린공간30’을 만들었다. 이 무렵 인천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뒤늦게 고시에 도전한 송영길씨가 1994년 사시에 합격했고, ‘의료계 마당발’로 통하는 이왕준씨가 서울대 레지던트가 되는 등 핵심멤버들이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고 숨을 고르던 시기였다.

신조어 386의 탄생

‘열린공간30’은 대기업에 다니던 황도순씨(고대 법학82·현 능률영어사 상무)를 영입해 ‘동숭동에서’의 경영을 전담케 했다. 황씨는 “대학 다닐 때는 적극적으로 학생운동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일종의 부채감이 있었다. 각 분야에 자리잡은 386들이 다시 모여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자는 취지가 좋아서 합류했다”고 말한다.

386이란 말은 카페 이름을 짓기 위해 이들이 머리를 맞댄 자리에서 튀어나온 부산물이었다. 그 무렵 ‘디지털조선일보’에 근무했던 한창민씨(현 박영률출판사 기획위원)가 컴퓨터 CPU에 빗대 “60년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30세가 된 사람을 가리켜 신조어 386”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카페 이름으로는 너무 생경하다는 비판에 밀려 ‘동숭동에서’로 낙찰됐다.

386카페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만 해도 30대는 20대와 40대 사이에 끼어 갈 곳이 없는 어정쩡한 세대 취급을 받았다. 그런 그들이 30대 문화 만들기에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젯거리였다. 언론이 앞다퉈 이 공간을 소개하자 학창시절의 ‘열정’을 부여잡고 무작정 찾아오는 30대도 있었다. 김상백 세화여중 교사(서강대·81)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열린문화공간이 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토론회나 강연, 영화 상영, 작은 공연도 수시로 열렸다. 경제적 이유로 건강한 공간 하나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동숭동에서’는 1999년초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았고, 둥지를 잃어버린 ‘열린공간30’도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386이란 용어는 오히려 그때부터 세상에 널리, 깊숙이 퍼져나갔다.

80년대 운동에 대한 반성

활동 기간은 2년에 불과했지만 ‘열린공간30’이 남긴 것은 단지 386이라는 신조어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386세대의 운동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는 뒷전이었다.

“80년대 운동은 두 가지 성격을 갖는다. 정당이나 연구회, 포럼 등을 통한 정치운동이 있고, 그 형태는 뚜렷하지 않으나 386정서를 담은 문화운동이 있다. 80년대의 에너지를 담아낼 그릇으로 이미 정치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우리까지 정치할 필요가 있느냐는 목소리가 컸다.”(황도순)

‘동숭동에서’는 매달 주제를 갖고 관훈토론식 포럼을 열었다. 그 중에서도 1997년 가을 노무현 변호사의 강연은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노변호사는 92년 14대 총선, 95년 부산시장 선거, 96년 15대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하고, 야권통합과 ‘3김청산’을 주장하며 조직된 국민통합추진위원회(통추)에 몸담고 있다.

“2시간 정도 노변호사가 자신이 걸어온 길과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뒤늦게 운동에 뛰어들어 인권변호사가 된 그의 의식화 연령은 386과 비슷했다. 특히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에 대한 강한 ‘로열티’를 보였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만약 전민련에서 의원 배지를 떼라면 뗄 각오가 돼 있었다는 말도 했다. 그만큼 진정성을 갖고 운동을 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1~2년 정도 지나보니 실제 운동하는 사람들이 그런 각오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실망했다는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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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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