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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금 왜 ‘시장경제론’인가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 글: 강광하 서울대 교수·경제학 kwangha@plaza.snu.ac.kr

지금 왜 ‘시장경제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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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른 어떤 방법보다 효율적인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시장기구를 근간으로 이것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게 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면 된다. 그러나 그 방법도 시장경제를 저해해 본말이 전도되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된다.
지금 왜 ‘시장경제론’인가

시장에 대한 간섭은 시장의 기능을 살리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청와대 경제상황점검회의(2004. 5. 17).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인생은 단 한번의 승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버리지 말라, 지금까지가 아니라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여러 의미들의 중심에는 인간이 행하는 많은 일 가운데 성공하는 경우보다는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뜻이 숨어 있다.

개인만이 아니다. 사회나 국가가 하는 일에도 실패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다만 사회나 국가는 어떤 일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중지를 모으고, 실천에 옮기는 단계에선 최선을 다함으로써 실패를 줄여야 할 공적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사회나 국가가 하는 일이 잘못됐을 때 국민들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경제사정은 악화일로에 있다. 성장률은 둔화되고 소득은 줄어들고 있다. 물가는 뛰고 실업은 증가하고 있다. 조만간 형편이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성공의 어머니’인가, 실패인가.

이처럼 걱정이 태산 같은데 느닷없이 ‘시장경제’니 ‘반(反)시장경제’니 하는 말이 오가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논쟁이 우리나라에서만 대서특필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정이 난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실패했지만 우리는 성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망상이다. 더구나 국민의 행복을 담보로 몇몇 소수의 생각을 실험해보겠다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여타의 다른 주의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은 역사가 입증한다. 기실 우리나라에도 내놓고 사회주의, 공산주의 하자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반자본주의, 반시장경제라는 말이 들리는 것은 정부, 여당 일각에서 사유재산권 침해, 가격통제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저해하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사회주의적 경제운동을 통해 골고루 잘사는 사회를 건설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마치 사막에서 신기루를 보고 오아시스라고 우기는 것과 유사하다. 신기루는 실체에 접하기 전까지는 꼭 진짜 같다는 데 문제가 있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신기루를 좇아가다 막상 그곳에 도달해서야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괴롭고 안타깝겠는가. 그런 까닭에 한번도 사막을 건너본 적이 없는 사람, 한번도 신기루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이끄는 대상(隊商)의 고생길이 연상되는 지금이다.

자유와 간섭의 조화

자본주의 경제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는 사유재산제가 확립되었느냐 하는 것이고, 둘째가 시장제도가 중심을 이루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기준이 도전받는다면 자본주의는 성립되기 어렵다. 이 중 사유재산제는 이해하기 쉬운 것이니 일단 제쳐두고 시장제도가 중심을 이룬다는 말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자본주의 경제에는 어떠한 형태가 됐든 경쟁시장이 존재해야 한다. 또한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이 배분기능과 동기(動機)적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배분기능은 현재 시장에서 성립된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자에게 재화와 용역을 배분하며, 현존하는 가격으로 지불할 의사가 없거나 능력이 없는 자를 희소한 자원의 분배로부터 제외시킨다. 동기적 기능은 가격상승이 제품생산에 의한 이윤의 획득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자원을 가진 새로운 생산자를 이 업종에 유인하거나 기존의 생산자에게 보다 많은 자원의 사용을 유도한다.

이처럼 시장제도는 한편으로는 기회, 성숙의 원천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효율을 강조한 결과 불확실성, 개인적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즉 자유로운 행동에 대한 강한 동기를 부여하는 반면 경제적 간섭에 대한 동기도 부여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역사는 시장경제를 주축으로 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는 측면과 그에 따르는 제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각종 제도와 규제의 부과라는 측면이 공존해왔다.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자유와 간섭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을 내포하고 있으며, 어느 쪽에 더 큰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경제정책 기조가 달라진다. 이러한 경향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 대한 간섭도 어디까지나 시장기능을 저해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기능을 살리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시장이 달성하지 못하는 문제, 다시 말하면 규모의 경제, 외부 효과의 존재에 따른 문제, 공공재의 문제, 독과점의 문제, 소득분배의 문제 등도 시장 실패를 치유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정부의 개입은 시장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시장을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많은 경제학자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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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광하 서울대 교수·경제학 kwangha@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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