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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⑩

눈 오는 날엔 김장배추 꺼내고, 눈 녹은 날엔 광대나물 무치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눈 오는 날엔 김장배추 꺼내고, 눈 녹은 날엔 광대나물 무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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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생각을 하면 시골서는 답이 없다. 그러니 갈무리해놓은 것을 하나하나 꺼내 먹으려 하루 한 가지씩 묵나물 먹기, 해 나는 날에는 겨울 나물 해먹기.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살아간다.
눈 오는 날엔 김장배추 꺼내고, 눈 녹은 날엔 광대나물 무치고

필자의 아이들이 처마 끝에 달린 고드름으로 칼싸움을 하고 있다.

올해는 날이 따뜻해 첫눈이 늦었다. 올 겨울은 어떤 겨울이 될까? 여기는 눈이 많고 길이 산을 끼고 돌아 11월부터 길 양쪽에 모래주머니를 쌓아놓는다. 우리 집은 국도에서 지방도로로 갈라져 6km 정도 산허리를 끼고 돈 뒤, 다시 경운기 다니는 산길로 구불구불 올라와야 있다. 처음에는 비포장으로 울퉁불퉁하고 비 오고 나면 물웅덩이가 곳곳에 있는 데다 산길이라 험했다. 그러나 몇 년 사이 집으로 오는 길이 많이 좋아졌다. 강을 건너는 다리도 두 군데 새로 놓였고, 경운기 다니던 산길도 세 번에 걸쳐 포장 공사를 한 덕에.

그 사이 우리는 프라이드 디엠을 몰았는데 이 차는 정말 달구지처럼 웬만한 비포장 길도 탈없이 달려주었다. 전국 곳곳에 땅을 알아보러 참 많이도 다녔는데 산길도 꽤 돌아다녔다. 그래도 눈이 오면, 집으로 오는 비탈을 오르내리기 어렵다.

산속에 집을 짓고 사니, 눈이 오면 어떻게 해요? 하는 걱정을 듣는다. 눈이 왔는데 급한 일이 생겨 나가야 하면 어쩌느냐는 소리겠지. 도시에 사는 사람한테는 당연한 걱정이다. 나도 똑같은 질문을 했으니까. 여기 와서 몇 년은 큰 눈이 온다거나 큰 비가 온다고 하면 차를 큰길까지 미리 빼놓았다. 물론 지금도 차를 쓸 일이 있으면 그래야겠지. 하지만 아무 예정이 없는 데도 만에 하나가 걱정이 되어 차를 빼놓을 필요는 없다. 이제는 고립된다는 두려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기 때문이다.

눈이 오면 모든 기계 소리, 경운기 소리마저 멈춘다. 고요하다. 세상이 눈으로 뒤덮이니, 이럴 때는 뜨뜻한 아랫 목을 차지하고 앉아 눈 오시는 걸 구경한다. 앞산에도 눈, 뒷산에도 눈. 마당에도 눈, 지붕에도 눈. 눈이 그치고 나면 눈을 쓸어 길을 내고. 아이들 눈사람 만드는 데 끼여 나도 만든다. 눈에 코를 박고 한 입 먹어본다. 맛이 없다. 그런데 그 눈이 고드름이 되면 참 맛있다. 고드름이 달리면 아이들은 그걸 따서 얼음 칼싸움도 하고, 으드득으드득 씹어 먹기도 한다. 작은애는 고드름을 냉동실에 넣어두기도 한다. 우리 어른은 눈을 떠서 커다란 통에 담는다. 눈 녹은 물에 볍씨를 담기 위해서다.

눈이 많이 오면 집 앞길이 눈썰매장이 된다. 두터운 비닐로 된 비료 포대에 짚단을 넣으면 훌륭한 눈썰매다. 어차피 차가 못 다니니, 아이들은 신나게 탄다. 앉아서 타다 누워서 타고, 거꾸로도 타고, 서서도 타보고. 무주 리조트에 훌륭한 눈썰매장이 있지. 언젠가 손님이 와서 가자고 해 따라간 적이 있지만, 우리한테는 집 앞 눈썰매장이 더 안성맞춤이다.



눈보라 치는 겨울밤, 문 여며 닫고 불땐 방바닥에 이불 덮고 누우면, 사람임에 그렇게 감사할 수 없다. 집을 지어 불까지 때고 사는구나.

우리 집은 한옥이다. 한옥은 집안 꾸밈이 바로 문에 있다. 한옥 방 그림을 생각해보자. 무늬 없는 한지를 바른 벽, 나지막한 머릿장 하나 놓여 있고, 띠살문 문종이 사이로 은은하게 비쳐드는 빛. 이런 모습이 그려지지. 집을 지으며 문을 어떻게 할까 궁리를 많이 했다. 집은 한옥인데 문은 아파트 문을 달 수도 없고. 띠살문은 생산량이 많지 않아, 문 짜는 전문목수에게 주문제작을 해야 하니 값이 만만치 않다. 서울 황학동 고물상에 가서 헌 문을 사려고도 했고, 대전, 광주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한데 헌집에서 뜯은 문은 낡기도 했지만, 높이가 낮다. 왜 그럴까? 추운 곳이라 문을 작게 해 달려고 그랬나? 목수 말이 우리나라에는 문을 짤 나무, 그러니까 옹이 없이 곧게 자란 나무가 귀하단다. 고관대작이야 쉽게 구할 수 있었겠지만, 시골에서 농사 지으며 살아가는 농민들이 그런 나무를 구할 길이 없었겠지. 실제 황학동 고물상에 가 보니, 높이가 어른 키보다 높은 문은 양반 집에서, 그것도 중부지방 양반가에서 뜯어온 문이란다.

궁리 끝에 바깥문은 유리문을, 안에는 띠살문을 달기로 했다. 여럿이 드나드는 마루문은 집안 얼굴이라 목수에게 맡겨 짜기로 하고. 집 짓는 나무 가운데 좋은 걸 골라 문 짤 나무로 삼았다. 방문으론 광주에서 짜놓은 띠살문을 구해두었고.

남편은 안방 문만은 손수 짜고 싶어했다. 안방에는 문이 많다. 방문 두 짝을 빼고도, 창문 두 짝. 붙박이장 문 두 짝. 쪽창 하나, 불밝이창문 두 짝. 집 꼴이 갖춰지는 대로 들어와 살면서, 남편은 시나브로 문을 짰다. 급한 대로 쪽창부터, 그 다음 벽장문을 짜고, 불밝이창 두 짝. 그러고 나서 광 문, 보일러실 문, 효소광 문…곳곳에 문을 짜서 달았다. 그러더니 일년이 지나도 안방 창문은 감감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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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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