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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편가르기, 여론조작에 얼룩진 근시안 원전정책 30년

‘방폐장 갈등’ 속 부안과 原電지역을 가다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거짓말, 편가르기, 여론조작에 얼룩진 근시안 원전정책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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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1일 밤 부안성당 앞에서 주민 김모(45)씨는 골목골목을 장악한 전경들에게 분노했다. 읍내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그는 벌써 두세 달째 장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는 “이미 30여명이 구속됐다. 100번째 안으로 구속된다면 영광스런 일이다”며 방폐장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12월10일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이 “부안군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고 사과하기까지 부안에서는 137일간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이 기간 부안에 동원된 병력을 5540중대 66만여명으로 집계한다. 같은 기간 집회에 참가한 주민 22만여명(경찰 추산)의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반대시위 동안 주민 250여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이중 31명이 구속됐다. 16명은 수배중이다. 350여명의 주민이 시위중에 부상당했다.

12월10일 저녁 부안성당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도 방폐장 유치신청을 받겠다”는 산자부 발표가 있은 후 첫 촛불집회가 열렸다. 여기에 참가한 송광국(41)씨는 “정부를 굴복시킨 것을 기뻐하며 평소보다 더 많은 주민들이 모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정부 정책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송씨는 “이번 발표는 정부가 시간을 벌어 주민들을 회유하기 위한 작전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주민들이 많다”고 했다.

갑작스런 방폐장 유치 결정, 경제적 혜택에 관한 뜬소문,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시위, 공권력 투입, 정부의 백기(白旗) 투항….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난 5개월간 부안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결코 낯설지가 않다. 1986년부터 17년간 방폐장 유치사업을 추진한 정부는 1990년과 1994년에도 안면도와 굴업도를 방폐장 후보지로 일방적으로 선정한 뒤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시위에 부닥쳤고 결국 방폐장 유치에 실패한 바 있다.

안면도와 굴업도의 처절한 싸움



충남 태안군 안면도가 방폐장 유치 후보지로 내정된 사실은 1990년 11월 언론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미 그해 9월에 안면도를 후보지로 결정한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비밀에 부친 채 ‘서해과학연구단지 건설’이란 명목으로 후보지역의 땅을 몰래 사들였다. 땅을 판 주민들도, 심지어는 태안군수조차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몰랐다. 이후 전쟁과도 같은 7일간의 투쟁 끝에 주관부서였던 과학기술처 정근모 장관이 경질되면서 안면도 주민들은 방폐장 유치사업을 무력화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7일 항쟁’이라 불린 반대 시위는 부안의 그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폭력적인 양상을 띠었다. 매일 1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안면도 읍내에 모였고, 초·중·고교생들은 등교를 거부했다. 흥분한 주민들이 태안군 공무원들의 옷을 벗겨 전봇대에 매달고 집단 폭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에 정부는 대규모 병력을 투입시켜 경비를 강화했다. 안면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인 연륙교가 차단되고 상점들이 문을 닫으면서 안면도는 생필품조차 구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단 9명의 주민이 살고 있던 인천 옹진군 덕적면 굴업도에 방폐장 유치가 추진된다는 사실 또한 마른 하늘의 날벼락처럼 세상에 알려졌다. 1994년 12월 언론에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되자 정부는 굴업도의 모섬인 덕적도에 부랴부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내려보냈다. 1750억원에 이르는 지역 지원금과 주민 폭동에 대비한 1500여명 규모의 ‘인천경비단’이 그것이다.

당시 덕적도 주민들과 함께 유치 반대운동을 벌였던 환경운동연합 공익환경법률센터 김혜정 사무처장은 1년간 계속된 당시 유치반대 시위를 “환경운동 중 가장 처절하고 외로웠던 싸움”이라고 회고한다.

700여명의 주민들 중 시위에 참가한 주민이라야 고작 300명 정도였고, 그나마 대다수가 50세 이상의 장·노년층이었다. 하루 단 두 편의 배가 육지와 섬을 왕복하는 형편이라 언론이 접근하기도 쉽지 않았다. 전경들조차 주민들이 마음껏 시위를 하도록 내버려둘 정도였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서울 명동성당과 인천 답동성당에서 200여일 동안 농성을 벌이는 등 원정시위에 나섰다. 한 60대 노인은 서울 사직공원 집회에서 한겨울 추위에 시달리다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1995년 10월 굴업도에 활성단층이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방폐장 유치는 백지화됐다. 그러나 이에 앞서 1991년 한국자원연구소가 “굴업도는 지질 조건상 방폐장 부지로 부적격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무시한 채 무조건 주민 반대가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노린 정부의 얕은 술수는 결국 주민들에게 상처만 남긴 채 또 하나의 실패작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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