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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벌이 일꾼 탈북자의 육필수기 (하)

“마약·황금 밀무역 총책임자는 김정일 매제 장성택”

  • 글: 김영일 전 평양 1여단 소속 외화벌이 일꾼

외화벌이 일꾼 탈북자의 육필수기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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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경제난으로 범죄가 급증하자 이에 따라 감시도 가혹해졌다. 한마디로 공화국 전체가 범죄의 소굴, 철창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기술자에게 그날의 노동 할당량이 배분되듯, 사법 감사기관의 감사처, 안전부, 파출소 등 각 기관 담당자들에게도 그날그날 채워야 할 건수가 있었다.

감사처는 매분기 자기 관할기업에 대해 경제감사를 실시했다. 감사를 받은 회사나 기업에서는 항상 1~2명이 붙잡혀서 처벌을 받았다. 안전원도 개인별 완성목표량이 있었다. 예를 들면 파출소 주재원 한 명이 시장에서 규정에 위배되는 상품(외국에서 들여온 식품이나 물건, 의약품 등) 판매행위를 적발하면 적어도 15명 이상을 처벌해야 하고 가택수사도 해야 했다.

매월 집결소, 강제노동수용소, 감옥에 보내는 숫자도 할당되어 있었다. 안전원은 매주, 매월, 매분기별로 처리한 인원의 숫자와 몰수한 금액에 따라 자신의 정치성적을 평가받았다. 많은 인원을 적발할수록 그의 출세는 보장되는 셈이었다. 그러다 보니 억울한 죄수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인민을 동정하는 안전원도 있어 눈감아주거나 뇌물만 받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들은 대개 일찍 옷을 벗거나 10년이 지나도 출세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양강도 혜산에서 잡혀온 최창만이라는 죄수가 있었다. 철도 안전원이었던 그는 10년형을 언도받고 수감생활 중이었다. 그가 일했던 평양에서 혜산 구간은 우선 평양의 안전원이 담당하다 길주에서 혜산의 안전원과 교대를 한다. 평양-길주는 평양의 안전원이, 길주-혜산은 혜산의 안전원이 맡는 셈이다. 최창만은 상관에게 뇌물을 주고 열차검사 안전원이 되었다.

조선의 금, 은, 동, 해삼, 성게, 골동품 등 귀중품은 보통 신의주, 혜산, 무산, 온성 등 국경을 통해 중국으로 넘어갔다. 김정일은 이를 막기 위해 국경지대를 상업 금지구역으로 설정하고 삼엄한 경비를 펼치도록 했다. 해당지역 철도 안전원과 10호 초소, 임시초소는 돈을 벌 기회가 자주 생겼다.



이틀에 한 번 근무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평균 20만원 가량의 돈을 승객들로부터 강탈, 몰수했다. 운이 좋아 골동품이나 귀중품을 몰수하면 큰돈이 생겼다. 한번은 평양의 황금 상인을 만나 그가 갖고 있던 금 3kg을 몰수해 다른 안전원과 나누어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상인이 중앙의 일급 간부와 안전원이 뒤를 봐주는 큰 상인이었던 것. 곧바로 중앙 사회안전부에 횡령사실이 전해졌다.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던 창만과 검사조장은 시 안전부 간부에게 뇌물을 주고서야 각각 15년, 10년형으로 ‘타협’할 수 있었다.

1년보다 긴 겨울

수감된 지 3개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내와의 면회가 허락되었다. 1년 만에 만난 것뿐인 데도 아내는 10년은 늙어 보였다. 갑자기 소식이 끊기니 초조해하다가 평양에 있는 용철에게 겨우 부탁해 내 소재를 알게 된 모양이었다. 내가 잡혀간 후 집은 두 번이나 수색을 당해 남은 물건이라고는 옷 몇 벌과 그릇 몇 개뿐이라고 했다. 아내를 감옥에서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정성 들여 먹을 것을 준비해온 아내는 나의 깡마른 얼굴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울기만 했다.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운 뒤 나는 이것저것 물었다.

“어머니 건강은 어떠오. 둘이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가 있나….”

“어머니와 향미(딸)는 잘 지내고 있어요. 집 걱정은 하지 말아요. 당신 건강이 제일입니다.”

“개성 친정집은 어떻게 지내요?”

“모두 편안해요. 친구들도 도와주고 있어요.”

몇 마디도 나누지 못했는데 면회시간이 끝났다.

“이봐, 시간 다 됐어. 배불리 먹었으면 됐지,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아.”

수감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겨울이었다. 감방 안에는 난방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30평방미터도 안 되는 방에 모인 90여명 죄수들은 밤새도록 추위에 떨어야 했다. 보통 두 사람이 함께 다 떨어진 이불을 덮고 앉아서 잠을 청하곤 했다. 그나마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잠이 깨는 수가 많았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난 후 아침이 오면 죄수들의 얼굴은 모두 부어 있었다.

작업장에는 석탄난로가 하나 있었지만 석탄은 사리원 봉산에서 캐낸 저열량탄뿐이었다. 그나마 석탄난로 주변은 반장, 조장, 제품검사원, 통계원, 창고보관원 등의 자리이기 때문에 일반 죄수는 가까이 갈 꿈도 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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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영일 전 평양 1여단 소속 외화벌이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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