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세계의 계획도시를 가다 ⑧|캐나다 스트랫퍼드

‘낭만’을 설계한 지방도시의 새 모델

  •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낭만’을 설계한 지방도시의 새 모델

1/4
  • 행정수도, 공업단지, 베드타운 형식의 계획도시들이 세계 곳곳에서 조성되어왔다. 경제개발, 인구분산 등 도시건설의 목적은 다양하다. 그러나 도시의 존재 이유는 본질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낭만적 삶’은 삶의 질의 최고 단계다. 캐나다 스트랫퍼드시는 바로 이 ‘낭만’을 설계해낸 도시다. 특히 스트랫퍼드의 도시계획은 한국 지방도시들에게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낭만’을 설계한 지방도시의 새 모델

스트랫퍼드 도심 에이븐 강변.

1832년, 캐나다 동부 온타리오주 토론토시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떨어진 시골길에 ‘셰익스피어’라는 호텔이 있었다. ‘더 캐나다 컴퍼니’라는 회사의 사장인 토머스 존스는 이 호텔의 주인에게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그림을 선물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이 호텔 주변 지역은 ‘스트랫퍼드(Stratford)’시로 명명됐다. 스트랫퍼드는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영국의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시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캐나다 스트랫퍼드시 중앙을 관통하는 강도 ‘리틀 템스(Little Thames)’에서 ‘에이번(Avon)’으로 개명됐다.

스트랫퍼드시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는 ‘런던’이라는 꽤 큰 도시가 있다. 영 연방이었던 캐나다는 이처럼 특별한 이유 없이 영국 지명을 그대로 차용해 지명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스트랫퍼드시는 호텔의 일화 이외엔 극작가 셰익스피어와는 관련이 없는 곳이다.

20세기 들어 캐나다 동부의 도시들은 철도 노선을 따라 발전했다. 스트랫퍼드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도시는 기차의 엔진과 기타 기관들을 수리하는 산업으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증기기관차가 디젤기관차로 대체되기 시작하면서 일거리가 없어졌다. 이 도시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캐나다 평원의 수많은 곳들 중의 하나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그랬던 이 도시의 운명을 바꾼 것은 다름아닌 한 잡지사 기자의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서다. 1953년 스트랫퍼드 출신의 톰 패터슨 기자는 ‘스트랫퍼드 페스티벌’이라는 연극 축제를 개최했다. 에이번 강가에 허름한 천막을 치고 무대와 객석을 만든 뒤 셰익스피어 원작의 연극들을 공연하는 행사였다. 당시 패터슨 기자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우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우리 도시가 마침 셰익스피어의 고향과 이름이 같다. 16세기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를 다시 환생시켜 이 도시를 먹여 살릴 비즈니스로 만들어보자.”



소수의견에 불과했던 이 아이디어의 지지자들이 이내 늘어났다. ‘스트랫퍼드 페스티벌’을 주관하는 민간 공익재단이 설립되었고, 스트랫퍼드시청도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민관이 함께 새로운 도시 만들기에 나섰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소프트웨어적 도시계획’

2003년 현재 스트랫퍼드시(http:// www.city.stratford.on.ca/)는 캐나다에서도 가장 잘 계획된 도시들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친환경적 도시의 성공모델, 개성이 뚜렷한 도시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 스트랫퍼드는 ‘연극의 도시’‘낭만의 도시’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관광산업, 제조업도 호황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 인위적으로 노력한 결과였다.

스트랫퍼드시의 도시계획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적 측면, 민관 협력 측면에서 함께 이뤄졌다. 아시아 대다수 신도시들이 토목공사 위주의 하드웨어적 측면,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스트랫퍼드 페스티벌’은 ‘소프트웨어적 도시계획’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특별한 사례가 되고 있다. 이 행사는 매년 4~5월부터 11월까지 7~8개월간 열린다. 눈이 많이 내리는 캐나다의 특성을 고려하면 스트랫퍼드는 연중 내내 축제가 벌어지는 도시인 셈이다. 지역주민들만이 참여하는 축제라면 그리 주목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스트랫퍼드 축제에는 전세계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다. 인구 3만명의 소도시 스트랫퍼드에 연간 국내외 관광객이 인구의 20배인 60만명에 이른다. 이렇게 된 데엔 범도시적 차원의 계획이 주효했다.

스트랫퍼드 페스티벌의 주요 콘텐츠는 연극이다. 2003년 11월23일은 스트랫퍼드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 기자는 페스티벌 극장에서 뮤지컬 ‘왕과 나(The King and I)’를 관람했다. 공연장 문앞에 셰익스피어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토론토 위성도시인 미사사구아에서 온 관광객 로리 리저(여·32)씨는 “대도시에서 온 수준 높은 관객의 눈에 맞추기 위해 스트랫퍼드는 공연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리저씨의 일행인 티나 웨이데리히(32·여)씨는 “스트랫퍼드 공연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면서 “매년 2박3일의 일정으로 이 도시를 찾는다”고 말했다.

시청은 축제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스트랫퍼드 페스티벌’ 재단에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해준다. 이런 지원 덕에 톱 클래스 급의 현대식 극장 4개가 스트랫포트에 건설됐다. 시청은 또한 페스티벌을 캐나다와 미주, 세계 각 도시에 효과적으로 홍보해 관광객이 많이 찾게 하는 일을 맡는다.

1/4
글: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목록 닫기

‘낭만’을 설계한 지방도시의 새 모델

댓글 창 닫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