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백산 정상의 상고대. 나뭇가지마다 서리꽃이 피어 켜켜이 쌓였다.
정선과 영월과 태백을 잇는 만항재(1330m)는 백두대간을 잇는 고개 중 가장 높다. 태백의 주능선인 태백산과 함백산 사이에 있어 높은 고갯길이 구불구불하지만, 포장이 잘 돼 드라이브 코스로는 태백에서 으뜸이다. 새벽엔 운무에 휩싸인 정취에, 낮엔 고갯길에서 내려다보는 산줄기에 넋을 잃는다.
만항재 정상쯤에서 ‘대한선수촌’ 가는 길로 빠지면 함백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한반도의 등줄기인 백두대간 한가운데 자리한 함백산(1573m)은 태백에서 가장 높다. 정상에 서면 태백산, 일월산, 백운산, 가리왕산이 한눈에 굽어 보인다. 정상까지 포장도로가 나 있어 차로 오를 수도 있고, 도보 산행을 원한다면 두문동재에서 오르는 등산로를 택하면 된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엔 겨울나무들이 일렬로 섰는데, 나무 아래로는 낮은 산죽(山竹)들이 곳곳에 푸르게 깔렸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선 주목과 고사목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다다르니 나뭇가지마다 서리꽃이 피었다. 북풍이 불면 북쪽을 향해, 남풍이 불면 남쪽을 향해 켜켜이 쌓인 서리가 날처럼 서 장관이다. 둥글게 펼쳐진 서리꽃 산정(山頂)이 설원의 비밀궁전 같다. 운무가 바람에 쓸려다닐 때마다 산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거듭하고, 서리꽃은 쨍그랑거리며 바위에 떨어지기도 한다. 저기, 붉게 떠오른 해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의 낮은 가지에 걸쳐진다. 서서히 서리꽃이 녹으며 반짝이자 운무가 걷힌다. 지난밤 이를 데 없이 짙은 태백의 어둠이 눈앞을 가린 듯하더니, 이토록 믿음직스럽고도 깊은 날숨 같은 산자락을 보여주려 했음인가. 산의 날숨을 한껏 들이마시니 온몸이 맑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