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롤라인은 음악을 전공하는 영국 여대생이다. 평범해 보이는 아가씨지만, 영국 금융가에서는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그런데 그렇게 된 데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캐롤라인은 음악대학 진학을 꿈꿨으나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 포기해야 할 처지였다. 그는 이리저리 머리를 돌리다 한 가지 꾀를 냈다. 바로 자신을 대상으로 주식을 발행하는 것이었다.
우선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소개하는 조그마한 광고를 냈다. 명문 음대 합격증도 함께 인쇄해 실었다. 광고 제목은 ‘재능주를 사세요’. 호기심이 발동한 전국의 투자자들이 캐롤라인의 미래를 믿고 투자하는 바람에 그는 단번에 2만파운드를 모을 수 있었다.
그 뒤 캐롤라인은 해마다 주주들을 초청, 자신의 최근 대학 성적표와 재무제표를 공개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 이렇다 할 수입은 없지만, 돈을 알뜰하게 썼다는 명세를 솔직하게 공개해 주주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시장에 공개한 뒤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미래를 사도록 설득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진학도 결혼도 M&A?
캐롤라인의 얘기를 듣고도 고개를 갸우뚱한다면 영국의 록 스타 데이비드 보위(대표곡 ‘Let’s dance’‘Velvet Go ldmine’)의 경우를 살펴보자.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보위는 록 가수로 유명하지만, 뉴욕 월스트리트에선 자신의 이름으로 채권을 발행한 인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97년 자신의 매니저 및 뉴욕의 투자은행 풀먼그룹과 함께 5500만달러(660억원)의 15년 만기 ‘보위 채권(Bowie Bonds)’을 발행했다. 연간 이자율은 7.9%. 신용평가회사 무디스 인베스터 서비스는 이 채권에 ‘A’등급을 부여했다. 이는 굴지의 대기업 GM과 같은 신용도다. 보위 채권은 다국적 생명보험회사 푸르덴셜이 전량 매입했다.
덕분에 그는 660억원이라는 자금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이 자금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고 가수 활동에 매진할 수 있고, 푸르덴셜은 연이율 7.9%의 좋은 투자처를 발굴한 셈이다. 보위 채권은 그가 수년간에 걸쳐서 작사·작곡한 300여 곡의 노래가 벌어들이는 인세 수입, 그리고 앞으로 개최할 공연의 예상수입 등을 근거로 이자율과 발행규모가 결정됐다. ‘미래의 부(Future Wealth)’를 쓴 스탠 데이비스는 “보위는 자신의 인적 자본을 자기 것으로 확고하게 장악했고, 그에 대한 다양한 투자 대안들을 면밀하게 비교·검토했으며, 지속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였고, 타인에게 사용권을 허가하는 라이선싱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극찬했다.
‘미래의 부’는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자본으로 주식을 발행하고 채권을 발행하는 등 이른바 개인의 기업화 아이디어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언스트&영 경영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스탠 데이비스는 ‘미래의 지배(경영정신)’ 등을 저술하며 주로 개인의 기업화에 대해 혁신적인 연구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미국은 기업 하는 데 가장 편리한 나라로 꼽힌다. 개인의 기업화나 개인의 상장시대가 열린다는 데이비스의 주장은 그런 분위기의 미국인들에겐 어쩌면 낯익은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미국에선 이미 1990년대부터 개인이 기업처럼 상장될 수 있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1999년 말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우리 가정도 증시에 상장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주가로 매겨지는 사회가 도래하고, ‘아버지는 CEO, 아들은 이사’로 활동하며 생활수준은 상장 이전보다 훨씬 개선되리라 예상했다.
“모든 가정이 상장되면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삶이 편해질 것이다. 예를 들면 부모와 자녀가 자기 가구의 이사로 취임해 대다수 최고경영자들이 누리는 상류생활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식품 구입·외식·휴가 비용 등은 모두 사업적 지출로 간주돼 세금공제 혜택을 받게 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적을 주가에 반영한다면 학부형이 얼마나 편해지겠는가. 교사들도 점수나 통지표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각 학생의 주가를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기만 하면 된다. 학생들은 서로 주식을 합쳐 일류대학 입학자격을 강제 매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