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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용산기지 이전협상 관계자의 직격토로

“전문가 부재, 형식 집착, 철군 두려움이 주도권 상실의 원인”

  • 글: 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前 용산기지 이전협상 관계자의 직격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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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까지 양측이 논의했던 대로 합의가 이뤄졌다면 외교부 조약국이 제기한 형식상의 흠결은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올 7월까지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져 공전하면서 일부 내용은 오히려 지난해 10월보다 후퇴했다. 일부 정부 관계자들이 그간의 협상에 문제가 있다며 흥분해 뛰어나가기는 했는데, 정작 면밀한 사전준비와 전략이 없다 보니 뒷감당이 안 된 형국이었다.

미국이 협상전략에 얼마나 탁월한지 테이블에 마주앉아본 사람은 안다. 협상을 제안하는 시점부터 기막히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과 2003년, 즉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용산기지 관련협상을 개시했다. 우리측의 반응이 강경하면 주한미군 철수나 감군(減軍) 등의 카드를 꺼내 바짝 긴장시킨다. 여기저기서 ‘안보불안’ 소리가 터져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화들짝 놀란 한국은 끌려다니게 돼 있다.

이번 이전협상도 유사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올 7월 합의된 내용에서 지난해 10월에 비해 후퇴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은 건축기준, 주택문제, 기타비용, 부지규모 등이다. 이들 항목에 대해 한국측이 집요하게 따지자 미국측도 초반의 여유 있는 입장에서 태도를 바꾸었다. 내부적으로 엄청난 준비를 거쳐 매우 강도 높은 안을 들고나왔다. ‘쫓겨가듯 내려가지는 않겠다’는 식이었다.

건축기준의 경우 앞서 설명한 대로 지난해 10월 무렵만 해도 한미공동사용시설에 대해서는 공동기준을 적용하고 미군전용시설에는 미 국방부 기준을 적용한다는 원칙에 대략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 그러나 최종합의에서는 모든 시설을 미 국방부 기준으로 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6월 ‘모든 시설에 공동기준을 적용한다’는 우리측 목표와는 정반대의 결과다.

주택문제를 살펴보자. 이 문제는 이전비용에서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 미 국방부 기준으로 주택을 지어줄 경우 대략 한 채에 3억5000만원의 건축비가 소요된다(평균 70평, 평당 건축비 500만원). 1000채를 지어주면 3500억원이 든다. 지난해 10월 무렵에는 용산기지 근무자들의 숙소 1200채 전체를 한국 민간업체가 짓고 미군이 임대한다는 데에 대체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11월 이후 한국측이 공격적인 협상태도를 보이자 미국측 태도도 돌변했다. 전량을 다 무상으로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한국군의 군인아파트가 군사시설이듯 미군 숙소도 기지이전 범위에 포함된다는 논리를 폈다.

결국 올 7월 FOTA에서는 용산기지 안에 있는 333채는 한국측이 무상으로 지어주고 나머지는 임대하기로 최종합의했다. 당장 1000억원에 가까운 돈이 추가로 들게 됐다.

흔들리는 원칙, 후퇴하는 협상

‘합의문에는 규정되지 않았지만 이전과정에서 예상외로 발생하는 경비’를 의미하는 ‘기타비용(other expenses)’도 유사한 과정을 겪었다. 협상초기 이 부분은 ‘행정비용’이라는 의미로 논의되어 한국측이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됐다. 미군 예산에서 복사비, 출장비 등의 소모성 경비로 반영되는 ‘administration expense’를 염두에 둔 개념이었다.

그러나 11월 이후 한국 정부가 강경입장으로 돌아서 협상팀에 이 항목의 세부명세를 미국측에 요구하라는 지침이 내려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결국 협상팀 구성원이 아닌 인사가 리스트를 달라는 요구를 미국측에 전달했다.

그러자 미국측은 당초의 행정비용 개념이 아니라, 이제까지 논의되지 못했던 추가경비항목을 모두 열거하는 리스트를 작성해 보내왔다. 리스트엔 공병, 수송, 장비 등 상당한 내역이 포함되어 있었다. 협상팀은 이의를 제기했지만 “한국측이 달라고 해서 줬다. 이제 와서 왜 딴소리냐”는 미국측의 신경질적인 반응에 부딪혔다. 결국 7월 최종합의에서는 엄청나게 범위가 넓어진 ‘기타비용’이 한국측 부담으로 정의되었다. 쉽게 말해 ‘통째로 뒤집어쓴’ 형국이다.

관심이 집중된 이전기지 부지규모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당초 양측은 새 기지 몫으로 312만평 규모를 제공하기로 합의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이를 뒤집고 300만평 규모로 다시 제안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주한미군 감축이 가시화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지만 왜 300만평인지에 대한 산술적인 근거는 없었다. 정밀한 계산에 따른 지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엔지니어가 산출해야 할 수치를 왜 정책조정파트에서 내려보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욱이 공개되지 않았을 뿐 양측은 작년부터 주한미군의 감축규모를 반영해 협상에 임했다. 312만평이라는 규모도 감축을 감안해 얻은 것이었다. 그런데 다시 한국측에서 감축을 들어 부지규모를 거론하자 미국측은 격렬히 항의했고, 오히려 함께 이전하기로 한 유엔사·연합사용 토지를 포함해 360만평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반박논리를 세우기 쉽지 않았다. 우리측 안의 근거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모르고, 협상상대를 모르고, 야전을 모르고, 건축을 모르기에 발생한 문제였다. 논란 끝에 올 7월 10차 FOTA에서 349만평으로 최종합의가 이루어졌다. 지난해 10월 거의 합의단계에 이르렀던 312만평에 비해 10% 이상 늘어난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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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리·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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