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포는 신발 밑에서 이를 가는 자갈 소리를 들으며 주머니란 주머니는 모두 뒤졌지만 불을 찾지 못했다. 서늘한 기운이 몸을 부르르 떨게 만들었다. 어디선가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들려왔다. 두 발은 쉽게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너무 지독한 어둠이라 마치 장님이 된 것만 같았다. 침 넘어가는 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바람 한 점 볼을 스치고 가지 않았다.
“여기…누구 없소?”
간신히 내뱉은 그의 작은 목소리는 웅웅거렸다. 제풀에 놀라 뒷걸음질치는 그의 발 밑에서 다시 자갈이 이를 갈았다. 그는 조심조심 두 팔을 어둠 속으로 내밀었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무언가가 만져졌다. 손바닥으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갱목이었다. 이번에는 한쪽 발로 바닥을 더듬거리다가 곧 멈췄다. 엉거주춤 쪼그려 앉아 발이 걸린 곳으로 손을 가져갔다. 차가운 쇠의 감촉에 감전이라도 된 듯 흠칫 놀란 손이 퉁겨졌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어둠 속에 있는지 분명하게 눈치챘다.
“나 박종포야! 아무도 없는가? 내 목소리 안 들려?”
쩌렁쩌렁한 그의 목소리가 만든 메아리만 놀란 박쥐처럼 갱도의 어둠 속으로 흩어졌을 뿐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탄덩이로 레일을 두드렸다. 쇠를 울리는 소리가 검은 뱀처럼 어딘가로 계속해서 흘러갔지만 싸늘한 레일에 붙인 귓바퀴 속으로 들어오는 답신은 없었다.
“뭐야! 나만 두고 모두 어디로 간 거야?”
그러나 대상을 찾지 못한 고함소리는 고스란히 그의 귓속으로 되돌아와 아우성을 쳤다. 그는 두 손으로 어둠을 휘저으며 일어나 방향을 가늠했다. 한 방향은 막장일 것이고 다른 방향은 지상으로 연결되는, 빛 한 점 없는 가혹한 갱도 위에 그가 있었다. 손길은 점자책을 읽는 맹인처럼 어둠 속을 짚어나갔지만 곧 힘을 잃고 호주머니 속으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박종포는 오른손과 왼손으로 양편의 어둠을 한 줌씩 끌어모아 번갈아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태어나 처음으로 왼손에게 부여한 특혜에 만족한다는 끄덕임이었다. 신뢰할 만한 후광을 업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젊은 날들을 고스란히 보낸 갱도였지만 걸음은 순탄하지 않았다. 몇 걸음 못 가 침목에 걸려 비틀거렸고 방향을 잘못 잡아 하리(천장에 대는 갱목)를 받치는 아시(벽면에 대는 갱목)에 이마를 찧었다. 탄좌의 수많은 갱도 중에서 어느 지점을 걷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발 밑의 철로가 막장 아니면 지상으로 연결돼 있다는 기억뿐이었다. 그러나……기억은 그것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탄광 속에 왜 들어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도. 매캐한 다이너마이트 냄새와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탄진,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언제 감쪽같이 사라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보이는 것은 어둠이 전부였다. 기억도 그 어둠 속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침목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비틀거릴 때마다 몸 속의 기운이 양동이에 담긴 물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박종포는 언제 마지막 밥을 먹었는지 떠올려보았지만 역시 감감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려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호흡이 가빠지지 않는 걸 보니 공기는 충분한 것 같았다. 술과 담배 생각을 하자 오른손이 가볍게 떨리기 시작했다. 빛 한 점 없는 땅속이었지만 몸은 잊어버린 게 없는 모양이다. 졸음도 마찬가지였다. 박종포는 좀더 편안하게 갱목에 몸을 기댔다. 눈을 뜨고 있어도 무엇 하나 볼 게 없는 눈은 눈꺼풀을 슬며시 닫고 있었다.
“컹!”
잠은 박종포의 몸을 갱목에 기대앉은 자리로부터 수천 미터 아래로 더 끌어내리는 중이었다. 마치 새로운 갱을 뚫어나가는 것 같았다. 용암이 들끓고 있다는 지구의 저 깊은 속까지.
“컹-!”
볼 것 하나 없는 밖을 향해 박종포는 간신히 눈꺼풀을 삼분의 일쯤 밀어 올렸다. 개가 짖다니. 캄캄한 막장을 더듬고 있는 존재가 또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개가. 박종포는 허물어지고 있는 몸을 갱목에 의지해 일으켜 세웠다. 가느다란 현이 울리듯 어둠을 건너오는 개의 울음을 따라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두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소리쳤다.
“멍멍아?”
“컹-!”
막장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상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박종포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산부부터 시작해서 선탄부까지 다다른 광부 인생의 갑방, 을방, 병방의 쳇바퀴에서 벗어나 살아온 지난 몇 년은 과도한 빛에 노출된 현기증의 날들뿐이었다. 흘러간 젊음을 막장에 남겨놓고 바깥으로 나왔지만 짙은 선글라스도 그의 휘청거림을 막아주진 못했다. 폐에 탄가루가 쌓이더라도 그가 살 곳은, 돌아갈 곳은 어쩔 수 없이 막장이었다. 달리 막장 인생이라고 했던가. 쓰러지더라도 갱목을 지고 사갱을 기어오르는 게 낫지 고층 아파트의 수위실에서 까딱까딱 조는 일은 도무지 못해먹을 일이었다. 졸았다고, 술을 마셨다고, 피둥피둥 살이 찐 부녀회장의 구박을 들으며 산 세월은 지울 수 있다면 차라리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지장산 속 깊고 깊은 막장으로의 귀환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가족조차도. 박종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