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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취재

현대중공업의 현대전자 보증계약은 불법

무지, 무원칙, 무대책으로 2억달러 날렸다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현대중공업의 현대전자 보증계약은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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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건실한 기업이지만 국내에서 펀딩이 제대로 안 돼 부득이하게 풋옵션 계약을 하고 외자를 유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드물지만 이런 경우엔 다소 편의를 봐줬다. 이를테면 이를 금융선물거래로 뭉뚱그려 보지 않고, 비거주자가 거주자의 주식을 매수한 것은 외국인 직접투자로 신고하게 한 뒤 비거주자가 풋옵션을 행사할 때는 단순히 거주자가 비거주자의 주식을 매입한 것으로 분리해서 절차를 밟게 했다. 그러나 갈수록 부작용이 더 커진다고 판단되어 2000년 이후로는 금융선물거래를 엄격하게 규제했다.”

하지만 법을 아무리 유연하게 해석한다 해도 현대중공업-CIBC의 경우는 편의를 봐줄 만한 사안이 못 된다는 지적이다. 이런 경우라면 환전지급 승인이 나지 않아야 정상이다. 외국환은행의 환전 관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외국 금융기관들이 CIBC와 같은 지급보증거래를 할 때는 행여 미처 인지하지 못한 위법행위 등으로 인해 빌려준 돈을 못 받을 가능성에 대비해 로펌으로 하여금 상대 기업의 이사회 결의와 위법 우려, 관련당국 승인여부 등을 챙기게 해 법적 자문을 구한다. 금융기관도 자체 준법감시실(Compliance Office)에서 계약 관련 사항을 꼼꼼하게 검토한다. CIBC가 이런 절차를 제대로 거쳤다면 과연 이 계약이 준법감시실의 ‘OK’ 사인을 쉽게 얻어낼 수 있었을까. 당시 계약을 주선한 현대증권은 CIBC에 앞서 다른 몇몇 외국 금융기관과 접촉했으나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금융기관은 이와 유사하게 이면 풋옵션 계약을 하면서 허위 주식투자를 하는 경우 내부적으로 허가가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명성이나 신인도가 하락할 수도 있어 통상 자기 명의를 내세우지 않고 페이퍼컴퍼니를 내세운다. 하지만 당시 외자도입법상 국내 투신사에 투자하는 외국인은 본국에서 증권업허가가 있는 자여야 했다. 금융업종 제한 없이 유니버설 뱅킹을 할 수 있는 CIBC는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기 명의로 현대투신 주식을 보유하고 풋옵션 이면계약을 했다.

그러니 계약에 문제가 생기면 자신의 신인도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더욱 철저하게 사전 검토를 했어야 한다. 만약 문제점을 알고도 계약을 강행했다가 환전지급이 거절되는 등의 사태가 빚어졌다면 CIBC에게도 ‘악의적 과실’에 따른 귀책사유를 물을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정작 적법성을 따지지 않은 주책임은 현대중공업이 아니라 CIBC에 물어야 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승소와 집행·회수는 별개

따라서 현대중공업이 군말없이 2억2000만달러를 내줄 게 아니라, 불법 계약에 따른 외국환은행의 환전지급 미승인을 내세워 지급을 거부하고 관련 임직원을 문책하는 한편 CIBC에게도 적극적으로 책임을 묻고 나섰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현대중공업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룹의 결정에 따라 본의 아니게 이뤄진 계약, 그래서 이사회 승인도 얻지 못한 계약이었다는 점도 ‘버티기’의 명분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나온다면 CIBC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겠지만, CIBC가 승소한다는 보장이 없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그런 소송이 제기될 경우 현대중공업이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비록 현대중공업-CIBC 거래가 위법이라고 해도 양측의 계약이 무효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개인이 집을 산 뒤 등기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부동산투기제한지역에서 부동산을 매매하고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거래 자체를 무효화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한다. 이른바 ‘사법(私法)자치’의 원칙이다. 다만 환전승인이 난 데 대해서는 외국환은행이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

불법 계약으로 인한 환전지급 거절과 관련, 참고할 만한 문서가 있다. 1995년 K그룹은 계열 골프장의 자금 조달을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외국계 금융기관 I사가 관심을 보였다.

K그룹은 I사에 골프장 회원권을 매각해 자금을 유치하고, I사는 7년 후 일정한 가격에 회원권을 K그룹에 되파는 풋옵션 계약을 체결하고자 했다. I사는 이 계약에 문제가 없는지를 국내 한 로펌에 문의했다. 다음은 이 로펌이 I사에 작성해준 법률 의견서(legal opinion)의 주요 내용이다.

‘…풋옵션 계약 행사 시점까지 한국의 외국환관리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외국환은행의 승인을 얻어야 풋옵션 행사 대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승인을 얻지 못할 경우에도 회원권 풋옵션 계약은 유효하다. 이와 관련해 한국 법원에서 소송이 제기되면 귀측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그러나 재판에서 이겨도 대금을 결제받으려면 환전승인이 필요한데, 즉각 승인될지는 확실치 않다. 물론 K그룹의 해외 자산이 있는 국가에서 관련 소송이 제기되어 귀측이 승소하면 결제대금 회수가 가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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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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