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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기도가 왜 그리 길어? 찌개 다 식을라” |유영구

  • 글: 유영구 학교법인 명지학원 이사장

“기도가 왜 그리 길어? 찌개 다 식을라” |유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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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의술의 발달로 태아를 식별하는 방법이 있다지만, 당시는 오직 하느님만 아실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온 집안이 출산을 맞이할 때마다 마음만 설레다가 낙담하는 일이 이어졌다. 그 때마다 정작 당사자인 집사람은 얼마나 민망하고 괴로웠을까? 그러나 아버지는 민망해하는 맏며느리에게 “아가! 수고했다. 걱정 마라.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떠냐. 건강하게 잘 키우면 되지”라며 위로해주셨다.

송구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던 집사람도 처음에는 아버님의 위로 말씀을 반신반의했으나 당신의 말씀이 워낙 자상하고 인자해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다행스럽게도 막내로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그제서야 아버지께서는 “사실은…”하시며 과거의 심경을 털어놓으셨다.

“장손인 네게 계속 여아(女兒)만 있으니 본인이 얼마나 송구스럽고 괴로울까 해서 그 마음을 달래려고 그런 말을 했었지. 너나 너의 댁이 내가 하도 연기를 잘해서 곧이들은 모양이구나? 사실은 얼마나 손자를 고대했는데…. 이제 득손(得孫)을 했으니 내 속마음을 공개해도 되겠지?”

만일 우리 부부가 계속 딸만 낳았더라면 아버지의 속마음은 영원히 묻혀버렸으리라. 이 일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제 큰딸아이는 출가해 엄마가 됐고 둘째는 대학원을 나와 UN 직원으로 캐나다에서 근무하고 있다. 셋째는 미대를 나와 제 갈 길을 걷고 있고, 바로 그 막내아들 녀석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자수성가와 입지전적 스토리

아버지는 충청남도 부여의 기계유씨(杞溪兪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당시 기계유씨는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사회변동으로 몰락한 사대부 집안으로, 부칠 논밭도 제대로 없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 그러나 아버지는 이런 역경 속에서 운명의 요행이 아니라 자면(自勉)으로 하나하나 인생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갔다. 공부도 그렇게 했고 사업도 그러하였다.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를 일컬어 입지전적 인물이라고 했다. 그 삶의 의지와 뜻은 독실한 신앙에서 얻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스승은 바로 당신의 어머니(필자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그 어려운 살림에 집안을 꾸려나가면서도 수십 리나 떨어진 교회를 새벽별을 보며 오가기를 멈추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그런 할머니를 배워왔고 그러다 보니 경건하고 독실한 신앙 역시 할머니를 닮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신앙은 경직된 원리주의가 아니라 생활화된 현실적 신앙이었다. 겉치레 형식과 답답한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일상생활과 호흡을 같이하는, 친근감을 가진 신앙생활이었다.

독실한 신앙을 갖고 있는 데다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면 보통사람들은 높이 평가는 하되 가까이 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거부감 없이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좋아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친화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두말할 나위 없이 참된 신앙과 참사랑의 산물일 것이다.

큰고모(아버지의 누이동생)는 기도할 때 늘 시간을 길게 끄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식사를 앞두고 고모의 기도 차례가 되자 아버지가 갑자기 “얘야! 기도 좀 짧게 해라, 찌개 다 식을라” 하고 소리를 지르셨다. 그래서 온 식구가 한바탕 웃은 일이 있었다. 비록 작은 에피소드지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려는 아버지의 신앙생활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소탈하고 격의 없는 신앙생활

교회의 장로 소임을 맡았던 아버지는 예배시간에 맨 앞줄에 앉아 가끔씩 깜박깜박 조실 때가 있었다. 아마도 학교 일과 교회 일이 겹쳐 피곤해서 그랬을 것이다. 우리들은 그럴 때마다 이런저런 사정은 헤아리지 않고 ‘보기 좋지 않다’며 아버지에게 서운한 소리를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번번이 웃으면서 “목사님의 유려한 설교를 들으며 잠깐 깜박하니 이게 바로 천국이더라”며 받아넘기시곤 했다.

참으로 그리운 추억의 한 장면이다. 아버지는 이렇게 우리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까이하고 쉽게 생활에 옮길 수 있도록 평생토록 애썼다. 그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인지 ‘제1회 민족복음화 선교대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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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영구 학교법인 명지학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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