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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순(대남 비서)·오진우(인민무력부장)·고영희(김정일의 처) 교통사고와 金正日 비밀파티

  • 글: 박인철 북한전문가

김용순(대남 비서)·오진우(인민무력부장)·고영희(김정일의 처) 교통사고와 金正日 비밀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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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김정남이라는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되는 인물이고, 그런 만큼 김정일 입장에서는 이미 ‘내놓은 자식’이나 다를 바 없다. 특히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이 불거진 후 그는 북한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저 외국을 떠돌아다니는 낭인 신세가 되었다. 그런 처지에 있는 김정남이 이복동생들과 후계자 투쟁을 벌인다는 언급은 공상만화 같은 얘기다.

우리 정부는 김용순과 고영희의 교통사고 배경에 대해서 말을 아꼈다. 10월27일 조선중앙방송이 “김용순 비서가 지난 6월16일 교통사고로 장기간 입원치료중 10월26일 사망했다”고 보도하자,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인간적으로 조의를 표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앞서 정장관은 고영희의 사고와 관련해 10월21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 “고영희가 중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짤막하게 밝혔다.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0월27일자 부고를 통해 “김용순 중앙위원회 비서는 6·15 북남공동선언의 기치 아래 조국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는 데 온갖 정열을 바쳤다”며 “당과 혁명, 조국과 민족 앞에 세운 그의 공적은 길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공식적인 언급을 하는 데 그치고 김용순의 교통사고 배경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가는 차량이 거의 없는 북한에서 김용순과 고영희의 교통사고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북한 고위층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김치구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이화영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심야에 승용차를 몰고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노명근 당 재정경리부장은 크게 다쳐 그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했다. 이들 모두는 승용차를 함께 타고 가다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앞서 이종목 외교부 제1부부장 역시 심야에 차를 몰고 귀가하다 교통사고로 즉사했다.



또한 1987년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은 새벽 3시경 직접 승용차를 몰고 귀가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거의 초죽음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한 적이 있다. 도대체 북한 고위층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길래 이 같은 교통사고가 빈번한 것일까.

두개골 깨지고 갈비뼈 부러진 오진우

이들의 교통사고는 100% 새벽 2∼3시경 만취한 상태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였다. 교통사고의 원인이 모두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선인민군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왜 당번병이나 운전기사에게 맡기지 않고 노구(老軀)의 몸으로 직접 핸들을 잡았을까? 먼저 전 인민군 고위장교 출신들의 증언을 종합해 오진우 교통사고의 전말을 알아보자.

1980년 10월 제6차 당대회를 통해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에 선출됐다. 이로써 1974년 공식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군에 대한 영향력까지 확고히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로서는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었다. 그가 오진우였다. 당시 오진우는 군의 제후였다. 오진우는 빨치산 시절 김일성의 당번병이었고 김일성 앞에서 맞담배를 피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김정일이 아무리 김일성의 후계자라고 해도 오진우는 벅찬 상대였다.

김정일은 이 무렵부터 오진우에게 ‘당근’ 작전을 폈다. 그는 오진우에게 포드 승용차와 벤츠-450형, 사냥용 승용차 등 최고급 자동차 6대를 선물했다. 또한 ‘특각’을 포함하여 비밀공사를 전담하는 사회안전부 공병 1여단을 동원하여 호화 단독주택을 지어줬다. 오진우 역시 김정일이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면서 그에 대한 태도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1980년 10월 6차 당대회 이후 북한 권력의 수뇌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은 김일성, 김일, 오진우, 김정일, 이종옥 등 5명이었다. 김정일은 겉으로 오진우를 존경하고 내세웠지만 끝까지 믿지는 않았다.

이러한 가운데 1987년 봄 오진우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오진우는 두개골이 깨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의식을 잃고 중태에 빠졌다.

1987년 북한은 88서울올림픽에 대응하여 ‘89 평양세계청년학생축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북한은 평양축전에 대비한 광복거리 건설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새벽, 인민무력부장 오진우의 집에 전화가 걸려왔다. 오진우가 교통사고로 평양 제1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다급한 전화였다. 오진우는 의식불명 상태였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였다. 그의 아내가 병원측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이러했다.

벤츠의 두 가지 ‘절대 수칙’

사고 당일 새벽 3시경. 평양시 안전국 교통순찰대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전승기념관 앞 도로를 지나가고 있는데, 벤츠승용차가 가로등을 들이받고 부서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안전원이 급히 달려가 보니 운전석에 웬 ‘노인’이 혼자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었다. 차안에서는 피비린내와 함께 술 냄새가 확 풍겨 나왔다.

안전원은 고급 승용차인 점으로 미루어 어느 고위간부의 운전기사려니 짐작하고 급히 가까운 평양 제1병원으로 옮겼다. 당직 의사가 살펴보니 이미 두개골이 깨지고 갈비뼈가 여러 대 부러져 있었다. 노인의 신원을 파악하려고 주머니를 모두 뒤졌으나 신원을 증명할 만한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불현듯 노인의 팔목에 찬 시계가 눈에 띄었다. 순금으로 된 ‘오메가’ 최고급 시계였다. 의사의 눈에는 시계 중앙에 찍힌 ‘김일성’이라는 빨간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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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인철 북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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